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企 83만7000곳 큰 혼란
중대재해 책임 물으려면
그에 상응하는 지원 필수
서강대 경영학과 명예교수 前 중소기업진흥공단 이사장
중소기업들이 그토록 염원하던 중대재해처벌법의 유예조치가 연장되지 않았다. 2022년 1월 27일부터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되었는데, 50인 미만 기업은 2년간 적용을 유예했다. 2024년 들어유예기간 2년 종료가 다가오며 중소기업들은 준비 부족을 이유로 유예 연장을 요구했다. 하지만 국회에서 여야가 합의를 보지 못해 유예안 처리가 무산되며 전면 확대 적용되었다.
새롭게 중대재해처벌법의 적용대상이 되는 50인 미만 사업장은 83만7000곳이나 된다. 유예조치 연장을 기대했다가 급작스럽게 적용받게 된 영세사업장에서는 큰 혼란이 발생하고 있다. 이에 고용노동부는 50인 미만 사업장을 지원하기 위해 '산업안전 대진단'을 추진하고 있다. 온·오프라인으로 참여해 총 10개의 안전보건관리체계 핵심항목에 대해 진단하고 결과에 따라 컨설팅, 교육, 기술지도 및 시설개선을 포함한 재정지원 등을 신청할 수 있다.
이런 정부 지원을 진작 받으면 될 것을 왜 중소기업들은 유예를 주장하는 것인가. 그것은 중대재해처벌법 자체를 겁내기 때문이다. 이 법은 말 그대로 '처벌법'이다. 법제처 국가법령정보센터에서 '처벌법'을 검색하면 '가정폭력처벌법' '성매매처벌법' '성폭력처벌법' '스토킹처벌법' '선박위해처벌법' '화염병처벌법' 등이 나온다. 이름만 봐도 어마무시한 법들이다. 그런데 이런 법보다 중대재해처벌법의 처벌이 훨씬 더 세고 엄하다.
무엇보다 가장 엄격한 처벌은 사망자가 1인 이상인 중대재해가 발생할 경우 사업주와 경영책임자를 1년 이상의 징역형이나 10억원 이하의 벌금형(병과 가능)에 처할 수 있게 하는 조항이다. 이 처벌규정은 법리적으로도 논란의 여지가 많다.
통상적 형사처벌에서 징역은 상한형이다. 그런데 중대재해처벌법은 1년 이상의 징역으로 하한형이다. 자칫 사내 교통사고에서 사망자가 나와 중대재해로 간주되면 경영책임자가 최소 1년 이상의 징역을 받을 수 있다. 흥미로운 것은 징역형은 하한선이고, 벌금형은 상한선이라는 점이다. 징역형을 이처럼 부각시킨 법은 중대재해처벌법이 유일하다. 당연히 중소기업계가 공포에 사로잡힐 수밖에 없다. 혹시나 중대재해로 기업인이 1년 이상 징역을 살게 되면 그 중소기업은 정상적 경영활동을 영위하지 못하며 극단적으로 도산위기에 빠질 수 있다.
중대재해처벌법의 또 다른 문제는 처벌규정이 센 것에 비해 중대재해의 정의가 모호하고 처벌기준이 불명확하다는 것이다. 중소기업이 최선을 다해 안전조치를 취해도 피할 수 없는 인명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 그런 경우에도 중대재해로 간주되고 안전관리체계가 미흡하다고 판명되면 징역형이 부과된다. 가령 화학물을 취급하는 공장에서 오래 근무한 종업원에게 암이 발병해 사망할 경우 이를 중대재해로 볼 것인지, 개인 질병으로 볼 것인지 구분하기 어렵다. 경찰이 수사한다고 명확히 밝힐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중대재해로 판명되면 그다음에 기업이 안전관리체계 구축 의무를 충실히 이행했는지 따져봐야 한다. 사업장의 위해요소와 종업원의 사망 간의 인과관계, 사업주의 안전관리 위반과 고의 및 사고 예견 가능성 등 여러 가지 복잡한 사안을 놓고 치열하며 지루한 법정공방이 이루어질 것이다.
중소기업은 대기업과 달리 안전관리 의무기준을 안 지키는 것이 아니다. 안전관리체계 구축과 운영에 필요한 조직, 인력, 예산을 충당할 수 없기 때문에 못 지킨다. 대기업이나 공공기관에 대한 납품가격에서 안전관리 비용은 고려되지 않는다.
중소기업에 중대재해 책임을 물으려면 그에 상응하는 비용도 지원해 주어야 한다. 앞으로는 납품단가연동제와 같이 대기업 납품과 공공조달에 있어서 중소기업에 안전관리 예산을 공급가격과 별도로 지불하는 제도가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중대재해 예방은 중요하다. 하지만 처벌만이 능사는 아니다. 현실적으로 중소기업과 종업원 모두 안심하고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방향으로 법·제도가 개선되어야 한다.
서강대 경영학과 명예교수 前 중소기업진흥공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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