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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출 농어촌 희망가] 고령화 위기를 구조개선 기회로

임대 농지비율 50% 달해
농지임대차 제도 확 바꿔
젊은 세대 진입장벽 터야

[정현출 농어촌 희망가] 고령화 위기를 구조개선 기회로
올해 달력이 한 장 남았다. 추수를 마친 농촌 들녘은 차분한 얼굴로 겨울을 기다린다. 지혜로운 농부는 올해 위기요인은 무엇이었으며, 이를 어떻게 극복했는지 되새기며 내년 농사를 준비한다. 자연의 힘을 거스르지 않고 계절 변화에 순응하되, 이를 이용하고 극복할 방법을 끊임없이 연구한다.

농부가 시세를 자세히 살펴 대비하는 것처럼, 우리 농업을 튼튼하게 지속하기 위해서는 주요 농업 변수의 흐름을 읽고 대응책을 준비해야 한다. 자연환경 이외에 한국 농업이 맞닥뜨릴 수밖에 없는 사회경제적 환경은 무엇인가. 수많은 요인을 생각해 볼 수 있지만 큰 방향을 가늠하기 위해서는 과감하게 단순화할 필요가 있다. 필자는 다양한 변수를 긴 기간에 걸쳐 압도할 결정적 요인은 급격히 고령화되는 농업인구 구조와 전 세계에 개방된 농산물 시장 환경이라고 생각한다.

농가인구는 유례없는 속도로 줄어들면서 초고령화되고 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2010년과 2022년을 비교해 봐도 306만명에서 216만명으로 감소했다. 같은 기간 70세 이상 경영주 비중은 30.9%에서 45.5%로 늘고, 40세 미만 경영주는 2.8%에서 0.7%로 줄었다. 고령 농업인이 은퇴 시기를 최대한 미루는 가운데 젊은 세대는 농업 진입에 미온적이라는 이야기다. 문제는 농업 종사인구가 줄어든다는 사실 자체라기보다는 그 감소 속도가 너무 빨라 각종 농업 관련 법규나 행정시스템이 농업인구 변화에 적응할 시간이 모자란다는 점이다.

특히 1950년 농지개혁 이래 지금까지 소규모 자영농 체제를 염두에 두고 운영해온 농지 관련 제도를 어떻게 바꾸어 나갈 것인지가 중요하다. 농지개혁 직후와 달리 청년이 농촌을 떠나고 농업인이 고령화되면서 소유자가 직접 경영하지 않고 임대하는 농지 비율이 전체의 50%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산업화 성공이 헌법상 경자유전 원칙을 서서히 무너뜨려온 셈이다.

이런 가운데 후계자가 없는 은퇴 농업인이 내놓는 농지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는 미흡하다. 상속이나 증여로 농지를 갖게 된 사람이 농지 생산성을 높이는 투자에 나서기는 어렵다. 특히 도시 근교 농지는 택지나 산업용지로 개발하자는 강렬한 유혹을 받기도 한다. 농지 전용 허가권이 지자체에 위임되어 있어 중앙정부 단독으로 농지 총면적을 지켜내기도 어렵다. 이러다가 고령 농업인이 대거 은퇴하면 자영농 기반이 무너지고, 식량안보에 필요한 농지 규모를 유지하기 어렵지 않을까 우려된다.

한편 농산물 시장은 1995년 세계무역기구 출범과 함께 수입이 전면 개방된 후 공급자 시장(seller's market)에서 수요자 시장(buyer's market)으로 성격이 바뀌었다. 과거 자급자족하던 소규모 가족농과 달리 지금은 시장 판매를 전제로 작물을 재배하고 다양하고 까다로운 식품 수요에 부응하는 맞춤형 생산능력을 갖추는 것이 중요해졌다.

어떤 이는 보호무역 복귀 흐름을 예상하기도 하나 한국은 이미 주요 교역상대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했기 때문에 10년이 지나지 않아 대부분의 농산물을 무관세로 거래하는 나라가 된다. 아울러 증가하는 식품무역 규모가 원재료인 농산물 생산과 교역에도 예상하기 어려운 영향을 줄 것이다. 이는 청년 농업인들이 앞선 세대에 비해 훨씬 큰 도전과 기회를 해외 시장에서 맞이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시대 흐름이 이러하다면 해야 할 일의 방향은 비교적 분명하다.
고령 농업인의 품위 있는 은퇴를 지원하면서 이들이 보유한 농지를 농업기술과 경영능력을 갖춘 청년에게 순탄하게 이전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예외적으로 운영해온 농지임대차 제도도 미래 농업 발전을 이끌고 나갈 젊은 농업인이 이용할 수 있도록 과감하게 개선할 필요가 있다. 고령화 문제가 국가 이슈로 떠오른 지금이 바로 농업구조 개선에 가장 적절한 시기다.

정현출 한국농수산대학교 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