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라 다 빈치 산토 이폴리토'
다 빈치 서거 500주년 기념해 만든 와인
수태고지 새긴 라벨 따라 작품세계 엿봐
그의 걸작 모나리자는 도난으로 유명세
용의자로 몰린 피카소와 애꿎은 만남도
살아움직이는 시선 '스푸마토'의 마법
레오나르도 다 빈치 '모나리자' (53*77. 유채, 1503~1506년, 루브르박물관) 사진=위키피디아
게티이미지
#1."예? 모나리자(Mona Lisa) 그림이 도난당했다고요? 차라리 노트르담 성당 종탑이 사라졌다고 하시죠." 모나리자 그림이 도난당했다는 보고를 받은 프랑스 국립박물관장은 코웃음을 쳤다. 1911년 8월22일 세계 미술역사 상 가장 담대한 예술품 도난사건이 발생했지만 박물관측은 하루가 지나도록 아무도 모르고 있었다.
앞서 8월20일 일요일 오후, 인파로 북적대던 박물관에 들어온 이탈리아 출신 남성 3명은 관람시간이 끝날 무렵 몰래 박물관 내로 숨어들었다. 그러고는 휴장일인 다음날 모나리자에 접근한 후 너무도 자연스럽게 그림을 떼어내고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삼엄한 감시가 있었지만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당시엔 휴관일에 전시된 그림을 떼어내 모사본을 제작하는 일이 많았다. 이들이 모나리자를 떼가는 당일에도 그냥 모사 화가가 작업을 위해 작품을 떼가는 줄만 알았던 것이다. 박물관측은 무려 27시간이나 지난 후에야 그림이 사라진 것을 알았다. 파리경시청은 즉시 루브르 박물관을 폐관하고 프랑스 국경마저 폐쇄했지만 그림의 행방은 물론 범인에 대해 특정조차 하지 못했다.
그렇게 2년여가 흐르면서 모나리자에 대한 관심이 사그러들던 1913년 12월. 이탈리아 피렌체의 한 갤러리에 정체불명의 편지 한 통이 날아들었다. "내가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도난 작품을 가지고 있소. 이탈리아인이 그린 그림이니 마땅히 이탈리아에 있어야 할 것 같아 연락했다"는 내용이었다. 갤러리 주인이 즉시 신고를 하고 곧 범인이 붙잡혔다. 빈센초 페루지아라는 이름의 이 사내는 루브르 박물관에서 2년 동안 유리공으로 지내며 모나리자 보호용 유리케이스 제작에도 참여했던 사람이었다. 훔친 모나리자 그림을 자신의 아파트 벽장 속에 2년여 동안 보관하고 있다가 돈이 궁해지자 그림 매각을 의뢰했던 것이었다.
희대의 도난 사건은 모나리자 작품을 인류 최고의 걸작으로 만들었습니다. 모나리자 그림은 탁월한 걸작임에는 틀림없지만 전 세계 신문에 대서특필되고 연일 행방을 쫓는 기사가 쏟아지면서 더 유명세를 탄 것이죠. 더 아이러니한 것은 현대미술의 거장 파블로 피카소가 도난사건에 연루돼 조사를 받은 것이었습니다. 스페인에서 막 건너와 돈 없이 지내던 피카소는 프랑스의 젊은 시인 기욤 아폴리네르와 친했는데 아폴리네르의 조수가 약간의 정신벽력이 있는 유물 도굴꾼이었습니다. 경찰이 모나리자를 찾기 위해 혈안이 된 상황에서 조수의 행동으로 인해 아폴리네르가 소환되고 그와 친한 피카소까지 조사를 받은 것입니다. 피카소의 여자친구가 아폴리네르의 조수가 훔친 조각상 2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피카소는 모나리자 그림 도난 사건과 아무 관계가 없어 무혐의로 처리됐지만 짧지만 르네상스 미술의 거장과 현대미술의 거장이 얽힌 순간이었습니다.
#2. "내가 소유한 포도밭을 반씩 나눠 살라이와, 바티스타에게 주노라. 그리고 내 그림 모나리자와 노트는 사랑하는 제자 멜치에게 상속한다."
1519년 5월2일 인류 최고의 천재 중 한 명으로 꼽히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h)가 프랑스 루아르 지방의 한 저택에서 67세의 나이로 죽음을 맞았다. 걸작 '모나리자'는 평생을 독신으로 살면서 아들처럼 아꼈던 제자에게 줬다. 모나리자는 그가 63살의 나이에 로마를 떠나 험준한 알프스를 넘어 프랑스 앙부아즈(Amboise)로 넘어오던 77일간의 힘든 일정 중에서도 손에 꼭 쥐고 있던 그림이었다.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을 대표하는 작품 모나리자는 '리자 부인'이라는 뜻으로 그림 속 주인공은 여러 논란이 있지만 피렌체의 비단상인 프란체스코 델 조콘다의 부인 리자 게라르디였다고 추정되고 있습니다.
르네상스 시대 유명한 미술사가인 조르조 바사리(Giorgio Vasari)는 '미술사가 열전' 레오나르도 다 빈치 편에서 "다빈치는 프란체스코 델 조콘다의 의뢰를 받고 약 4년간 이 작품에 매달렸는데 결국 미완성으로 남겨뒀다"고 적고 있습니다.
그런데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왜 남의 부인을 그림에 담고 죽는 순간까지 소장하고 있었을까요. 프란체스코 델 조콘다가 그에게 돈을 지불했다거나 그림을 넘겨받았다는 근거가 없어 궁금증은 더합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모나리자의 주인공이 메디치가의 천재였으나 파치가의 반란으로 25살에 암살당한 줄리아노 데 메디치의 한 정부의 모습이었다는 설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1478년 그가 죽자 그녀도 2년 뒤 죽었기 때문에 넘겨줄 수가 없었다는 것이죠. 암살당한 줄리아노의 여인은 서너 명으로 추정되는데 그 중 사생아로 태어난 아들이 큰아버지 로렌초 데 메디치 밑에서 자라 1523년 교황 자리에 오릅니다. 교황 클레멘스 7세입니다.
모나리자는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는 신비한 그림입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 만의 '스푸마토' 기법이 적용됐기 때문이죠. 스푸마토는 '연기처럼 사라지다'라는 뜻으로 사물의 윤곽선 대신 명암의 섬세한 대조로 구분하는 기법입니다. 그림 속 여인은 의자에 앉아있지만 의자는 여인과 한 몸인 듯 붙어 보입니다. 눈동자도 검은자위와 흰자위가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습니다. 때문에 모나리자를 보는 사람은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는 느낌을 갖게 됩니다.
입꼬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가까이서 보면 미소가 드러나지 않지만 서서히 멀어지면 어느 순간 희미한 미소가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눈과 입술 윤곽선이 없기 때문에 마치 살아있는 사람처럼 표정이 변하는 것이죠. 레오나르도는 젊은 시절부터 시신을 13구나 해부했습니다. 인체에 대해 골격은 물론 미세한 근육까지 완벽하게 꿰뚫고 있었습니다. 모나리자의 신비한 미소는 그의 정교한 인체 인식과 독특한 스푸마토 기법에서 나온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레오나르도는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화가입니다. 조각, 건축, 과학, 음악 등 여러 방면에서 두각을 나타냈습니다. 그의 가장 큰 장점은 그림이었습니다. 천재들이 즐비했던 르네상스 시대에도 독보적으로 인정받았습니다. 그 중에서도 모나리자와 함께 걸작으로 손꼽는 게 '세레자 요한'입니다. 세레자 요한은 그가 죽기 직전 그린 마지막 걸작으로 1514년에 완성됐습니다. 그에 앞서 1510년 그린 '성안나와 성모자' 또한 3대 걸작으로 꼽힙니다.
레오나르도의 그림 실력은 젊은 거장 라파엘로 산치오가 흠모하고 추종했을 만큼 뛰어났지만 나머지 분야는 유명세만큼 보여준 게 거의 없었습니다. 레오나르도는 늘 완벽을 추구하는 성격이라 작품 제작 속도가 느려도 너무 느렸습니다. 그가 프로젝트를 맡으면 작업기간이 한없이 길어지다가 결국 미완성으로 끝나는 게 대부분이었습니다. 이 때문에 천대받는 예술가였습니다.
건축과 공학 분야도 과장된 측면이 있습니다. 레오나르도가 처음 구상했다고 하는 여러 원리들도 사실 그 당시엔 예술가들이 쉬는 시간에 늘 공상으로 즐겨하던 것이었습니다. 특히 톱니바퀴 기계나 크레인을 활용한 기중기 등도 마찬가지입니다. 1436년 피렌체 대성당 돔을 완성시킨 브루넬레스키가 먼저 선보인 기술이었습니다. 브루넬레스키는 높이 50m가 훨씬 넘는 높이에서 이를 활용해 건축자재를 자유자재로 올리고 내리고 했습니다. 훗날 레오나르도가 제작한 많은 기계들은 사실 브루넬레스키가 먼저 제작한 것들이었습니다. 브루넬레스키가 발주한 공사를 맡은 사람이 안토니오 델 베로키오였는데 그가 레오나르도의 스승이었습니다. 레오나르도가 스승과 함께 이 공사에 참여하면서 당시 공학기술을 보고 배운 것이었죠. 베로키오 공방은 르네상스를 연 산실이었습니다. 그의 제자가 레오나르도 다 빈치, 산드로 보티첼리, 기를란다요, 페루지노였습니다. 산드로 보티첼리는 비너스의 탄생, 프리마베라를 그렸고 기를란다요는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의 스승입니다. 페루지노는 라파엘로 산치오를 길러낸 사람입니다.
#3.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와인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았다. 빈치에서 나고 자랄 당시 아버지가 20헥타르의 포도밭을 소유하고 있었다. 당시 그가 쓴 노트 기록을 보면 포도 재배, 와인 제조 등에 대해 지금으로 봐도 상당한 식견을 가지고 있었다. 특히 포도가 숙성 단계에 따라 어떻게 달라지는지, 발효를 어떻게 해야 좋은 와인이 만들어지는지를 알고 있었다.
레오나르도가 나고 자란 그 마을에서 1961년 설립된 칸티네 레오나르도 다 빈치 와이너리가 그의 서거 500주년을 기념해 내놓은 와인 중 빌라 다 빈치 산토 이폴리토(Villa da Vinch Santo Ippolito) 와인을 열어봅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수태고지를 라벨에 새긴 이 와인은 산지오베제 40%, 메를로 30%, 쉬라즈 30%의 일반적이지 않은 블렌딩입니다.
토스카나 와인답지 않은 풀바디 와인으로 잔에서는 검은색 과일과 발사믹, 바닐라 향이 먼저 들어옵니다.
알코올 도수 13.5%로 높지 않지만 굉장히 농밀하고 묵직한 와인으로 두꺼운 타닌과 스파이시하고 스파클링한 느낌도 있습니다. 피니시도 초콜릿, 허브 향이 계속 이어집니다.
kwkim@fnnews.com 김관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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