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드라마 '성난 사람들'이 16일(한국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 피콕극장에서 열린 제75회 에미상 시상식에서 미니시리즈·TV영화 부문 작품상 등 8관왕을 차지했다. 남녀주연상을 수상한 앨리 웡과 스티븐 연, 이 드라마를 연출·제작한 이성진 감독(왼쪽부터)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파이낸셜뉴스] "세상을 살다 보면 나를 좋아해 주는 사람이 없고, 누구에게도 이해받을 수도, 사랑받을 수도 없다고 느끼는 순간이 있어요."
넷플릭스 드라마 '성난 사람들'을 연출한 이성진 감독의 수상 소감 중 일부다. 이 드라마는 지난 15일(현지시간) 미국 방송계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프라임타임 에미상에서 작품상과 남녀 주연상을 포함해 8관왕을 거머쥐었다.
‘성난 사람들’의 원제 ‘비프(BEEF)’는 불평 또는 불평해대는 것을 말한다. 드라마는 운전 중 벌어진 사소한 시비가 복수, 해코지로 이어지며 논란이 커지는 과정을 10부작에 담았다. 지난해 4월 공개 후 넷플릭스 시청 시간 10위 안에 5주 연속 이름을 올리는 등 세계적으로 흥행했다.
세상을 비관적으로 바라보는 두 주인공은 한국계 미국인 대니(스티븐 연)와 베트남계 미국인 에이미(앨리 웡), 모두 이민자들이다. 드라마는 이들을 통해 이민자들의 애환을 풍자적으로 그려내면서도, 늘 우울과 분노로 차 있는 현대인의 보편적인 모습을 동시에 담아냈다.
결국 '성난 사람들'이 이렇게 세계적으로 큰 공감대를 얻은 배경은, 이 감독의 수상 소감과 같이, 인생을 살면서 누구나 어려운 시간을 겪을 수 있는데, 그런 모습을 담백하게 그려낸 것이 시청자들에게 울림을 준 것 아니냐는 시각이 짙다. 외신의 평가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기생충, 오징어게임, 미나리, '성난 사람들'까지
(로스앤젤레스 REUTERS=연합뉴스) 드라마 '성난 사람들'의 스티븐 연이 15일(현지시간) 로스앤젤레스(LA) 피콕 극장에서 열린 제75회 프라임타임 에미상 시상식에서 미니시리즈·TV영화 부문 남우주연상을 받은 뒤 수상 소감을 말하고 있다. 2024.1.16
특히 한국계 배우가 미국 주요 영화·TV 시상식에서 건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의 이정재에 이어 두 번째다. 이를 두고 영화 ‘기생충’(2019년)과 ‘미나리’(2020년), ‘오징어게임’(2021년)을 거치며 한국 콘텐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며, 이제는 'K-콘텐츠'가 작품성, 흥행 가능성 등 여러 부문에서 경쟁력을 점차 인정받는 것 아니냐는 해석도 있다.
외신에서는 '성난 사람들'이 작품 '완성도'가 높다고 평가한다. 뉴욕타임스(NYT)는 이 작품이 스토리의 예측 불가능성과 복잡성, 시청자로 하여금 자기 일처럼 느끼게 하는 힘으로 온라인에서 많은 찬사를 받았다고 전했다. 비평가들 역시 '성난 사람들'의 팬이라고 덧붙였다.
NYT의 TV부문 수석평론가인 제임스 포니워지크는 "지난해 선보인 가장 활기차고 놀라우며 통찰력을 가진 작품 중 하나"라고 평가했다.
여기에 이번 수상은 골든글로브 TV 미니시리즈 부문에서 거둔 첫 아시아계 예술가들의 수상이라는 점에서 특별하다는 시각도 있다.
NBC 방송은 '성난 사람들'이 아시아계 미국인이 연출하고 출연한 작품으로 이 부문에서 처음 수상했다며 "역사를 만들었다"고 전했다. 아울러 이번 수상에 대해 ”이제는 아시아계 미국인들의 문화와 정체성을 설명하는 데 시간을 쓰지 않는다. 굳이 그렇게 할 필요성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며 “대신 자신만의 방식을 통해 자기들의 공간을 만들면서 주류 문화를 (새롭게) 정의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전문가는 결국 콘텐츠를 전 세계로 보여줄 수 있는 넷플릭스 등 OTT 글로벌 플랫폼과 한국의 완성도 높은 작품이 만난 결과라 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정덕현 문화평론가는 '파이낸셜뉴스'와 통화에서 "지금 콘텐츠 시장이 이제 글로벌로 재편됐다. 여기에는 이제 OTT 같은 글로벌 플랫폼이 바탕이 됐다고 볼 수 있는데, 이런 상황에서 필요해지는 부분들이 사실은 문화 다양성 관련된 콘텐츠들이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최근의 미국의 시상식 등 일련의 흐름을 보면 이민자에 관련된 콘텐츠들이 상당히 주목을 많이 받았는데, 그런 흐름 안에서 (성난사람들은) 이제 '읽을 수 있는 작품'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최근 몇 년간 '오징어 게임' '기생충' 이런 작품들 통해서 한국 문화에 대한 부분들의 관심들이 굉장히 많이 높아진 부분이 있고 이렇다 보니 다른 문화권보다는 조금 더 익숙하게 다가온 면들이 좀 있어, (우리 작품에 대해) 관심도 굉장히 높아진 것으로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결국 K-문화에 대한 관심들이 높아지면서 이번 수상 결과까지 이어지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설명했다.
hsg@fnnews.com 한승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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