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tensible Business Reporting Language' XBRL 단계적 확대
기업공시용 국제표준 전산언어... 재무제표·주석 내용 불일치 해결
계산 오류도 차단해 정확도 향상, 기존 문서를 영문으로 자동변환
해외 투자자 접근성 높일 수 있어
#. 외국인 A씨는 삼성전자를 계기로 한국 주식시장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10대 기업을 추려 우량주 투자를 하고 싶었다. 하지만 한국어를 모르는 A씨가 전자공시시스템(DART)를 뒤져 개별 공시를 찾아내 비교하는 일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결국 포기했다. 그런데 이제 한국기업의 공시가 영어로 자동 번역돼 블룸버그 단말기 등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단 얘기를 들었다. 또 전산언어로 바뀌면서 기업의 재무정보로 통계를 내고, 비교·분석하기 쉬워진다는 소식에 A씨는 다시금 한국증시로 시선을 돌렸다.
XBRL이 안착된 이후 투자자들이 겪게 될 투자시장의 변화를 예상해봤다. 금융감독원이 주도하는 한국형 XBRL의 단계적 확대는 국내 투자자를 넘어 이처럼 외국인 접근성을 높임으로써 해외 자금을 유치할 수 있는 통로를 마련할 전망이다.
XBRL의 단계적 확대는 재무제표 본문뿐만 아니라 주석도 그 대상에 포함시키는 작업을 뜻한다. 비교·분석이 용이하게 되는데 그치지 않고, 심도 있는 기업분석이 가능해진다. 기업분석의 '대중화' 길이 열리는 셈이다.
■XBRL, 태그가 붙여진 전산언어
21일 회계업계에 따르면 투자자나 기업들에 생소한 'XBRL'은 쉽게 말해, 공시 전산언어다. 'eXtensible Business Reporting Language'의 앞 글자를 딴 용어로, 재무정보 작성·유통·분석을 획기적으로 개선하고자 1999년 비영리 국제컨소시엄인 'XBRL International'이 제정한 기업 재무보고용 국제표준 전산언어다.
종전 공시방식인 HTML, PDF 데이터는 인터넷상 검색·표시·전달·배포는 가능했으나 컴퓨터가 인식할 수 없었다. 이에 데이터 확보·비교·분석 등 활용 측면에서 한계를 지녔다.
XBRL은 데이터 작성단계에서 재무제표 전체, 개별계정과목 및 수치에 대해 표준화된 식별코드(바코드 Tag)가 부여된다. 국가·언어·기업이 하나의 '폼(form)'에 맞춰 '컴퓨터가 알아들을 수 있는' 용어로 탈바꿈하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그간 비금융업 상장사 재무제표 본문에 대해서만 XBRL 데이터를 개방해왔다. 그러나 주석 정보를 활용한 기업분석이 막히고, 외국인 투자자에게 주석 정보 등이 실시간 공개되지 않았다. 금융당국은 국제적 추세에 부합하고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 등을 위해 XBRL 데이터 제공 범위의 순차적 확대를 추진하는 신(新) XBRL 공시체계를 도입했다.
■XBRL 도입, 왜 중요한가
금융당국과 회계업계가 XBRL 확대에 힘을 쏟는 이유는 무엇보다 '회계투명성' 제고다. 표준 데이터에 내장된 계산식 등 XBRL 고유 기능을 통해 재무제표와 주석 간의 내용 불일치, 계산 오류 등이 방지돼 재무정보 정확도가 향상된다.
통계화도 수월해진다. 공시가 국제규격에 맞춤화되면 국내외 투자자들은 한국의 기업 공시를 간편히 찾아볼 수 있고, 데이터 구축도 원활해진다. 국내는 물론 해외 투자자도 상장사 재무제표·주석을 엑셀 등으로 쉽게 뽑을 수 있어 비용절감도 이뤄진다.
금융당국과 회계법인 입장에선 업무 효율성이 높아진다. XBRL 데이터를 기반으로 중·장기 추세분석, 유사집단 비교분석 등이 가능해지면서 분식 리스크 고위험군을 선정, 정밀 심사하는 등 감리를 촘촘하게, 속도감 있게 진행할 수 있다. 이는 다시 회계감사 품질을 향상시킴으로써 회계투명성 제고에 기여하게 된다.
기업들 공시가 뜨자마자 즉시 자동 활용이 용이한 데이터베이스 구축이 가능하다. 인터넷상에 무상 공개되기 때문에 정보 비대칭성 개선이나 영문 자동변환 등 재무정보 질적 향상 효과도 얻을 수 있다.
■금융당국 재무공시 선진화
금융감독원은 국제회계기준(IFRS) 도입 이전인 2007년부터 상장법인을 대상으로 재무제표 본문에 한정해 XBRL 의무 제출을 시행해왔다. 이후 국제 추세에 부합하는 재무정보 공시체계 가동을 위한 재무공시선진화 추진 태스크포스(TF)도 구성·운영해왔다.
그 결과 올해부터 사업보고서를 통해 공시되는 상장사, 비상장사 재무정보가 XBRL 데이터 기반으로 전면 개편된다. 우선 올해 3·4분기 보고서부터 금융업 상장법인, 사업보고서 제출 비상장법인(IFRS 적용법인으로 한정)을 대상으로 재무제표 본문을 XBRL로 공시토록 했다.
다만 주석의 경우 비금융업 상장법인을 시작으로 2023년도 사업보고서(통상 내년 3월 제출)부터 XBRL 재무공시를 의무화한다. 기업 공시부담을 고려해 직전사업연도 자산총액 '2조원 이상' 상장법인부터 우선 시행하고 '5000억원 이상~2조원 미만' 법인은 2024년 사업보고서(2025년 3월 제출)부터, '5000억원 미만' 법인은 2025년 사업보고서(2026년 3월 제출)를 기준으로 의무화할 방침이다.
금융업 상장법인의 주석공시 의무화는 시스템 개발이 완료되는 2024년 중 시행을 검토할 예정이다.
이미 대상 법인들은 IFRS를 적용하고 있으며, 사업보고서 제출을 하는 상장사에 준하는 공시 업무에 익숙한 기업들이므로 추가적 비용은 크게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는 회계업계의 시각이다.
다만 비상장법인과 금융사가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금감원, 한국공인회계사회, 한국XBRL본부 등이 공동으로 상시 지원체계를 구축했고, 관련 설명회 및 실무 교육을 지난 5월부터 시행해오고 있다.
■XBRL 분석 플랫폼 경쟁 '몸풀기'
XBRL의 단계적 확대는 서비스된 공시를 어떻게 포장해서 '어떻게 더 쉽고 명확하게 보여줄 것인가' 하는 문제로 이어진다. 이 과정에서 새로운 시장이 열릴 가능성도 점쳐진다.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금융당국이 만들어 무료로 XBRL 편집기를 제공하고 있으나 해당 데이터를 어떻게 투자자 입맛에 맞게 가공할 수 있는 지를 두고 민간 차원에서 플랫폼 경쟁이 치열해질 전망이다.
코스콤, 신용평가사, 자산평가사, 혹은 대상 기업 등이 해당 상품에 관심이 클 수밖에 없다.
실제 미국에선 민간에서 XBRL 재무제표 충실도를 분석해 그 결과를 제공하는 서비스 업체가 이미 여럿이다. 이러한 정보를 통해 어떤 기업이 XBRL 재무제표를 충실히 작성했는 지를 파악할 수 있고, 표준 계정과목을 사용하지 않고 있다면 그 사유를 이해관계자들이 기업에 질문할 수 있게 돼 있어 사회적 모니터링 효과도 거두고 있다.
khj91@fnnews.com 김현정 김태일 기자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