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달자 시인의 고통이여 나의 친구여 !
가을 벗 겨울 친구
일러스트=정기현 기자
가을은 깊고 겨울은 어깨에 닿는다. 산책길은 낙엽으로 덮여 있고 빈 가지 위 하늘은 맑은 청색으로 탄성을 울리고 목덜미는 찬바람에 시리다. 가을은 옷깃을 가리고, 겨울은 한걸음 덥석 손을 잡는다. 가을과 겨울 사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혼자 우동 한 그릇을 먹으며 생각한다. 단 한 사람이라도 속을 터놓고 이야기하며, 그 이야기가 어떤 이야기라도 마음이 편한 친구가 있다면 행복할 것이라고.
친구? 벗? 마음 통하는 사람? 내 속을 왔다갔다 하는 사람? 내가 가장 어려울 때 옆에 있어 주는 사람? 진심으로 날 걱정해 주는 사람? 자 이 모든 것을 모두 털어넣어서 하나의 단어를 만들면 결국 '친구'가 될 것이다. 나는 학생들에게 늘 "사람을 버는 사람"이 되라고 강조했다. 돈을, 명예를 버는 사람이 아니라 '사람'을 버는 사람이 되라고 한 것은 세상을 좀 살아보니 소중한 것의 실체가 눈에 보이는 듯했기 때문이다.
어쩌면 다 아는 이야기인지 모른다. 그런데 그 친구 하나를 가지기가 너무 어렵다. 왜 그럴까. 나는 그 친구라는 것을 가지려고만 했지 그 가지는 과정에서 희생할 줄을 몰랐는지 모른다. 가족과 먹고사느라 진정한 친구 하나를 가지지 못하고 건성으로 친구 친구 하면서 그 친구의 가슴속 아픔 하나를 아는 척도 못하며 살아 왔는지 모른다.
좋은 집에 좋은 가구에 좋은 옷에, 손가락에 비싼 명품으로 시계를 가락지를 지니고 있으나 마땅한 친구 하나가 없다는 그것은 '거지'나 다름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아침이면 안부전화를 하고 낮에는 같이 점심을 먹으며 산책을 할 수 있는, 그래서 몸이 같이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같이 있는 친구가 있다면 그는 누구라도 잘 살아 온 사람일 것이다.
남프랑스 여행을 할 때 두 여성이 지긋한 나이에 함께 즐겁게 다니는 것이 부러웠다. 내가 물었다. 친구냐고? 친구라고 둘이 함께 답했다. 그들은 벌써 30번은 함께 여행을 한다고 했다. 내가 웃으며 싸우지는 않느냐고 물었다. 둘이 함께 웃으며 친구가 되려면 견디어야 하고 견디는 만큼 사랑은 온다고 대답했다. 그들의 말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친구를 가지는 것은 결코 요행이 없다. 행운 가지고도 안 된다. '내가 더 먼저'를 백번 천번 실행했을 때 친구는 자연스럽게 내 옆에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조선시대 학자 이덕무 선생도 친구 하나 가지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를 말한 적이 있다. 좋은 벗을 얻기 위해 십년 동안 뽕나무를 심어 키워서 다시 일년을 누에를 키워 다시 일년을 실을 뽑아 아내가 수를 정교히 놓은 그 비단 천을 강으로 가져가 좋은 벗에게 펴 보일 것이라고 했다. 이덕무 선생 같은 인내와 정신 수양의 대가도 좋은 벗을 만드는 데 이렇듯 10년을 가뭇 넘는 시간을 바쳐도 될까 말까 하다고 말한 것이다. 나는 늘 이 말에 고개를 숙인다. 마음이 답답해진다. 친구는 가지고 싶은데 도무지 이와 같은 시간을 정교하게 바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것이다.
늘 외롭다 외롭다 하면서 정작 친구를 가지는 노력과 희생에 대해 모른 척한 것이다. 그러니 친구가 내게 손을 내주겠는가. 참 오래 살았으련만 지금도 부끄럽게도 단 한 명의 친구도 어렵게만 느껴진다. 혼자 밤을 앓으며 뜨겁게 열이 올라 정신이 혼미해질 때 나는 밤 두시라도 전화할 수 있는 친구가 없다는 것에 내게 실망한다. 누가 내 부근에서 그렇게 혼자 앓았을 친구가 있었을 것이다. 우린 서로 폐가 된다며 사양했을 것이고 '이 밤에… 뭘' 하며 혼자 앓았을 것이다.
나는 그렇게 살았다. 그렇게 산 것이 젤 후회된다. 좋은 친구를 가진 사람은 재벌이다. 이 세상에서 돈을 얕볼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좋은 친구라고 나는 생각한다. 서로 편하게 마음을 통하며 언제 봐도 지루하지 않고 도와주고 싶으며 그 친구와 생의 마지막까지 가도 무방한 그런 친구가 있다면 더 이상 무엇을 바랄 것인가.
같이 밥 먹고 산책도 하고 같이 시장도 돌아다니고 서점에 가 같이 책을 읽고 갤러리도 다니며 여행도 같이 하며 같이 한집에서 잠을 자기도 하는…그래서 친구에게 좋은 일이 있으면 먼저 기뻐하고 축하해주며 자기 일처럼 좋아하는…그러다가 필요할 때 밤 두시라도 달려갈 수 있는 내 집 비밀번호를 가지고 있는 친구가 있으면 좋겠다.
이것은 우선 인간의 결점과 결핍을 너그럽게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이 필요하다. 수용이라는 선물 말이다. 내게 좋은 친구는 어떻게 가지느냐고 묻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럴듯하게 대답을 했지…아는 척하면서 말이다. 그의 결핍을 아껴주고 그의 성격을 수정하려 들지 말고 받아들이고 내가 절반은 더 잘한다고 생각을 하며 내 귀중한 것을 친구에게 줄 수 있어야 한다고. 뭐 그런 이야기를 수없이 하면서 나는 친구에게 비판하면서 인색했다. 행복할 리가 없다.
하늘의 신은 우리가 행복하기를 바란다. 그래서 우리 마음속에 행복해지고 싶어 하는 욕구를 심어 놓은 게 아니겠는가. 나는 반역자였던 것이다. 올겨울의 양식은 '막막함'이 될 것 같다.
신달자 시인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