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 '트리스탄과 이졸데' / 사진=연합뉴스
최근 출장차 일본 도쿄의 신국립극장을 방문했다. 신국립극장은 1997년 개관한 이후로 750편이 넘는 작품을 공연한 일본 최초의 국립극장이다.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가 진행 중이기에 내년에 같은 작품을 하는 입장에서 관람하지 않을 수 없었다.
'트리스탄과 이졸데'는 장장 6시간 동안 이어지는 대작으로, 바그너가 독일에 내려오는 이야기를 오페라로 만든 작품이다. 금지된 관계에서 트리스탄과 이졸데는 사랑에 빠지고, 여기에 더해 하루를 못 만나면 병이 나고, 사흘을 못 만나면 죽는 사랑의 묘약을 마시게 되어 더욱 열정적으로 사랑하게 된다. '죽음보다 강한 사랑'을 들려주는 이야기로, 사람들의 마음을 절절 끓게 하는 힘을 가진 작품이다.
이런 탓에 평일 낮 2시 공연임에도 객석은 기대감으로 꽉 차 있었다. 하지만 예정된 시간이 되어도 공연이 시작되기는커녕 지휘자의 모습조차 보이지 않았다. 이상한 기분에 고개를 출입구 쪽으로 돌려보니, 얼핏 보아도 고령의 관객 한 분이 안내원의 부축을 받으며 자리로 이동하고 있었다. 이 상황을 전달받은 공연장 측은 당연하다는 듯 시작을 늦춘 것이었다. 멋진 오페라를 기대하며 극장으로 향했을 고령의 관객과 그의 걸음에 발맞추는 안내원의 모습을 보니 5분여의 시간은 오히려 달콤한 기다림에 가까웠다.
장시간의 공연이었음에도 막이 내릴 때까지 많은 관객들이 자리를 지켰다. 또 공연이 끝나고 수고한 출연진과 제작진에게 열광적인 환호와 아낌없는 박수가 10분 동안 이어졌다. 이 작품이 담고 있는 철학적인 메시지, 출연진의 기량에 대해서는 논할 필요가 없이 훌륭했지만 나는 다른 의미로 이들에게 박수를 쳐주고 싶었다.
신국립극장은 완벽한 서비스와 친절로 관객들을 대했다. 반면 한국의 공연장은 어떠한가. 때때로 불필요할 만큼 큰소리의 안내와 딱딱한 태도를 보이곤 한다. 한국 공연 문화도 점차 성숙해져야 할 때이다. 관객들이 관람 에티켓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관객들의 편의와 편안함을 위한 사려 깊은 서비스도 필요하다.
공연은 공연장에 가는 길부터 시작되어 돌아가는 길까지 지속된다는 말이 있다. 공연을 보러 오가는 길에 기대감과 공연을 보고 난 후의 소중한 경험을 공유하는 것을 포함하는 것이다. 일련의 과정을 행복하게 보낼 수 있도록 극장의 세련된 도움이 필요하다.
최상호 국립오페라단 예술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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