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 자연사이 벌어진
틈을 문학이 메우는 역할
환경·생태 문제 개입해야
이가희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장
문학이 생태학의 본질과 얼마나 얽혀 있을까? 이 질문에 예리한 통찰력을 가진 아리스토텔레스는 기본적으로 문학의 기능과 역할을 '자연의 모방'으로 여겼다. 심오한 이 답변은 인간과 환경 사이의 복잡한 관계를 잘 풀어내고 있다. 아무리 최첨단 기술과 인공지능(AI)으로 뒤덮인 현대 생활에도 우리 안에는 우리를 안고 있는 자연을 모방하려는 원초적 본능이 존재하는 것을 누구도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최근 필자는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교육에 많은 관심과 역량을 쏟고 있다. ESG 전문지도사나 진단평가사 등 ESG 경영 전문가를 양성하는 일이다. 사실 그럴수록 내 본연의 글 쓰는 일이 멀어져가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돌연 펜을 잡으면 필자가 ESG에 관심을 가졌던 순간부터 또 다른 시선을 가진 글로 변화되고 있음을 느낀다.
환경을 옹호하는 문학에 대한 요구는 더욱 커지고 있다. 이것은 학계나 예술 영역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과학자, 교육자, 경영자, 시민 모두에게 자연과 교감하며 치유와 조화를 이루는 문학을 하라는 보편적인 요구이다. 상상력의 실에서 뽑아낸 이야기를 통해 문학은 깨진 생태계를 정화하고, 교육하며, 회귀시키라는 명령이다. 그중에 중요한 것은 인간과 자연 사이에 벌어진 틈을 메워주는 역할을 문학이 한다는 것이다. 되돌아간다는 말은 우리의 기원, 뿌리에 대한 회귀로 '문학의 본질은 언제나 생태적이었다'는 뜻일 것이다.
이 순간에도 생태문학은 중추적인 역할을 한다. 피난처일 뿐만 아니라 생태학적 르네상스를 위한 촉매제다. ESG 정신으로 무장한 작가들은 우리와 모든 생명체의 상호연결성을 상기시키는 글을 써야 한다. 이는 시대의 당면한 과제로 부인할 수 없이 중요하다.
문학은 스피노자가 주창한 '자연에 대한 범신론적 경외심을 다시 불러일으킬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에 공감한다. 자연을 핵심으로 삼는 문학을 수용함으로써 우리는 우리의 기원에 경의를 표하는 것 이상의 일을 해야 한다. 그렇게 인간과 자연이 공생하며 공존하는 미래를 열어가야 한다. 문학은, 펜은 전기톱이나 드릴보다 더 강력하여 궁극적으로 지구를 구할 수 있는 변화의 씨앗을 뿌릴 수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여러 통로로 증명하고 있다. 더군다나 21세기에 들어서서도 우리 주변의 환경오염을 비롯한 생태계 위기는 개선되기보다 지속적으로 악화되고 있다. 오래전부터 '인문학의 위기' '문학의 위기' 문제가 제기되어 왔고, 이제 우리는 거의 무감각할 정도가 되었다. 전 지구적 기후 '위기'와 '재앙'의 시대에 살면서 위기를 위기로 느끼지 못하는 것이 진정한 위기다.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전략, 대안, 이론을 창출해 내지 못한다면 이 시대의 문인들은 문명사적인 윤리적 책임을 면키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우리 문인들은 안타깝게도 생태위기와 같은 전 지구적 차원의 문제에 개입하기보다는 아직도 인본주의적 인간 중심주의적 사고에만 매달려 있다. 문인들은 이제 대내외적인 여러 가지 현실적 문제들을 포함하여 앞으로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해서는 전 지구적 역사의식을 가지고 환경·생태 문제에 신속히 개입해야 한다.
그런 연유로 필자의 ESG 교육을 통한 '생태적 글쓰기'는 잘한 것이라 자위한다. 2500여년 전 공자가 편찬한 '시경'에도 이미 환경생태에 관한 시편들이 들어 있다는 것은 21세기를 사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다행히 국내 문학계도 최근 자연·환경·생태 문제에 뜨거운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제 문학은 전 지구적 생태위기 문제에 개입해야 한다. 그리고 전형적인 서구 독점개발 논리에 항거해야 한다.
생태위기, 문맹위기, 문학위기를 동시에 탈피해야 한다. 앞으로의 문학은 그동안 고수해 왔던 인간 중심주의에서 벗어나 전 지구적인 환경생태학의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래서 필자가 제목으로 쓴 문장은 다시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는 것 같다. 문학은 이미 언제나 생태적이니까.
이가희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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