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칼럼 >

[정현출 농어촌 희망가] 사과 산업, 소비자가 나서서 바꿔보자

소비자 값싼 중소형 선호
생산자 제수용 대형 치중
수급 맞추는 지혜가 필요

[정현출 농어촌 희망가] 사과 산업, 소비자가 나서서 바꿔보자
정현출 한국농수산대학교 총장
아삭하고 달콤한 사과는 우리나라 대표 과일이다. 매일 한 알 먹으면 의사를 멀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지난 하반기부터 가격이 치솟는 통에 집어들기 부담스러워졌다. 작년 기상이 나빠 전년 대비 생산량이 30%나 감소한 것이 직격탄이 되었다. 소비자물가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 물가당국의 부담도 크다.

농산물은 공산품과 달리 공급애로가 발생하면 단기처방을 만들기 어렵다는 점도 괴로운 일이다. 채소는 생산주기가 짧아 단기간에 어느 정도 공급량 조절이 가능하지만, 과일이나 육류는 생산조정에 여러 해가 걸린다. 수입을 늘리자는 주장이 많은데 수출국 작황도 불규칙한 경우가 많고, 위생조건이나 물류비 등 고려할 요소가 많아 응급 해결책으로 한계가 있다.

단기생산량 변화에 따른 가격변동 문제는 시간이 흐르면 어떻게든 해소될 문제라고 넘길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번 가격급등을 계기로 사과산업 구조 문제를 진지하게 들여다보는 것은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기후변화와 병해충은 계속 발생할 사안인데, 이로 인한 충격을 최소화하는 생산과 유통구조 개선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사과 재배면적은 1990년대 4만6000㏊ 수준에서 2002년 2만6000㏊까지 줄었다가 2020년대에 3만4000㏊까지 회복되었다. 이는 중장기적으로 보면 수익성에 따라 재배의향과 투자 규모가 대폭 조정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생산량은 2010년 이후 연평균 49만t가량을 유지하고 있는데, 작년 사례에서 보듯 기상여건과 병해충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출하시기를 보면 7월부터 8월 중순까지는 쓰가루와 썸머킹, 추석을 앞두고 홍로와 아리수·양광 등 품종이 차례로 나온다. 홍로가 총생산 중 약 14%, 나머지 품종의 비중은 1.5%에서 3.5%가량이다. 추석 이후 본격 출하되는 후지 계열이 66%를 차지하는데, 저장성이 좋아 다음 해 7월까지 꾸준히 도매시장에 반입된다.

지난 연말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실시한 가격과 맛, 크기에 대한 소비자 선호 조사 결과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 먼저 맛에 관련해서는 신맛과 단맛이 조화를 이루거나 단맛이 많은 것을, 크기는 무게 151∼250g·지름 6.2∼8.1㎝인 중형과를 좋아했다. 가격과 품질특성 비교 질문에는 모양과 색택이 좋고 친환경 인증으로 비싼 사과보다 가격이 저렴한 것을 우선한다는 답변이 많았다.

생산이나 유통 과정에 이러한 소비자 취향이 제대로 전달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보급률이 가장 높은 후지는 평균 무게 310g·지름 9㎝로 대형과에 해당하고, 명절 특수를 겨냥해 솎아내기를 해서 만드는 제수용 사과는 대부분 400g을 넘기는 편이다. 사과 가격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도매시장 경매에서는 모양이 고르고 색택이 좋은 대형과가 최고가로 낙찰되기 때문에 생산자는 이런 기준에 맞추려는 유인이 작동한다.

한편 사과를 일상생활에서 후식이나 간식으로 즐기고 싶다는 욕구가 늘어나는 데 비해 생산과 출하는 명절 제수용에 집중되는 경향이 있어 수급이 잘 들어맞지 않는다. 유럽이나 신대륙은 씻어서 바로 베어 먹기 좋은 얇은 껍질의 중소형 품종이 많은 반면, 우리나라는 혼자 먹기 부담스러운 크기에 다소 질기고 두꺼운 껍질을 가진 후지 계열 비중이 높은 것도 간편한 소비에 불리한 요소다.

소비자가 가격에 수동적으로 반응할 것이 아니라 다양한 선호를 적극 표시하면 유통과 생산을 차근차근 바꿀 수 있다. 출하 시기가 다른 다양한 품종을 재배하면 기후변화로 인한 생산 진폭을 줄일 수 있다. 중소형 사과는 대형과에 비해 기계화 작업이 쉬우므로 장기 생산효율이 향상된다.
사과는 생산액이 가장 크고 다른 품목과 소비대체가 활발한 과일이다. 저렴한 중소과를 연중 고르게 소비하는 패턴이 정착하면 전체 과일물가 안정에도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 까다로운 소비자가 농업을 살린다.

정현출 한국농수산대학교 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