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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동훈의 위험한 생각] 유권자의 '잊지 않을 권리'를 위하여

사적 이해 따라 공천 강행
위성비례정당 폐해 여전
언론, 유권자 망각 깨워야

[마동훈의 위험한 생각] 유권자의 '잊지 않을 권리'를 위하여
마동훈 고려대 미디어학부 교수
깊은 산속에 들어가면 산도 하늘도 보이지 않고 나무만 보인다. 그래서 눈앞의 길만 좇다 보면 어느새 방향을 잃게 된다. 뿌연 안개비가 숲을 에워싼 날에는 길 찾기가 더욱 힘들다. 총선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온 시점의 숲속은 미끄럽고 어둡고 음침하다. 어디로 가는지 모르고 숲을 걸어야 하는 정국의 산행길은 위험하기 짝이 없다. 산에 오르기 전 있었던 일들은 이제 잊고 앞만 잘 보고 가면 실족하지 않으리라 하지만, 실상은 엉뚱한 목적지에 이르러 진퇴양난에 빠질 우려가 크다.

민주주의 제도하에서 국민은 투표행위를 통해 스스로의 운명을 선택한다. 그런데 산에 오르기 전의 기억을 쉽게 잊고 깊은 산속 장애물 넘기 식의 산행길에 매몰된 선택에는 미래가 없다.

정권 심판, 야당 심판이라는 해묵은 정치 슬로건의 고성능 데시벨이 오프라인과 온라인 소통의 길목을 철저하게 장악해 불과 몇 달 전 선거 초입의 논쟁들을 집단 망각하게 만든다면, 이는 곧 유권자의 현명한 선택의 권리를 원초적으로 봉쇄하는 것이다.

유권자의 판단에 과거사를 개입시키는 것이 물론 능사는 아니다. 그러나 선거의 전초전인 공천 과정과 비례대표제 논쟁은 선거의 중요한 일부분이며, 아무리 양보해서 생각해도 현재와 밀접히 연관된 가까운 과거의 일이다. 그래서 유권자가 이 과정을 망각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선거를 일주일 앞둔 시점에 언론의 중요한 책임은 국민의 책임 있는 선택을 위해 중요하지만 잊기 쉬운 것들을 다시 기억하게 해주는 일이다.

정치인들이 오랜 경험치에 의해 국민이 좀 전 일을 금방 잊는다고 오판해 눈앞의 득표만을 위한 정치공학에 신경 쓸 때에 언론은 오히려 유권자의 '잊지 않을 권리'를 복원해주는 책임을 생각해야 한다. 새로운 프레임으로 지난 프레임을 덮으려는 저급한 정치행위에 경종을 울려야 한다.

첫째, 유권자가 총선의 깊은 산속으로 들어오기 전에 경험했던 가장 아픈 경험은 공천과 사천 논쟁이다. 거대 양당 구조하에서는 일단 공천을 받은 후보가 곧 유력 당선후보가 되기에, 정당은 국민을 바라보고 하는 공천이 아닌 사적 이해에 의한 공천을 무모하게 감행할 수 있었다. 소위 시스템 공천제도도 그 시스템을 좌우하는 사적 이해로부터 자유롭지 못했기에 분명한 허구였다. 공천 과정은 선거의 과거지사가 아니고 4년에 한 번 하는 총선의 중요한 한 부분이다. 그래서 유권자는 그 과정을 잊지 말아야 하고, 언론은 그 잊지 않을 권리를 복원해 주는 노력을 해야 한다.

둘째, 지난 21대 총선부터 시작되었지만 여전히 국민 누구도 이해하기 힘든 준연동제 위성비례정당의 강행 문제를 다시 기억해야 한다. 이는 전체 의석수의 약 15%에 이르는 비례대표제 원안 취지를 무색하게 만든 기형적 제도다. 양대 정당 정치의 한계를 보완해 다양한 국민의 목소리를 반영하고, 지역구 의원이 채우지 못하는 국정 영역을 보완하기 위한 전문성을 확보한다는 비례대표제의 기본정신은 '위성'이라는 종속적 정당의 출현 자체만으로도 크게 훼손되었다. 이 제도의 비정상성에 대해 양당 대표들이 모두 인정한 바 있었다는 점도 쉽게 잊혀지고 있다. 결과적으로 유권자는 위성정당 중 하나에 투표할 가능성이 커졌는데, 이 제도를 우리 후손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난감하다.

민주주의는 결과가 아닌 과정에 의해 그 정당성을 부여받는 정치제도다. 일주일 후 선거가 끝나면 국민은 22대 총선 과정의 교훈을 또 한 번 쉽게 잊게 될 것이다.


과정은 사라지고 결과만 남을 것이고, 정치인들은 다음번 결과를 위해 아무 두려움 없이 돌진할 것이다. 국민은 또 한 번 습하고 음침한 정쟁의 숲속으로 끌려들어와 자유와 책임의 방향감각 상실을 주기적으로 경험하게 될 것이다. 역사의 악순환 속에서 민주주의의 고귀한 가치가 빛바랜 고서 속의 한 단어로 전락하게 될 미래가 깊이 우려된다.

마동훈 고려대 미디어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