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문화유산답사기' 30주년···1권부터 다시 발도장 찍어볼까
다산이 처음 머문 주막집 '사의재', 제자 가르치고 집필한 '다산초당'
'모란이 피기까지는' 영랑 김윤식 시인이 나고 자란 생가도 있어
해남 고산 윤선도 유적지엔 조선 중기 상류 주택 '녹우당' 보존
정약용이 제자들을 가르치고 목민심서·경세유표·흠흠신서 등 600여권에 달하는 저서를 집필하며 지낸 다산초당. 한국관광공사 제공
【강진·해남(전남)=장인서 기자】 "우리나라는 전 국토가 박물관이다"라는 한 문장으로 온 국민에게 문화유산의 가치와 의미, 또 탐색의 즐거움을 일깨워줬던 교양도서 '나의 문화유산답사기'가 올해로 발간 30주년을 맞았다. 저자 유홍준 교수(74)는 지난 1993년 발간 당시 "동시대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과 함께 국토의 역사와 미학을 일상 속에 끌어안으며 살아가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의 바람은 강산이 세 번 변하는 동안 전 세계적인 K컬처의 인기, 그리고 지역관광 시대의 수혜를 받으며 분명한 현실로 드러나고 있다. 90년대 국토순례 열풍을 일으킨 답사기 1권은 강진·해남 등 남도 일대를 다루고 있다. 너무나 많은 여행지들이 각광받고 있어 잊힐 법도 하지만 유 교수가 보고 거닐었던 유적지들은 오늘도 묵묵히 같은 자리에서 '검이불루(儉而不陋)'의 매력으로 방문객들을 불러 모으고 있다.
사의재는 다산 정약용이 강진에 유배 온 뒤 처음 머물렀던 주막집이다. 강진군청 제공
정약용이 머물던 사의재
전남 강진읍에 위치한 사의재는 다산 정약용(1762~1836)이 1801년 강진에 유배 온 뒤 처음 묵은 주막집이다. 사의재는 '네 가지를 올바로 하는 이가 거처하는 집'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주막집 주인 할머니의 배려로 골방 하나를 거처로 삼은 다산이 몸과 마음을 새롭게 다잡아 교육과 학문 연구에 헌신키로 다짐하면서 붙인 이름이다. 다산은 1801년 겨울부터 1805년 겨울까지 이곳에 머물렀다. 강진군은 오랜 고증을 거쳐 지난 2007년 동문 안쪽 우물가 주막터를 원형 그대로 복원했다. 현재는 동문매반가(주막)와 한옥체험관을 운영하고 있다.
다산초당은 강진만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도암면 만덕산 기슭에 자리하고 있다. 다산은 이곳에서 제자들을 가르치고 목민심서, 경세유표, 흠흠신서 등 600여권에 달하는 저서를 집필하며 조선 후기 실학을 집대성했다. 다산이 글자를 직접 새긴 정석바위와 차를 끓이던 약수인 약천, 차를 끓였던 반석인 다조, 연못 가운데 조그만 산처럼 쌓아놓은 연지석가산 등 다산4경과 천일각 등을 둘러볼 수 있다.
다산초당에서 백련사로 이어지는 오솔길은 다산이 백련사의 명승 혜장선사를 만나기 위해 오가던 사색의 길이다. 강진군청 제공
다산초당에서 백련사로 이어지는 오솔길은 다산이 백련사의 명승 아암 혜장선사를 만나기 위해 오가던 사색의 길이다. 길이는 1㎞ 남짓이지만 산길이다 보니 도보로 30분가량 소요된다. 길의 경사는 비교적 완만하며 주변에 동백나무와 차나무가 어우러져 있어 경관이 아름답다. 오솔길 중간 지점에 해월루가 있어 잠시 쉬어가기에 좋다.
다산 정약용은 1812년 백운동 원림을 다녀간 뒤 아름다운 경치에 반해 12승경을 노래한 시문을 남겼다. 초록이 무성한 여름날의 백운동 원림. 한국관광공사 제공
옛 선비들의 놀이터, 백운동 원림
조선중기 처사 이담로(1627~1701)가 들어와 계곡 옆 바위에 '백운동(白雲洞)'이라 새기고 조성한 원림이다. 백운동은 '월출산에서 흘러내린 물이 다시 안개로 변해 구름으로 올라가는 마을'이라는 뜻으로 약사암과 백운암이 있던 곳으로 전해진다. 정원은 자연과 인공이 적절히 배합된 배치와 짜임새 있는 구성으로 담양 소쇄원, 완도 보길도의 세연정 등과 더불어 호남의 3대 정원으로 꼽힌다. 이담로는 옥판봉에서 흘러내리는 물을 그냥 떠나보내기 아쉬워 아홉 굽이 유상곡수를 만들고 정자를 만들었다. 다산은 1812년 이곳을 다녀간 뒤 아름다운 경치에 반해 제자 초의선사에게 '백운동도'를 그리게 하고 백운동 원림의 12승경을 노래한 시문을 남겼다. 현재의 건물은 이를 근거로 호남 전통별서의 모습을 재현한 것이다.
서정시인 김영랑의 생가 입구에서 그의 대표작 '모란이 피기까지는'이 새겨진 시비석을 만날 수 있다. 사진=장인서 기자
'영랑의 시혼' 숨 쉬는 영랑생가
우리나라 대표 서정시인 영랑 김윤식(1903~1950)이 태어난 강진읍 영랑생가는 중요민속문화재 제252호로 지정돼 있다. 영랑은 아호인데 문단 활동 시절 이 아호를 주로 사용했다. 영랑은 생전에 시 80여편을 발표했으며 1930년 3월 창간한 '시문학'을 중심으로 박용철, 정지용 등과 더불어 현대시의 새 지평을 열었다. 그가 쓴 시 중 60여편은 광복 전 창씨개명과 신사참배를 거부하며 이곳에서 생활하던 시기에 쓴 작품들이다. 안채는 일부 변형된 것을 1992년에 원형으로 보수했고, 문간채는 철거된 것을 영랑 가족들의 고증을 얻어 1993년에 복원했다. 생가에는 시의 소재가 되었던 샘과 동백나무, 장독대, 감나무 등이 그대로 남아 있으며, 모란이 많이 심어져 있다.
조선의 문신 고산 윤선도가 살았던 녹우당은 조선 중기 양반 상류 주택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해남군청 제공
고산 윤선도 유적지, 녹우당
전남 해남읍에 위치한 녹우당은 조선의 문신 고산 윤선도(1587~1671)가 살았던 집이다. 윤선도의 4대 조부인 효정(1476~1543)이 연동에 터를 정하면서 지은 건물로, 조선 중기 양반 상류 주택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덕음산을 뒤로하고 그 줄기인 성매산, 옥녀봉, 호산을 잇고 들어서 있어 풍수지리의 명당 요건을 모두 갖췄다.
녹우당 고택을 중심으로 고산 사당, 어초은 사당, 어초은 묘역 등이 둘러싼 형태로, 대문을 들어서면 나오는 사랑마당 앞면에는 사랑채가, 서남쪽 담 모퉁이에 백련지(연못)가 있다. 사랑채는 효종이 윤선도에게 내려준 경기도 수원 집을 현종 9년(1668)에 이곳에 옮긴 것이다. 유적지 내 고산박물관에는 국보인 윤두서 자화상과 보물 산중신곡집 등이 전시돼 있다.
en1302@fnnews.com 장인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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