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리익스프레스·테무 초저가 공세
유통생태계 교란 소비자불만 폭증
중국산 짝퉁으로 국내업체 큰피해
정부 뒤늦게 규제강화 효력 의문시
#. 최모씨(37)는 최근 중국 온라인 플랫폼 테무에서 5000원이 채 안 되는 가격에 산 원피스를 받아 보고 깜짝 놀랐다. 구매 당시 상품 소개 페이지에 있던 제품 사진과는 전혀 다른 옷이었다. 사진과는 재질도, 색깔, 스타일도 완전히 달랐다. 최씨는 "저렴한 가격에 디자인과 재질이 괜찮아 보여 속는 셈치고 구매했는데, 이상한 부직포 같은 재질에 화면과는 다른 색깔의 제품이 배송됐다"며 "알리나 테무에서 사는 제품은 '복불복'이라는 소리를 많이 들었는데, 막상 겪어 보니 너무 놀라 다시는 구매하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고 말했다.
중국의 초저가 제품을 국내에 뿌려대며 한국 시장에서 점유율을 확대해 가고 있는 중국 온라인 플랫폼인 알리익스프레스와 테무 등 이른바 'C커머스'에 대한 소비자의 불만이 폭증하고 있다. 오로지 싼 가격만 내세워 품질이 떨어지거나 수개월이 지나도록 배송이 오지 않는 등 관련 문제가 끊이지 않고 있다. 특히 국내 제품을 베낀 '짝퉁' 제품을 싼 가격에 판매하면서 국내 유통 생태계를 교란시키는 것은 물론 관련 제품을 생산하는 국내업체에 큰 피해를 입히고 있다.
이 같은 소비자 민원이 폭증하자 수개월째 수수방관하던 정부가 이제서야 규제 강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국내 이커머스 시장에서 엄청난 속도로 세를 불려가던 C커머스는 부랴부랴 소비자 보호대책을 내놨지만 근본적으로 해외에 기반을 둔 플랫폼 C커머스여서 한국 정부의 대처가 제대로 먹힐지도 의문이라는 지적이 일고 있다.
17일 한국소비자연맹에 따르면 1372소비자상담센터에 접수된 알리익스프레스 관련 소비자불만은 2022년 93건에서 지난해 465건으로 500% 이상 증가했다. 이용자가 급증한 올해 들어서는 1월에만 150여건의 불만이 접수됐다. 배송 중 물건이 분실되거나 배송이 제때 이뤄지지 않고, 주문취소를 해도 잘 반영되지 않는다는 불만도 엄청나게 늘고 있다.
최씨처럼 저렴한 가격에 혹해 상품을 구매했다가 낭패를 보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귀걸이, 반지 등 작은 액세서리 제품은 일반 택배가 아닌 우편배달로 발송되기도 하는데 "잊고 있을 때쯤 배송된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하염없이 배송을 기다리다 결국 환불신청을 한 뒤 상품이 배송되는 경우도 수두룩하다고 한다.
가장 심각한 폐해는 '짝퉁 논란'이다. 국내시장에서 C커머스의 영향력이 본격적으로 확대되기 시작한 때부터 지속적으로 제기됐던 문제이지만 여전히 잦아들지 않고 있다. 짝퉁제품 판매는 소비자뿐만 아니라 국내 제조사의 피해도 막심하다는 점에서 더 큰 문제다. 국내에서 최소 70만원대에 판매 중인 라이프스타일 골프웨어 브랜드 '말본골프'의 캐디백은 알리에서 지난 15일 기준 '하이퀄리티 골프 가방'이란 이름으로 10만원대에 버젓이 판매 중이다. '짝퉁'이 시중에 유통된다는 점만으로도 브랜드 이미지가 훼손될 수밖에 없는데, 해외에 근거를 둔 플랫폼에 입점한 셀러들이 판매하는 제품이다 보니 문제 제기 등 대응 자체가 쉽지 않다.
C커머스발 시장교란 우려에 정부도 뒤늦게 칼을 빼 들었지만 한발 늦은 대응이라는 지적이 적지 않다.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는 지난 13일 국내 플랫폼과의 역차별 문제를 없애기 위해 법 위반이 적발될 경우 신속하게 처리하는 등 관리를 강화하기로 했다. 특허청·관세청은 가품으로 인한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 해외직구의 통관단계에서 가품 적발도 강화하기로 했다.
2018년 알리가 처음 국내에 진출한 지 무려 6년 만에 나온 대책이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외국 플랫폼에 대해 어떤 식으로든 규제를 하려면 근거법을 먼저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업계 관계자도 "판매가 금지된 위해물품이나 가품 등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판매상품에 대한 개선방안을 구체적으로 내놔야 하는데, 지금 정부의 정책은 면피성 대책으로 보인다"며 더 강력한 대응책을 요구하고 있다.
clean@fnnews.com 이정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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