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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자기 인생 하나 붙잡고 절절매며 달려가진 않았나요 [작가와의 대화]

신달자 시인의 고통이여 나의 친구여!
손을 잡아 보세요 마음까지 따뜻해집니다
마치 이 지하철을 놓치면 실패라도 하는 것처럼 헐떡거리며 앞만 보는 사이 신문 파는 아저씨에게, 좌판 상인에게 인사 한번 건네는 것을 잊은 건 아닐까요
노년을 맞았다면 속도조절이 필요합니다.
가까운 이들을 살피며 천천히 걸어가도 괜찮아요.
한해동안 쌓인 상처를 향해 미소지어 보세요.
지난 시간이여 고마웠어요. 안녕

올해도 자기 인생 하나 붙잡고 절절매며 달려가진 않았나요 [작가와의 대화]
신달자 시인
올해도 자기 인생 하나 붙잡고 절절매며 달려가진 않았나요 [작가와의 대화]
일러스트=정기현 기자
한 사람이 달려갑니다. 다시 한 사람이 달려갑니다. 그 뒤를 또 한 사람이 달려갑니다. 그들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그들을 따라 역시 달려갑니다.

왜? 왜? 왜? 그것은 모릅니다. 달려가는 사람들이 있기에 모든 사람들이 달려갑니다. 남자도 여자도 달려갑니다. 반드시 바쁜 사람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모두 달려갑니다. 무슨 일이 일어난 듯합니다. 달리는 사람 뒤에 달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것을 흔히 집단적 흥분이라고 합니다.

좀 오래된 이야기지만 어느 외국인이 호텔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다가 깜짝 놀라 짐을 챙겼다는 이야기는 이미 식상한 이야기입니다. 불이 난 줄 알았다는 거지요. 사람들이 마치 위기에 몰린 사람들처럼 달려가고 있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입니다.

저 역시 그렇습니다. 지하철을 타기 위해 계단을 내려가면서 언제나 저는 달리고 있는 기분을 면치 못합니다. 하나를 놓치면 하나는 곧 도착할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시간이 넉넉할 때도 제 걸음은 언제나 지금 떠나는 지하철을 놓치면 실패할 것 같은, 아니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처럼 재빨리 걸음을 옮깁니다. 아니 달려갑니다. 헐떡거립니다.

그렇게 달리다 보니 내가 타는 지하철의 역에 대해 설명하라면 도저히 상세하게 말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백번도 더 탔을, 아니 이백 번도 더 탔을 그 지하철 역에 대해 잘 모릅니다.

아닙니다. 하나는 정확히 압니다. 신문 파는 아저씨가 있나 없나는 정확히 압니다. 버릇처럼 지하철을 탈 때 신문을 사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신문을 사면 내릴 때까지 신문을 들여다보다가 하차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혹시 내 옆에 내가 인사해야 할 이웃이 있지는 않았을까요. 역 주변에 새로운 그림이라고 붙여 놓지는 않았을까요. 그런 모두를 그냥 스쳐 지나 온 것은 아니었을까요.

"안녕하세요?" "건강하시죠?"

그렇게 인사해야만 하는 이웃집 어른은 없었는지 생각하게 됩니다. 나만 바라보고 살아오지는 않았을까요. 지지리도 못나고 지겨운 자기 인생 하나를 붙잡고 절절매며 달려가고만 있지는 않았을까요.

가끔은 하늘하고도 손잡고 인사를 하고 국화 한 송이에게도 손잡아 주고 예쁘다고 말해주고 동네 나무들에게도 잘 컸다고 여름을 잘 지나왔다고 인사해야만 되지 않았을까요. 우리 동네는 좌판을 깔고 장사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들에게 얼굴은 익숙한데도 늘 지나쳐 오곤 했습니다. 생각하면 눈물겨운데 그들에게 인사하는 일은 흘려 버리곤 했습니다. 왜 그리 바쁘게 달려 왔는지요.

어느 날은 지하철을 타려고 묵묵히 빠르게 걷고 있는데 어느 이웃 여자분이 어깨를 살짝 치면서 "언제나 아주 급하게 가고 계세요. 아주 바쁘신가 봐요" 하고 말을 걸었습니다. 그 사람 말로는 나를 여러 번 집 주변에서 보았는데 언제나 빠르게 걷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그래 나는 얼마나 바쁘게 살아왔는가. 급하지 않고 여유로운 날도 있었습니다. 아니 심심하다고 느끼는 날도 많았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난 산책길조차 달리고 있었던 건 아니었을까요.

젊음의 뒤안길은 지나갔습니다. 새로운 젊음의 뒤안길을 벗어나 정면으로 제 인생 앞에 서야 할 때입니다. 이제 거울 앞에서 진정으로 가야 할 길을 진정으로 바라볼 때입니다. 아주 천천히 말입니다. 인생의 노후를 살고 계신지요? 지금부터 다시 달려가야 할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조금 속도조절이 필요합니다. 바로 옆 사람에게, 가까운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면서 마음을 살피며 달려가야 하지 않을는지요. 아니 천천히 주변을 바라보며 걸어가야 하지 않을까요.

벌써 한 해가 다 가고 있습니다. 새해인사를 한 지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다시 그 인사를 해야 할 때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더 천천히 걸어가야지요. 손을 내밀어 보세요. 악수를 청해 보세요. 상대방은 마음을 열고 다가올 것이 분명합니다. 한 해가 다 가고 있습니다. 서로 인사를 나누며 손을 잡으면 우리들 언 마음까지 따뜻해지지 않겠습니까.

12월입니다. 또 한 번 마지막이란 말을 사용해야 할 것 같아요. 저도 별수 없다고 단정하고 포기한 것들이 많습니다. 어느 누구에게 꼭 밥을 사고 싶은데 지금도 미루고 있습니다. 일기 쓰는 일도 미루고, 운동하는 일도 미루고, 외국어를 공부하겠다고 벼르던 일들을 하지 못하니까 '별수 없다'고 단정해 버렸습니다.

할 수 있다고, 별수가 있다고, 생각했으면 그렇게 되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내가 좀 더 다가갔으면 사람도 내 편이 될 사람이 더 있었을 것입니다. 내가 먼저 상대방의 마음을 더 이해했으면 서로의 마음의 벽이 없을 사람도 있었습니다. 이런 식으로 상대방의 약점만을 기억하고 거리를 두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시간은 힘이 강합니다. 누구에게나 승낙 없이 앞으로 밀고 가는 것이 시간 아닙니까. 한 해를 나지막하게 더 천천히 모든 사물과 사람들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한 해를 마무리하는 제 비결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누군가의 발에 꼭 맞는 구두도 다른 사람의 발은 아플 수 있습니다.
모든 경우에 다 적용되는 삶의 비결은 없을 것입니다.

다만 고요히 천천히 그리고 진심을 다하여 새로운 시간을 맞이합시다. 지난 한 해 쌓인 상처와 아픔을 향해 미소를 지어 보세요. 그 미소는 나의 얼굴로 그리고 우리들 주변 얼굴로 나타날 것입니다. 지난 시간이여, 고마웠어요. 안녕. 우리들의 굳건한 내일의 발걸음을 봐 주세요. 안녕.

신달자 시인 jins@fnnews.com 최진숙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