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47.6%가 빌라·오피스텔 등 거주
非아파트 인허가 47% 감소… "고사 위기"
아파트 공급 따라 非아파트 규제 오락가락
"주거문제 풀려면 전체를 보는 접근법 필요"
한국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아파트 공화국'이다. 현 정부는 물론 역대 정권의 주택정책 목표도 한결같이 아파트 공급 확대다. 수도권에 조성됐거나 추진중인 신도시만 해도 1기 5곳, 2기 11곳, 3기 6곳 등 22곳에 이를 정도다.
하지만 실상을 보면 비 아파트에 거주하는 가구가 아직도 절반에 이른다. 김승배 한국부동산개발협회 회장은 "가구 기준으로 약 50%가 다가구·다세대 등 비 아파트 주택과 오피스텔 등 비 주택 주거에 살고 있다"며 "하지만 모든 정책은 아파트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주거문제를 풀려면 전체를 볼 필요가 있다" 말했다.
■아파트 공화국?...절반이 빌라·오피스텔에 살아
5일 통계청의 '인구주택총조사'의 최신 통계인 2022년 기준으로 아파트는 1227만 가구다. 전체 주택(1916만 가구)의 64%에 이른다. 서울은 전체 주택의 59.5%가 아파트로 채워졌다.
그렇다면 비 아파트에 거주하는 가구는 어느정도일까. 통계청의 '거처 유형별 가구 구성비' 자료를 보면 빌라·단독·오피스텔 등 비 아파트에 거주하는 가구는 다소 줄었지만, 여전히 절반 가량이다. 통계청은 △아파트 △단독 △빌라(연립·다세대) △비 주거건물 △주택이외 거처 등으로 나눠 구분하고 있다.
우선 아파트 거주가구 비율은 2000년 36.6%에서 2005년에 41.7%로 40%를 넘었다. 이후 2018년 50.1%로 절반을 넘어섰고, 2022년에는 52.4%를 기록하고 있다. 지난해 기준으로 47.6%가 아파트 공화국의 혜택을 보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통계청 관계자는 " 아파트에 거주하는 가구가 늘었지만 동시에 비 아파트에 살고 있는 가구도 일정 비율을 계속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비 아파트 거주가구 비율을 보면 단독주택만 줄어들 뿐 빌라·비 주거건물(오피스텔)·주택 이외 거처(숙박업소·기숙사 등) 등은 큰 변화가 없었다. 단독주택 비율은 2000년 49.6%에서 계속 줄면서 2022년에는 29.0%까지 하락했다.
빌라(연립·다세대)의 경우 2000년 9.0%에서 2018년 11.6%로 정점을 찍었다. 이후 조금씩 줄고 있으나 2000년대 들어 11.4%를 유지하고 있다. 오피스텔 등으로 대표되는 비 주거건물 거주 가구 비율도 1.4~1.5%대를 기록하고 있다.
숙박업소 객실·기숙사·고시텔 등 주택 이외 거처 가구는 더 늘었다. 2000년에는 0.6%에 불과했지만 2016년 4.0%로 증가했고, 2021년 5.6%, 2022년 5.8%로 상승했다.
■모든 게 '아파트법'...나머지 절반 위한 제도 있나
특히 주택 이외 거처 현황을 보면 수 많은 가구가 열악한 곳에서 생활하고 있다. 국토교통부는 2017년에 이어 2022년에도 '주택 이외 거처 주거실태조사'를 진행했다.
보고서를 보면 2022년 전국 취약 거처 거주 가구수는 5년 전보다 7만3625가구 늘어난 총 44만3126가구로 조사됐다. 세부적으로 보면 '일터(식당·농장·공장 등)의 일부 공간'에 사는 가구(16만9479가구·38.2%)가 가장 많았다. 그 다음으로는 '고시원·고시텔' 35.7%(15만8374가구), '호텔·여관 등 숙박업소 객실' 13.1%(5만8155가구) 등의 순이었다.
김종서 경기대학교 교수는 "아파트의 주거 선호도가 높아지고 있지만 빌라와 오피스텔 등을 주거 사다리로 삼는 계층도 줄지 않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며 "아파트 외에도 우리 사회에서는 아직도 다양한 주택 공급이 필요한 것을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다.
사실 아파트 공급 쏠림은 불가피한 측면이 적지 않다. 자산가치, 편리성, 환금성 등 여러면에서 아파트만큼 좋은 주거유형이 없기 때문이다. 단 상대적으로 고가이다 보니 빌라와 오피스텔 등 비 주거상품이 주거 사다리 역할을 하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통계청 자료를 보면 2022년 평균 가구원수는 빌라 2.18명, 비 주거용건물 2.02명 등이다. 아파트는 2.57명이다. 가구원수 기준으로는 아파트와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문제는 관련 법과 제도도 아파트에 너무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대표적인 것이 주택법이다.
1973년 제정된 주택법(옛 주택건설촉진법)의 목적은 '쾌적하고 살기 좋은 주거환경 조성에 필요한 주택의 건설·공급 및 주택시장의 관리 등에 관한 사항을 정한다'고 규정돼 있다. 시행사 한 임원은 "주택법이 말이 주택법이지 알고 보면 아파트법"이라며 "아파트 이외에 살고 있는 나머지 절반을 위한 법은 아니다"고 말했다.
■"주거사다리 붕괴 현실화"...새로운 접근법 필요
최근에는 건설경기 침체와 전세사기, 공사비 급등 등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하면서 비 아파트 시장이 고사위기를 맞고 있다. 국토부 자료를 보면 올 1~9월 전국의 비 아파트 인허가 실적은 3만6013가구로 집계됐다. 지난해 같은 기간(6만7971가구) 대비 47% 가량 감소했다. 매매 거래에서 빌라·오피스텔 등 이른바 비 아파트가 차지하는 비중도 뚝 떨어졌다.
정부가 뒤늦게 비 아파트 공급 활성화에 나섰지만 효과를 거두기가 쉽지 않다는 분석이다. 전문가들은 비 아파트의 안정된 공급을 위해서는 일관된 정책과 새로운 접근법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실제로 아파트 공급이 부족하면 빌라·오피스텔 규제를 완화하고, 시장이 안정되면 다시 강화하는 것이 반복돼 왔다. 안정적인 공급보다는 아파트 대체수단으로 비 아파트 정책을 활용해 오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창무 한양대 교수는 "과거 문재인 정부 때 아파트를 규제하면서 빌라·오피스텔 등이 과도하게 공급된 측면이 있다"며 "비 아파트의 경우 무엇보다 일관된 제도가 없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이다"라고 지적했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도 "모든 사람이 아파트에 살수 없고, 그렇다면 다른 주거형태를 누군가는 꾸준히 공급해야 하는 게 현실"이라며 "이런 관점에서 좀 더 다른 시각에서 심도 깊게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라고 말했다.
김현아 가천대학 초빙교수는 "빌라·오피스텔 등 비 아파트 시장의 문제는 신뢰를 갖춘 사업자가 없고, 유지 보수가 매우 힘들다는 점"이라며 "한 예로 유지 보수의 경우 마을 단위로 플랫폼 비즈니스를 활용하는 방법도 한 대안이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신용을 갖춘 개발업체들이 나타날 수 있도록 기반을 조성하는 방안도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건설업체 한 고위 임원은 "비 아파트 시장의 추락이 가속화될 경우 아파트와 비 아파트 간의 자산격차가 커지는 것 외에 서민 주거 사다리 붕괴라는 최악의 상황을 맞게될 수 밖에 없다"라고 우려했다.
ljb@fnnews.com 이종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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