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복실 국가경영연구원 부원장·전 여성가족부 차관
지난 주말 시골에 갔더니 친척 아주머니가 "요즘 서울에는 대파가 비싸다면서요"라며 밭에서 대파를 한 아름 캐어 주었다. 그녀의 정돈된 밭에는 겨울을 버티고 살아남은 파릇파릇한 대파들이 탐스럽게 자라고 있었다. 그녀는 양평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여성 농업인이다. 들깨와 마늘 농사가 주종목이다. 대파를 캐면서 그녀는 "대파 한 단 4000원이 비싸냐?"고 내게 물었다. 순간 나는 답을 하지 못했다. 그녀는 갑자기 대파를 커피 값과 비교했다. "요즘은 커피 한 잔 4000원 하는 곳도 드물어요. 우리 집 앞 전망 좋은 카페는 커피 한 잔이 6800원이에요. 커피 한 잔은 비싸다는 말 안 하고 마시면서 왜 농산물은 비싸다고 하는지 모르겠어요. 농민은 너무 힘들어요"라고 덧붙였다. 대파 한 단을 생산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노력이 들어가는지 도시인들은 모른다는 것이다.
모종, 비료 값과 인건비 등 생산비용도 계속 상승하고 있다. 특히 인건비는 비용도 문제이나 일꾼을 구하기가 힘들다. "외국인 노동자가 없으면 농사를 지을 수가 없어요"라고 농민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게다가 대파는 재해를 입기도 쉽고, 품도 많이 가는 농작물이다. 파의 흰 줄기에는 고자리파리 등 병이 들기 쉬워 토양을 살충해야 하고, 복합비료도 주어야 한다. 뿌리를 뻗게 하기 위해 북주기를 해야 하고, 땅도 깊게 파야 한다. 그녀의 말을 듣다 보니 대파 한 단 4000원이 비싸다고 생각한 것에 대해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도시 생활인들은 다르다. 솔직히 비싸게 느껴졌다. 작년에는 2000원이었는데 금년에 갑자기 2배 올랐다면, 비싸게 느껴진다. 급격한 가격상승이 체감도를 더 올려준다. 커피 한 잔 가격이 대파와 달리 이렇다 저렇다 말이 없는 것은 커피의 가격 변동성이 작은 것도 한 이유이다. 물론 커피 한 잔이 주는 여유와 힐링은 대파와는 차원이 다른 존재 의의를 갖고 있다. 대파 없이는 살아도 커피 없이는 못사는 사람이 더 많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주부에게는 대파도 만만찮게 중요하다. 우리 음식에서 빼놓을 수 없는 식자재다. 한국인이 좋아하는 국과 찌개는 대파 없이는 맛을 낼 수가 없다. 지금 대파와 커피의 효능과 가치를 따지자는 것도, 비교하자는 것도 아니지만 커피 값 4000원만큼 대파 4000원도 우리 사회에서 인정받고 수용되는 가격으로 자리 잡기를 바라는 농부의 마음을 대변해 보았다.
요즘 선거를 앞두고 때아닌 대파 가격에 대한 논쟁이 뜨겁다. 생활물가 인상은 선거철 단골 이슈이다. 민생에 큰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논쟁에서 빠진 것이 있다. 농민의 실정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우리나라 농가인구는 221만5000명으로, 전체 인구의 약 4%를 차지한다. 50여년 전 국민의 약 50%가 농업에 종사했던 것과 비교하면 큰 변화이다. 농민은 계속 감소하고 있다. 앞으로 누가 농사를 지을 것인가. 농산물이 싸다고 무조건 좋은 것이 아니다. 농업소득이 보장되지 못한다면 농민은 점점 더 농촌을 떠날 것이다. 농업은 우리의 생존과도 직결되어 있다. 반대로 농산물 가격이 폭등하면 물가상승의 원인이 되고, 서민생활에 큰 부담으로 작용한다. 정부가 농산물 가격안정 정책을 추진해서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에 적정한 가격이 형성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필자는 젊었을 때 미국에 산 적이 있는데, 농산물 가격 파동을 본 적이 없다. 일년 내내 값이 거의 비슷하다. 바나나 1파운드에 29센트, 오렌지 1파운드에 19센트. 거의 고정가격이다.
지금 생각해도 어떻게 그런 일정한 가격구조를 유지하고 있는지 부럽기만 하다. 우리나라도 최근 농산물에 가격안정제 도입이 필요하다는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향후 농산물 가격안정을 위한 촘촘한 정책과 제도가 마련되어 도시인과 농민이 상생하는 가격구조가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이복실 국가경영연구원 부원장·전 여성가족부 차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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