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책 톺아보기] 번역가 박미경이 소개하는 '아버지의 죽음 앞에서'
중환자실서 시어머니를 떠나보내고
교뇌출혈로 생사를 오간 친정엄마 보며
문득 '아버지의 죽음 앞에서’ 책 떠올라
의료완화 전문가 레이첼 클라크
죽음 맞닥뜨린 이들의 생생한 고통 전해
가슴 뭉클해지는 ‘인간다운 죽음’ 이야기
인간은 애초에 죽을 운명 타고난 생명체
닥친 현실 감당하며 행복하게 살자 다짐
'톺아보다'는 '샅샅이 더듬어 뒤지면서 찾아보다'는 뜻을 가진 순우리말이다. '내책 톺아보기'는 신간 도서의 역·저자가 자신의 책을 직접 소개하는 코너다.
아버지의 죽음 앞에서 / 레이첼 클라크 / 메이븐
50대 중반을 넘어서니 주변에서 탄생보단 죽음과 관련된 이야기를 자주 접한다. 결혼도 안 한 자식들에게서 당분간 손자, 손녀 볼 일이 없다 보니, 다들 70대, 80대에 이른 부모의 부고장만 주고받는다. 소원했던 일가친척과 한동안 못 보던 친구들을 만나는 자리가 고작 장례식장이다.
2024년 2월 24일, 시어머니가 여든여덟 살을 일기로 세상을 떠나셨다. 정신은 누구보다 총명했지만 일 년 가까이 거동을 못 하셨다. 집에서 아들과 딸들의 극진한 보살핌을 받다가 마지막 며칠은 병원 중환자실에서 모르핀 주사로 통증 없이 편안히 가셨다.
2023년 9월 30일, 친정엄마가 아침 식사를 마친 후 갑자기 어지럽다면서 쓰러지셨다. CT 검사 결과, 교뇌출혈이라 수술도 못 한다고 했다. 연명치료를 할지 가족과 의논해 보라는 얘기까지 나왔다. 뇌출혈은 발생 부위에 따라 다섯 가지 유형이 있는데, 증상으로 혼수 상태와 사망이 언급되는 유형은 교뇌출혈밖에 없다. 다행히, 엄마는 출혈이 멈추고 의식이 돌아와 이젠 회복기 재활병원에서 열심히 치료받고 있다. 그래도 우측 뇌에 출혈이 더 많았던 탓에 왼쪽 편마비라 아직 갈 길이 멀다.
문득 몇 년 전 번역했던 '아버지의 죽음 앞에서'가 떠올랐다. 영국의 공중보건의사이자 완화의료 전문가인 레이첼 클라크가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도 최선을 다해 살았던 환자들과 아버지에게서 배운 삶과 사랑의 의미를 전하는 책이다.
제1부는 인간다운 죽음을 맞기 위한 이야기를 소개한다. 생사의 갈림길에서 살아남은 이야기, 죽음을 피하려 애쓰다 잃어버리는 것들, 사랑하는 사람과의 절절한 이별,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하는 심폐소생술의 비극, 전쟁터 같은 병원에서 접하는 피비린내와 고통을 생생하게 전한다.
제2부는 완화의료 전문가로 일하면서 만난 여러 환자와 아버지의 대장암 투병 과정을 따뜻한 시선으로 전한다. 최악의 순간에도 최선을 다해 살고자 했던 사람들, 마지막까지 인간적 가치를 잃지 않았던 사람들이 전하는 가슴 뭉클한 이야기가 감동적으로 다가온다. 애초에 문학도를 꿈꾸고 또 저널리스트로 활동했던 만큼 문학적 아름다움도 넘친다.
레이첼은 남들이 피하는 응급실 근무를 자처하며 사람을 살리는 의학의 역할에 매료되었다. 하지만 환자를 사람이 아닌, 고쳐야 할 장기나 부속품으로 대하는 냉혹한 의료 현실에 직면했다. 결국, 환자 중심의 의술을 펼칠 수 있는 분야를 고심하다 말기 환자들의 인간다운 죽음을 다루는 완화의료(호스피스) 전문가가 되었다.
'호스피스(hospice)'와 '병원(hospital)'은 환대(hospitality)와 마찬가지로 호스페스(hospes)라는 라틴어에서 비롯됐는데, 호스페스는 '집주인'과 '손님'과 '낯선 사람'을 모두 뜻하는 말이다. 레이첼은 호스피스가 원래 의미대로 주인과 손님과 낯선 이들을 제대로 대접하는 곳이길 바란다. 가정과 병원의 장점을 모아 집처럼 편안한 분위기에서 의료 혜택을 누리는 곳이길 바란다. 그렇게만 된다면 환자는 손목에 감긴 밴드만큼 움츠러드는 정체성과 대형 상점에 진열된 통조림처럼 바코드로 인식되는 것에 대한 충격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의사(doctor)'는 라틴어 도세르(docere)에서 온 말로 '가르치다'라는 뜻이다. 반면 '환자(patient)'는 파티엔스(patiens)에서 온 말로 '참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요즘 의대 정원 확대 문제로 의사들이 거리로 나가서 정부와 국민을 상대로 마구 가르치려 들고 있다. 그들의 가르침에 일부 수긍할 점이 없지 않지만, 안 그래도 참을 게 많은 환자와 보호자는 인내심이 극에 달한다.
레이첼은 모든 의학도에게 일시적으로 질병을 한 가지씩 경험하도록 처방하고 싶다고 말한다. 심각한 질병으로 파국적 결과를 예측할 수도 있는 진단을 받아본 경험이 없다면, 의사들이 어떻게 환자의 고충을 이해할 수 있겠냐고 반문한다.
레이첼의 아버지처럼 우리 시어머니도 확실히 복 받은 사람이었다. 사랑하는 자식들과 여덟 명이나 되는 듬직한 손자들의 배웅을 받으며 큰 고통 없이 이승의 충만한 삶을 마감하셨으니까. 시어머니는 이제 그간에 살아온 삶으로 기억될 것이다.
친정어머니는 혼자선 아무것도 못 하는 현실을 부정하며 노상 '죽고 잡다'를 외치셨지만, 이젠 다시 생명의 불꽃을 태우며 부활을, 아니 재활을 위해 온 힘을 기울이신다.
레이첼의 절절한 이야기를 우리말로 옮겼던 경험 덕분에, 그간의 일들을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조금은 덤덤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애초에 죽을 운명을 타고난 생명체라는 잔인한 현실 앞에서도 내게 닥친 현실을 충실히 감당하며 행복하게 살아가겠다고 다짐한다.
박미경 번역가
rsunjun@fnnews.com 유선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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