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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창우의 인향만리] 인재 양성의 큰 그림이 보이지 않는다

의대입학 정원 대폭 확대
첨단분야 증원 밀어붙여
교육정책 군사작전 하듯

[강창우의 인향만리] 인재 양성의 큰 그림이 보이지 않는다
강창우 서울대 인문대학장
의대의 입학정원 증원 문제로 정부와 의사단체 사이의 충돌이 가시화되고 있다. 필수 의료분야와 지역의 의사 부족 현상도, 인구 대비 의사 수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에 훨씬 미치지 못하는 것도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응급실 뺑뺑이와 소아과 오픈런 그리고 제때 치료받지 못해 목숨을 잃는 안타까운 일도 더 이상 낯설지 않다. 그러니 국민 대다수가 의대 입학정원을 대폭 늘리겠다는 정부의 계획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것이 아닐까. 그렇지만 한낱 나비의 작은 날갯짓도 엄청난 결과로 이어질 수 있는데, 많은 학생들이 선망하는 의대의 입학정원을 하루아침에 1.6배 이상으로 늘리는 일이 아무런 부작용 없이 의료시스템의 문제만 단번에 해결하는 마법 같은 결과로 이어질 수 있겠는가.

국가경영의 요체는 인재를 양성해서 적재적소에서 일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기 때문에 교육이 국가의 미래를 계획하는 일의 핵심이라고 하는 것이리라. 따라서 잘못된 교육제도는 국가의 백년대계를 망칠 수 있기에 새로운 제도를 도입할 때 매우 신중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 정부가 일련의 고등교육 정책을 추진하는 것을 보면, 정책의 목표가 제대로 달성될 수 있는지 그리고 예상되는 부작용은 어떻게 막을 것인지에 대해 충분히 검토했는지 의심스럽다. 교육부가 작년에 이어 올해도 첨단분야 입학정원 증원을 추진하면서 대학이 증원 신청을 준비할 시간은 채 한 달도 주지 않았다.

그리고 요즘 대학마다 몸살을 앓고 있는 무전공 모집 역시 교육부의 안은 지난 1월 말에야 발표되었는데 대학은 당장 내년 입시에 반영해야 한다. 학과와 학부의 신설을 포함하는 첨단분야 입학정원의 증원이나 무전공 모집을 급하게 추진하는 것은 수험생들에게 많은 혼란을 줄 뿐만 아니라 고등교육 시스템과 학문생태계에도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어서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교육부는 군사작전 하듯 급하게 추진하고 있다. 과연 교육부가 우리나라 고등교육에 대한 큰 그림을 갖고 이 정책을 추진하는 것인지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목하 뜨거운 감자인 의대 입학정원 이슈도 비슷한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 우리 사회가 발전하면서 수준 높은 의료서비스에 대한 수요가 꾸준히 증가하고, 새로운 의료시장이 급격하게 팽창했음에도 불구하고 지난 27년간 의대 입학정원을 늘리지 못하다가 의료시스템 붕괴가 심각한 지경에 이르자 정부는 한꺼번에 2000명을 증원하는 강수를 두었다. 이전 정부들과 달리 이번 정부가 문제를 회피하지 않고 정면 돌파를 선택한 것은 긍정적으로 평가하지만, 그렇다고 한꺼번에 2000명을 증원하는 것이 최선인지는 따져봐야 한다.

특히 다양한 학과에 입학해서 그 분야의 발전에 기여할 인재들이 의대로 빠져나간다면 서열화된 대학과 전공의 피라미드에서 연쇄이동이 발생할 것이고, 이 연쇄이동의 피해는 비인기 학과와 기초학문 분야들이 가장 많이 보게 될 것이 자명하다. 게다가 현재 교육부가 추진하고 있는 무전공 모집, 첨단분야 정원의 증원과 상승작용을 일으키게 되면 대학의 시스템이 흔들리고 학문생태계가 위태로워지며 결국 국가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 국가의 의사 양성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것의 파급효과가 심각한 것이다.

대학생들이 취업에 유리한 학과로 몰리는 것도, 의사들이 수입이 좋고 일하기 편한 전공을 선택하는 것도 비난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이것이 우리 사회가 균형적으로 발전하는 데 방해가 되는 것은 분명하다.
국가의 역할은 바로 여기에 있다. 국가 시스템의 유지·발전을 위해 필요한 인재를 양성하기 위한 중장기 계획을 세워서 단계적으로 추진하고, 우리 사회의 다양한 분야로 인재들이 골고루 진출해서 모든 분야가 균형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만드는 것이 국가가 해야 할 일인 것이다. 그런데 지금 정부가 급하고 거칠게 추진하는 교육정책에는 인재양성에 대한 큰 그림이 보이지 않는다.

강창우 서울대 인문대학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