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자로서 매일 수십개의 스타트업 사업계획서(IR) 자료를 읽다 보면 창업자의 치열했던 고민의 흔적이 열기처럼 남아 있는 경우가 있다. 고민의 흔적은 대부분 사업계획서 내의 문제인식에 녹아있는데, 사업계획서는 크게 문제 정의와 해결 그리고 이를 위한 기술, 핵심역량, 경쟁사 분석, 비즈니스모델, 팀 소개와 같은 내용이 포함돼 있다. 비즈니스모델을 만들어 나가면서 창업자가 구상하는 아이디어는 문제를 인식하는 데서 출발한다. 그리고 투자자는 스타트업 대표가 이야기하는 시장의 문제점을 통해 이들이 얼마나 깊이 고민했는지 그리고 그가 겪은 경험치는 어느 정도인지를 파악할 수 있다.
창업자가 직접 겪거나 혹은 나와 가까이 있는 지인이 겪는 문제를 직접 경험하고, 이를 해결해야 하겠다는 치열한 고민의 결과로서 나온 아이디어는 제삼자 입장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보고 아이디어를 찾는 것보다 훨씬 공감의 깊이가 깊고 정교하게 다듬어질 가능성이 높다. 그 이유는 창업자 자신의 문제에서 시작하는 아이디어에서 출발하게 될 경우 문제에 더욱 몰입하고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가 높기 때문이다.
스타트업을 창업해 운영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문제인식과 문제를 해결하는 가설을 세우고 검증을 해나가고 싶지만, 비즈니스모델이 정교화돼가는 과정에서 초기에 세웠던 가설이 엎어지기도 하고 완전히 바뀌기도 한다. 고난과 역경의 연속일 수 있다는 뜻이다. 투자유치가 좌절될 수도 있고, 팀원 중에 초기 이탈이 발생할 수도 있다. 그러한 과정 속에서 창업자는 팀원들과 한배를 타고 항해하면서 꾸준히 비전을 공유하고 문제를 해결해 나가야 한다.
이러한 스트레스 상황 속에서도 '그'라는 제삼자의 문제가 아닌 '나'의 문제로 출발한 아이디어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해결할 의지가 높기 때문에 창업자의 경험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창업자의 경험에서 비롯된 아이디어가 무조건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실제 스타트업의 성공과 실패는 창업자의 문제인식에서 출발해 제품의 시장 적합성인 PMF(Product Market Fit) 달성 여부에 달렸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문제는 충분히 인식했고 해결할 의지와 솔루션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 아이디어가 시장이 원하는 아이디어인지 검증해야 한다. 우리가 고민하는 아이디어는 이미 시장에 존재하는지, 고객은 이 아이디어로 인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지, 아이디어에 대한 해결책이 이미 시장에 존재하는지 검증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문제에 집착하지 않고 솔루션에만 집착하게 될 경우에는 정작 기술혁신은 이뤄질 수 있지만 시장에서는 호응하지 않는 결과물이 나올 수도 있다. 예를 들어 구글 글래스와 모토롤라의 이리듐 위성전화를 생각해보자. 기술혁신을 이뤘고 대단한 결과물이라는 생각을 갖고 회사에서는 출시했겠지만 시장에서는 구글 글래스를 매력 없고 비싼 데다 엄청나게 불편한 프라이버시 문제를 일으켰다고 평가했고, 이리듐 위성전화는 고비사막에서는 효력을 발휘하는 위업을 달성했지만 정작 건물 안에서는 무용지물이라고 평가했다.
즉 성공적 시장창출은 기술혁신 자체가 아니라 구매자의 가치를 비약적으로 발전시켜야 하는 데 있다. 문제를 인식하고 해결하는 과정에 있어 '우리가 만들고 싶은 제품' '우리 기술을 뽐내고 싶은 제품'을 만들었지 고객을 우선으로 두지 않는다면 세계적 빅테크 기업에서 내놓은 제품이라도 실패로 끝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좋은 비즈니스 아이디어는 창업자의 경험에서 비롯된 문제인식과 그것을 해결하려는 강력한 의지에서 시작하지만, 시장 적합성과 고객의 가치 극대화를 통해 성공할 수 있다.
전화성 씨엔티테크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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