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드 ‘동조자’ 연출한 박찬욱
베트남전쟁 배경 스파이 이야기
원작소설 다양한 캐릭터 살리려
베트남계 배우 등 수천명 오디션
로다주 ‘1인 4역’도 관전 포인트
박찬욱 감독. 뉴시스
쿠팡플레이를 통해 국내 공개된 박찬욱 감독의 HBO 드라마 '동조자'. 아이언맨으로 유명한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CIA 요원, 교수, 영화감독, 하원의원 등 1인4역을 맡았다. 쿠팡플레이 제공
"사춘기 시절 (영국 첩보소설가) 존 르 카레의 '추운 나라에서 온 스파이'를 읽고 심하게 반했었다. 그의 소설엔 '스마일리'라고 공작 계획을 짜는 스파이 마스터가 나온다. 마치 영화감독처럼 거대한 거짓말을 창조하고 그게 진짜인 것처럼 아주 디테일하게 모든 걸 설계한다. 필요한 예산도 따고, 상대를 속일 배우도 캐스팅하고. 제가 영화감독이 된 것과 스파이 소설을 좋아한 것은 다르지 않다고 본다."
박찬욱 감독(사진)이 BBC 드라마 '리틀 드러머 걸'이후 두 번째 글로벌 시리즈를 내놨다. 지난 15일부터 쿠팡플레이를 통해 독점 공개되고 있는 HBO 드라마 '동조자'다. 두 작품은 냉전시대 스파이물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베트남전 스파이 이야기 '동조자'
'동조자'는 퓰리처상을 수상한 베트남계 미국 작가 비엣 탄 응우옌의 동명 소설이 원작이다. 이중첩자 경계인의 딜레마를 그린 이 작품은 "베트남전과 그 참상을 남다른 관점으로 제시한 전쟁소설의 새로운 고전" "매혹적인 스파이 소설이자 정체성에 관한 연구"라는 평가를 받았다.
할리우드 신흥 명가 A24가 제작한 7부작 드라마는 박찬욱 감독이 쇼러너를 맡아 제작과 각본·연출까지 전 과정을 지휘했다. 박 감독은 지난 18일 '동조자' 기자간담회에서 "스파이가 주로 활동했던 냉전시대엔 흥미로운 이야기가 많은데, 냉전시대는 끝난 듯 아직 끝나지 않았다"며 "남한사회 역시 여전히 이념갈등이 격렬한 곳"이라고 말했다. 특히 "우리 역시 (베트남처럼) 이념 투쟁을 겪었고, 내전 배경에 강대국이 있었다. 근현대사의 공통점을 가진 나라의 국민으로서 동변상련의 마음이 있다"라고 말했다.
베트남전쟁이 한창이던 1970년대, 프랑스와 베트남 혼혈인 이중첩자 '캡틴'(호아 수안데)은 남베트남 특수부 소속 군인이자 북베트남이 심어 놓은 간첩이다. CIA 공작원 '클로드'(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에게 발탁된 비밀요원이기도 하다. 이야기는 베트콩 재교육 수용소에 갇힌 '캡틴'의 자백으로 시작된다. 드라마는 원작에 마치 대위가 쓴 자술서(시나리오)를 바탕으로 이야기를 들려주듯 '화면 정지'와 '되감기'와 같은 영화적 장치로 개성을 더했다. 또 박 감독 특유의 유머와 미국 대중문화가 곳곳에 녹아들어 살벌한 상황 속에서도 '웃픈' 상황과 경쾌한 분위기가 연출된다.
박 감독은 "문학적 장치에 영화적 기법을 결합했다"며 "특히 코미디에 신경 썼다. 배우의 얼굴, 공간 등 영상 요소를 활용해 어떤 상황의 부조리함을 드러내는 요소로 코미디를 활용했다. 논리적이지 않고, 불쌍하면서도 비극적인 상황에서 벌어지는 씁쓸한 유머가 소설과 가장 차별화된 지점"이라고 말했다.
더불어 원작의 "아이러니, 패러독스"를 살렸다. 그는 "배우들에게도 강조했다. 이 작품은 겉으로 보이는 게 다가 아니다. 겉과 다른 안의 의미를 항상 생각해라. 각색 과정에서도 부조리성을 중시했다"고 말했다. 이는 혼혈이자 이중간첩인 주인공 캡틴의 정체성과도 연결된다.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1인4역
'동조자'는 기존 베트남전 소재 유명 작품과 달리 베트남 사람들의 목소리를 담고 있다는 점이 특별하다. 여전히 권력욕을 놓지 않고 도망쳐온 미국에서 고국으로 돌아갈 날을 꿈꾸는 남베트남 군인들, 오리엔탈리즘적인 시선으로 그들을 바라보는 '구출자' 미국인들, 그 사이 두 얼굴의 남자로 살아가는 나(캡틴)와 남·북베트남을 상징하는 두 친구에 관한 우정 그리고 고도의 정치·사회 풍자 이야기가 전개된다.
박 감독은 "원작소설 속 다양한 인물을 다 등장시키고 그들의 매력을 표현하려 했다"고 말했다. 베트남 배우 캐스팅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그는 "미국·영국·호주·캐나다·아시아에서 베트남계 배우를 포함해 일반인까지 몇 천명을 오디션 봤다. 장군 역 배우는 디즈니사 웹디자이너 출신으로 연기가 처음이다. 베트남 유명 영화 감독도 출연했다. 그들을 믿는데 용기가 필요했다. 다행히 함께 성장하는 즐거움을 많이 누렸다"며 뿌듯해 했다.
'아이언맨'으로 유명한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1인 4역을 한 것도 관전 포인트다. 그는 "각각 CIA 요원·교수·영화감독·하원의원 등 네 얼굴이 알고 보면 미국의 기관·자본·시스템 등을 상징하는 미국의 얼굴이라는 점에서 하나의 존재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최근 아시아 역사에서 출발한 이야기가 글로벌 OTT에서 인기다. 박 감독은 이러한 현상에 대해 "'파친코'가 결정적 계기가 됐다"고 분석했다. "미국사회는 다인종 국가인데도 그동안 특정 집단·인종의 목소리만 대중문화에 담아왔다.
반성이 너무나 늦었지만 생기고 있고, 또 소수집단이 힘을 갖게 되면서 자기 목소리를 낼 통로를 찾고, 또 그걸 만들 수 있는 힘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1억달러(1400억원)가 넘는 쇼(드라마)에 처음 보는 베트남 배우가 대거 등장하고 대사의 절반 이상이 베트남어가 사용된다. 이런 일이 가능해졌다는 것은 어찌 보면 너무 놀랍고, 너무 늦었다."
jashin@fnnews.com 신진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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