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병두 보험연수원장
2023년 '부의 이동보고서'에 따르면 부자들의 해외이주 순위에서 우리나라가 7위를 기록했다. 2022년에 비해 두 배 많은 800명이 이민을 갔을 것으로 '헨리 앤 파트너스'가 예상을 했다. 중국(1만3500명), 인도(6500명), 영국(3200명), 러시아(3000명), 브라질(1200명), 홍콩(1000명)이 우리보다 많다. 멕시코(700명), 남아공(500명), 일본(300명)이 우리 뒤를 따른다. 인구 대비로 보면 우리나라의 부의 이동이 중국보다 많다.
중국, 인도, 러시아, 브라질 같은 BRICS 국가들의 신흥 부자들이 빠져나가는 이유는 쉽게 짐작할 수 있다. 특히 중국은 시진핑의 '공동부유'가 부자들의 불안심리를 부추긴 측면이 있다. 룬(潤·영어 Run의 차음)이라고 할 정도로 부의 이동이 심해져 한 해에 250조원가량이 빠져나가자 중국 정부가 제재를 강구하고 있다. 홍콩의 해외이민은 중국식 체제에 대한 거부감일 것이고, 영국은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영향 탓으로 보인다.
다른 선진국에서는 부의 이동이 별로 없는데 선진국 반열에 오른 한국이 이처럼 높은 이유는 무엇일까. 한국인이 가장 선호하는 미국, 캐나다, 호주 같은 나라들에 투자이민을 가려면 우리 돈으로 10억원 이상을 투자해야 하는데 불확실성을 감내해도 좋을 만한 유인책이 있기 때문이다. 캐나다·호주 등 상속세가 없거나 감면한도가 높은 나라(미국 부모 1인당 1170만달러까지 상속·증여세 면제)로 이주하는 것을 보면 높은 세금이 분명 중요한 원인이다. 우리나라의 상속세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평균보다 두 배 높은 50%이고, 면제한도도 부모 합계 10억원으로 낮은 것은 사실이다.
부가 이전되는 이유는 교육과 복지에서도 찾을 수 있다. 영주권을 갖게 되어서 미국, 캐나다의 국공립 학교에 자녀들을 보내게 되면 투자이민에 드는 비용을 상쇄하고도 남는 이익을 볼 수 있다는 것이 이민자들의 계산이다. 호주, 뉴질랜드 같은 복지 선진국의 영주권을 얻어도 이민비용을 상쇄한다고 한다. 은퇴 이후 좋은 요양시설에서 안락한 노후를 즐길 수 있다. 장애인을 자녀로 둔 경우는 국가가 책임을 져주니 우리나라에서 마음이 떠나기 십상이다.
부자들은 그 사회의 인프라 덕을 가장 많이 본 집단이다. 교육과 경제, 사회간접자본의 혜택을 다른 집단에 비해 가장 누렸다는 점에서 그들이 나라를 떠나는 것은 충격적이다. 이런 충격적인 보고서를 접하고도 그들의 애국심 결핍을 비난하는 소리가 별로 나오지 않는 것을 보면 세태와 인식이 많이 달라졌다. '상속세 내느니 탈조선' 제하의 기사에 비판이나 시샘 같은 반응조차 없다. 기회와 여건만 되면 탈출하겠다는 심리가 만연해서일까?
부자 이민을 막을 목적으로 상속세, 증여세를 수술하는 것이 정답 같아 보이지는 않는다. 세제는 그 사회의 고유한 발전경로와 맞닿아 있기에 전반적인 조세정책적 차원에서 들여다볼 일이다. 부자들이 떠나는 나라에서 외국인에게 투자이민을 권하기는 어렵다. 제조업 등에서 상대적으로 높은 임금을 보고 우리나라에서 취업을 하려는 사람은 많으나, 투자를 하면서 한국에 올 정도로 매력적인 요소는 없어 보인다. 이민청을 설립한다고 해서 투자이민이 늘어나는 것도 아니다.
갑자기 투자이민이 급증하는 이유를 찾아야 한다. 일시적인 것이 아니고 추세적인 것이라면 문제는 심각하다. 결국은 발전 가능성이다. 국가가 역동적이면 세금, 교육, 복지 등의 상대적 불이익을 감내하고도 한국에 남을 것이다.
미래가 밝으면 부자들이 떠나지 않을 것이고, 외국의 부자들이 우리를 찾을 것이다. 낡은 산업이 아니라 새로운 산업에서 국부가 얼마나 증가했는지 여부, 유니콘 기업의 성장 가능성, 혁신적 인재를 양성하는 교육 시스템 등 미래에서 희망을 찾을 수 있어야 한다. 2024년은 우리 미래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는 시작이었으면 좋겠다.
민병두 보험연수원장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