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재호 한국외국어대 국제학부 교수
지난 1월 13일 대만 총통선거가 있었다. 라이칭더 집권 민진당 후보가 당선되었다. 국내외 다수 분석은 "2024년 세계 선거의 해에 대만이 민주진영에 첫 승리를 안겼다"였다. 하지만 이런 친중 국민당 대 친미 민진당이란 미중 대리전 프레임은 매우 자의적, 이분법적, 진영 논리적 접근으로서 의미와 해석에 있어 다소 과잉·과장된 측면이 있다. 국민당이나 민진당이나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모두 친미 세력이다.
라이의 당선은 민진당이 잘했다기보다는 국민당이 못하고 민중당이 선전했기 때문이다. 라이는 40.1%(558만) 득표로 국민당 허우유이의 33.5%(467만), 민중당 커원저의 26.6%(369만)를 앞섰다. 4년 전 총통선거에서 같은 당 출신 차이잉원 현 총통이 얻은 57%(817만)보다 크게 낮았지만, 중도 확장엔 실패했어도 기본은 했다. 이번 40.1%는 차이 정부의 실정과 라이 후보의 개인적 불법행위와는 무관한 '무조건 민진당' 지지층이다.
국민당이 얻은 31%는 지난 1월 16일 전체 대만인의 67%가 자신을 대만인, 3%가 중국인, 28%가 대만인 혹은 중국인이라고 답한 퓨리서치의 정체성 조사 결과와 일치한다. 즉 31%(3+28)가 국민당의 기본 지지율이다. 국민당은 준비가 덜 된 총통 후보와 당 지도부의 몸사림, 우유부단으로 승리하기 어려웠다. 그나마 유력한 부총통 후보를 내세운 덕에 3위를 면할 수 있었다. 혹 선거를 제대로 치렀다 해도 4년 전 선거에서 국민당 후보가 얻은 38.6%(552만)가 최대치였을 듯싶다. 이는 국민당의 자업자득 결과이다. 천수이볜 총통 시절 대만인 정체성 교육 강화를 저지하지 못했고, 마잉주 총통 시절 탈대만화 교과서 개정에 실패했다. 그때 학생들이 이제 주요 유권자가 되었고, 기울어진 운동장이 되었다. 민중당은 이들의 반국민당 성향과 부동산 가격 폭등으로 인한 반정부 정서에 힘입어 예상보다 더 많이 득표했다.
양안관계 관련, 민진당 전체를 일편단심 독립으로 생각할 수 있으나 당내엔 여러 계파가 있다. 차이가 현상유지파라면 라이는 뼛속까지 독립파이다. 재선 시 본인의 속내를 드러내겠지만 라이 1기는 여러 제약이 있다. 당장엔 바이든의 현상유지 대만정책과 여소야대 상황으로 양안정책은 로키(low key)로 갈 듯하다. 미국이 가장 선호하는 친미 인사로서 부총통 당선인 샤오메이친은 미국의 '주대만 대리인' 역할을 충실히 할 것이다.
지난 바이든 미국의 대만정책은 트럼프 못지않게 국익 우선이었다. 대만침공설 군불은 2021년 필립 데이비슨 전 미국 인도태평양사령관이 지폈으나 작년 3월 1일 대만이 대규모 무기구매를 한 직후 잠잠해졌다. 이어 11월 샌프란시스코 정상회담에서 미중 모두 상호 필요에 의해 사실상 '정전협정'을 맺었다. 총통선거 직후 바이든은 "독립을 지지하지 않는다"고 했고 선거 다음 날 예방외교 차원에서 비공식 대표단을 파견했다. 심지어 선거 직전인 9일 워싱턴 펜타곤에서 미중 국방정책조정회담까지 열렸다.
대만 총통선거가 4월 한국 총선에 주는 시사점이 적지 않다. 극단의 정치 지형과 성향은 잘 변하지 않으며 양당체제에 실망한 중도층의 향방이 선거에 크게 영향을 미친다. 둘째, 이번 총통선거에서 중풍(中風)은 없었으나 4월 총선 때 북풍은 있을까? 분다면 바람세기는 어느 정도일까. 셋째, 라이 외교는 민주·자유·가치를 내세우면서 유사 입장국들과 연대를 추구할 것인데 한국도 그 대상이다.
넷째, 이번 선거무대 뒤로 미중 국익의 이면합의가 어른거린다. 대만 내부적으로 유사시 미국이 출병할지 회의론이 적지 않다. 그럼 한반도 위기 시 미국의 선택은 무엇일까. 우리는 우리의 국익을 보호할 수 있을까. 미중의 국익이 자꾸 어른거린다.
황재호 한국외국어대 국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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