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재호 한국외국어대 국제학부 교수
4월 10일 총선 이후 정부외교는 어떠할까. 집권 여당의 패배 이후 총리와 비서실장의 사의 속에 국가안보실은 제외되었다. 대북 대외정책 분야는 총선 결과와 무관하게 윤석열 정부가 나름 자신하는 영역이다. 기조가 변하려면 사람이 바뀌어야 한다. 바뀌지 않았으니 정부의 향후 외교기조는 그대로일 듯하다. 그럼에도 최근 들어 정부외교는 전략적이든 전술적이든 변화의 조짐이 있어 보인다.
지난 4월 2일 정부는 북한 노동자의 러시아 송출에 관여한 러시아 기관 2곳과 개인 2명, 또 북러 간 군수물자 운송에 관여한 러시아 선박 2척을 독자적으로 제재했다. 러시아는 "비우호적 조처"로 "양국 관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크게 반발했다. 그러나 양측 공방은 요란했어도 제재대상들이 한국에 오지 않는 이상 제재는 무의미하다.
장호진 대통령실 안보실장은 4월 27일 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나면 한러 관계는 복원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우크라이나 전쟁, 러북 군사협력 상황에도 양국 관계는 관리되고 있다"고 밝혔다. "우려의 균형을 통해 서로 레버리지가 있는 형국"이라고 덧붙였다. 여러 가지를 고려한 결정으로 보인다.
한편 지난 4월 9일 윤석열 대통령은 인천 중구 해양경찰청 서해5도특별경비단을 방문, 중국 어선 불법조업과 관련해 단호한 대응을 주문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셰셰" 발언과 차별화를 통해 국회 선거에 영향을 미치려는 의도로 해석될 수 있었다. 중국에 상호존중을 견지하는 강경 입장이 선거 후에도 지속되는 것이 아닌가 우려할 수 있는 대목이었다. 그러나 선거 직후 전혀 결이 다른 대중(對中) 행보를 보이고 있다.
하오펑 랴오닝성 당서기가 4월 22~25일 김동연 경기도지사 초청으로 한국을 방문해 한덕수 국무총리, 조태열 외교부 장관, 정인교 통상교섭본부장, 이해찬 전 총리,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 등을 각각 면담했다. 코로나19 이후 첫 지방 당서기의 방한이라 그 나름대로 의미를 부여할 수도 있겠으나 정치적 위상을 고려할 때 만났던 한국 측 인사들의 격은 과공비례(過恭非禮)였다. 한중 정상회담을 위한 전 단계로서 한일중 정상회담 개최를 위한 분위기 조성 차원일 수 있으나 그간 정부가 얘기해온 상호존중의 한중 관계와는 궤가 달라도 한참 다르다. 왜일까.
지난 4월 11~13일 자오러지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의 방북이 있었다. 모든 것이 정상적으로 진행되었으나 궁금증이 들었다. 이제 중북 관계는 완전히 정상국가 관계가 되었는가? 카운터파트인 최용해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위원장이 자오의 방북일정을 같이했지만 지난 2018년 3월부터 1년3개월 동안 다섯 번이나 북중 정상회담을 열었던 당시 양국의 열정은 없었다. 드러난 일정만 보면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자오러지를 마지막 날 만나기는 했어도 식사 한 끼 대접했다는 뉴스는 없었다.
언제든지 친척처럼 왕래하는 관계라 했는데, 중북 수교 75주년에 중국 권력 넘버3 정도라면 북한식 파격적 장면을 연출했을 법도 한데, 이제 서프라이즈는 없는 지극히 정상적 관계로 변했는가? 북중은 우리가 생각하는 만큼 그런 관계가 아닌데도 그런 관계로 기정사실화한 것은 아닐까? 그럼 이제 정부의 대중 정책은 변하고 있는가?
한국에 미국과의 동맹 강화는 신냉전적 전 지구적 지전략적 전환기 흐름에서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보수정권으로서 미국과 단단히 손잡고 싶은 현 정부의 마음은 충분히 이해된다. 미국 주도 대러 제재와 대중 압박에 어느 정도 동참은 불가피하다. 그럼에도 중러와의 손을 놓거나 주먹을 쥐어서는 안 될 것이다.
북중러 3각 구도를 우리가 만들어주는 자충수를 두어서는 안 될 것이다. 한국의 대중·대러 정책에 전략적이든 전술적이든 최근 행보는 정부의 의도하에 이뤄지고 있다고 믿고 싶다. 이념, 신념과 무관하게 국익을 위한 전략적 유연성의 필요성을 뒤늦었지만 자각한 결과라 믿고 싶다.
황재호 한국외국어대 국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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