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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솟는 물가에 '초절약 짠테크' 하는 소비자들...유통가는 초저가 경쟁[고물가·고금리 시대의 그늘(7)]


치솟는 물가에 '초절약 짠테크' 하는 소비자들...유통가는 초저가 경쟁[고물가·고금리 시대의 그늘(7)]
고물가 속에 최근 1년 새 먹거리 외 생활용품과 주요 가공식품 가격도 크게 오른 것으로 나타난 지난 14일 서울시내 대형 마트에서 시민들이 장을 보고 있다. /사진=박범준 기자

[파이낸셜뉴스] #. 1인 가구인 직장인 김모씨(32)는 지출을 줄이기 위해 최근 장 보는 횟수를 일주일에 2번에서 1번으로 줄였다. 2주일에 한 번씩 대형마트에 들러 계획에 없던 과자, 빵 등 간식거리 혹은 제철 과일을 사는 일도 없어졌다. 김씨는 "똑같이 장을 봐도 예상했던 것보다 1.5배씩 값이 더 나오더라"며 "견물생심이라고 마트에 갈 때마다 눈에 들어오는 물건을 살까 말까 고민하느니, 돈을 아끼기 위해선 아예 마트 가는 횟수를 줄이기로 했다"고 말했다.

유통가에 고물가 먹구름이 짙다. 우윳값, 맥줏값에 이어 분유·기저귀 등 육아용품 가격까지 줄줄이 오르며 소비 심리가 갈수록 쪼그라들고 있어서다. 고물가를 피부로 체감하는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하루 10원도 쓰지 않는 '무지출데이', 냉장고에 남은 식재료를 털어 한 끼를 해결하는 '냉장고 파먹기' 등 불황 때마다 유행하는 초절약 짠테크(짜다+재테크) 바법들이 인기다.

유통업계는 반값 삼겹살·킹크랩 등 각종 할인 행사에 10원, 100원 단위의 초저가 경쟁까지 위축된 소비심리를 자극하는 데 총력을 쏟고 있지만 신통찮은 분위기다. 5000원 짜리 균일가 화장품이 불티나게 팔리는 상황 속 마진율을 크게 낮춘 박리다매형 자체브랜드(PB) 생필품이나 아침 출근길 '100원 아침밥'까지 등장하는 등 유통가의 출혈경쟁도 갈수록 치열해지는 모양새다.

■체감도 높은 품목 물가 잇달아 상승
21일 통계청 국가통계포털(KOSIS)에 따르면 지난달 우유 소비자물가지수는 122.03으로 지난해 같은 달보다 14.3% 상승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가 있던 2009년 8월(20.8%) 이후 14년 2개월 만의 최고치다. 설탕은 17.4%, 아이스크림은 15.2%, 커피는 11.3% 각각 상승했다. 빵 물가 역시 지난해 같은 달보다 5.5% 올랐고, 2년 전과 비교하면 21.6% 상승했다.

치킨과 햄버거 등 외식 물가를 비롯해 소줏값과 맥줏값, 육아용품, 화장품 가격까지 잇달아 올랐다.

고물가 상황이 이어지면서 지갑을 닫기 시작한 소비자들은 외식보다는 부담 없는 집밥을, 장보기 대신 '냉장고 파먹기'로 자린고비를 자처하고 있다. 작은 소비부터 줄이기 위해 남은 식재료를 활용해 한 끼를 해결하는 냉장고 파먹기나 하루 동안 단 1원도 쓰지 않는 무지출데이 실천 등은 대표적인 짠테크 방법 중 하나다. 공산품에서도 초저가를 선호하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500원부터 5000원까지 화장품도 균일가로 판매하는 다이소의 기초 화장품이 '매진 행렬'에 1~8월 화장품 매출은 전년 대비 160%가량 증가했다. 지난달 25일까지 이커머스 업체 G마켓의 10만원 미만 중저가 상품 거래액은 전년 대비 12% 늘었고, 1만원이 채 되지 않는 초저가 상품도 같은 기간 7% 증가했다. 외식보다는 부담 없는 집밥을 선호하는 경향 속 즉석밥·컵밥 거래액은 53% 늘었고, 냉동식품과 통조림·캔은 21% 증가했다.

■업계는 치열한 초저가 경쟁
치솟는 물가에 '초절약 짠테크' 하는 소비자들...유통가는 초저가 경쟁[고물가·고금리 시대의 그늘(7)]
지난 15일 다이소 명동역점 화장품 코너에 다양한 마스크팩과 화장품들이 진열돼 있다.

꽁꽁 얼어붙은 소비 심리 속 소비자들의 지갑을 열기 위한 유통업계의 초저가 마케팅은 갈수록 치열해지는 양상이다. 가격을 떨어뜨리기 위해 마진율을 대폭 낮춘 PB 상품이 대표적이다.

홈플러스가PB 상품으로 내놓은 '이춘삼 짜장라면'은 1봉지에 500원꼴로 저렴한 가격에 입소문을 타며 지난해 12월 첫 출시 9일 만에 초도물량이 전부 매진된 초가성비 상품이다. 초가성비 상품 인기를 확인한 홈플러스는 지난달에는 아예 초저가 생필품 PB인 '심플러스 일회용품'까지 만들었다. 위생장갑, 빨대 등 자주 사용하는 일회용품을 판매하는 심플러스 상품은 출시 한 달 만에 판매량이 50% 느는 등 인기를 끌고 있다. 편의점도 마트 못지않은 상품 구색을 갖춘 초저가 PB로 가성비를 찾는 수요를 빨아들이고 있다. 편의점 CU가 2021년 업계 최초로 선보인 PB인 '헤이루(HEYROO) 득템 시리즈'는 초저가를 표방한 자체 브랜드로, 김치와 라면, 계란, 닭가슴살 등 잘 팔리는 인기 품목을 제조사 브랜드(NB) 대비 절반 수준에 판매한다. 저렴한 가격에 상품마다 수백만개씩 팔릴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대규모 할인 행사가 잇달아 열리며 유통업계의 새로운 대목으로 자리 잡은 11월 대표 상품으로 내걸린 '반값' 상품들도 저마다 저렴한 가격을 앞세운 상품들이다. 이달 들어 이마트·롯데마트·홈플러스 등 마트 3사에서 진행한 삼겹살 등 반값 행사는 순식간에 긴 줄 속에 매진 행렬을 이어가는 등 인기다.

업계 관계자는 "고물가 상황이 지속되며 생활밀착형 상품에서 특히 더 저렴한 상품을 찾으려는 수요가 크게 늘고 있다"고 말했다.

clean@fnnews.com 이정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