장순복 DB금융투자 사원
국민일보 신춘문예 장려상 등단
"서류 살피다 스치는 미소 고와라"
직장생활 중 글감 떠오르면 메모
첫 시집 ‘항해’로 동료시인 돕고파
'펼쳐진 서류를 꼼꼼하게 살피다가 살며시 미간에 스치는 미소가 고와라….'
장순복 DB금융투자 사원(사진)이 쓴 시 '중년'의 일부다. 장씨는 지난 3일 서울 여의도 DB금융투자 본사에서 근무하던 중 공간 한쪽에서 회의에 진지하게 임하는 사람들을 보고 단숨에 써내려갔다. 초등학생 시절부터 일상 속에서 글감이 떠오를 때마다 시를 썼고, 그렇게 모인 시만 수백편에 달한다.
장씨는 이렇게 모인 시들 중 일부를 모아 올해 9월 첫 시집 '항해'를 출간했다. 시 창작을 따로 배운 적은 없다. 어릴 때부터 집에 시집 500여권이 있을 정도로 시를 좋아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처음 지은 시 '몽당연필'을 보고 담임 선생님이 '순복이는 작가가 될 것 같다'고 했다. 그 칭찬이 내내 마음에 새겨진 것 같다"고 전했다. 이후 장씨는 청소를 하다가도, 일을 하다가도, 딸과 함께 산을 오르다가도 시를 썼다.
시에 대한 꾸준한 관심이 빛을 발한 것은 2019년이다. 장씨는 국민일보 신춘문예에서 시부문 장려상을 수상하며 정식으로 등단했다. 상을 받은 '양파'라는 시는 집에서 양파를 다듬다 우연히 생각이 나서 쓴 시다.
"양파를 썰면 눈물이 나잖아요. (양파를) 다지면서 '나만 힘든 게 아니라 양파 너도 힘들구나'라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30분 만에 시를 완성했던 것 같아요."
시집 출간을 결심한 것은 등단 후 활동하던 문인회에서 '시집을 내보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제의를 받은 뒤다. 시집을 통해 가난한 시인들을 도울 수 있다는 말에 바로 '하겠다'고 답했다.
시집을 출간하면서 제목부터 구성까지 장씨의 손때가 묻지 않은 곳이 없다. 시집의 제목은 어릴 때부터 좋아하던 단어 '항해'다. 첫 시집을 내면 무조건 '항해'를 제목으로 써야겠다고 생각했는데 꿈이 실현된 것이다.
그는 "초등학생 때부터 뛰어노는 것보다는 책을 읽거나 시를 쓰는 것이 더 좋았다. 당시 접한 '항해'라는 단어는 나와 달리, 능동적 단어라고 생각했다"며 "끝을 향해 온갖 풍랑을 헤쳐나가는 것이 멋있지 않나"라고 반문했다.
시집에 담을 시를 고르는 일 역시 고민이었다. 그간에 쓴 수백편의 시를 펼쳐보고, 시를 쓸 때마다 남겨둔 메모를 하나씩 읽어봤다. '2019년 10월, 가을이 아름답게 다가온다' '1993년 10월, 교회 고등부 교사로서 소년을 만났던 날' 등이다.
직장생활을 하며 시를 쓰는 것에 어려움은 "전혀 없다"고 했다. 그는 "일부러 '시를 써야겠다'면서 생각을 짜내기보다는 스치듯 생각날 때마다 메모하는 형태로 쓰고 있다"고 전했다.
시집을 출간하면서 가장 고마웠던 이들은 역시 직장동료들이다. 장씨는 "시집을 낸다고 하니 먼저 '출간이 언제인지' '사내 홍보를 해주겠다'며 관심을 가져주고 기다려줘서 감동이었다"고 답했다.
장씨는 '몽실언니'의 작가 권정생이 살아온 삶을 지향한다. 글만 아름다운 작가가 아닌, 삶이 더 보람찬 작가가 되는 것이 꿈이다. 장씨는 "일상에 감사하며, 나누며 사는 삶을 살고 싶다"며 "앞으로도 따뜻한 마음을 담은 시를 쓰는 것이 꿈"이라고 말했다.
nodelay@fnnews.com 박지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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