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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사 이몽룡 따라 한양서 남원으로… 춘향전 속 조선의 지리 [이민부 교수의 지리로그]

춘향의 고장, 남원

문학작품이자 자료인 '춘향전'
광한루·오작교 등 남원 명소와
당시 국토 이동로까지 그려내

어사 이몽룡 따라 한양서 남원으로… 춘향전 속 조선의 지리 [이민부 교수의 지리로그]
전북 남원에 있는 광한루와 오작교는 춘향과 이몽룡이 사랑을 나눴던 장소로, 북쪽에는 교룡산이 우뚝 서 있고 남쪽으로는 요천이 흐른다. 뉴시스
어사 이몽룡 따라 한양서 남원으로… 춘향전 속 조선의 지리 [이민부 교수의 지리로그]
1930년대 남원 광한루 앞 오작교 모습. 이민부 교수 제공

전북 남원시는 해마다 5월이면 춘향과 이몽룡이 처음 만난 날에 맞추어 '춘향제'를 개최한다. 올해는 오는 10일부터 16일까지 남원 광한루원 일원에서 열린다. 1931년 음력 5월 5일 춘향제사를 지내면서 시작된 춘향제는 지역축제의 효시로 알려져 있다.

'춘향전'은 조선시대 문학작품으로서 많은 백성과 민중에게 가장 널리 알려진 작품이 아닐까 한다. 한국 문학에서 가장 많은 연극공연과 음악공연이 오랫동안 이뤄진 작품이다. 문학과 예술에 대한 기여가 매우 높다. 그럼에도 지역적이고 민중적이다. 은근한 사회비판 등이 유머와 함께 잔잔히 담겨 있다.

예술과 문학의 향기와 함께 소설 춘향전의 또 다른 특징을 하나 들자면 이동하는 거리와 장소, 지역에 대한 실제와 현실에 대한 설명이 상세히 나온다는 점이다. 특히 전라도 거의 전역에서 주요 군읍과 명소들이 소상히 소개된다. 장단과 노래로도 다닌 장소와 그 지역의 명소들을 설명한다. 또한 이도령이 암행어사로서 한양과 남원 간의 공식 이동로를 정확히 보여준다.

당시 상황을 지금 보아도 현실적인 감각을 지니고 있다고 본다. 물론 약간의 상상력도 포함되지만 춘향전은 이러한 장소들을 사실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지역과 장소, 이동로 등을 정리하면 전라도의 지도가 그려진다. 조선 최고의 도로와 교통 전문가로 알려진 실학자 신경준(1712~1781)의 저작 '도로고(道路考)'의 이동로와 상당히 일치한다. 당시의 일상적인 국토 이동의 모습을 잘 그려냈다는 얘기다.

춘향전은 이러한 지역 설명과 분석을 절묘하게 문학적·예술적 비유로 승화시키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작가는 어떠한 감정으로 이러한 지역분석을 넣었을까. 작품의 품위와 권위를 위한 것으로 보이는데 중국의 여러 지역과 장소, 이를 바탕으로 한 중국 시문과 작품을 인용한 사례도 많다. 문학 연구자에 따라서는 실제의 사건을 다룬 작품으로 보기도 한다. 전라도 남원의 춘향과 경상도 봉화의 이몽룡의 우연한 만남이지만 현실성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춘향전에 대한 문학적 분석에서는 실제 사건은 아닌 것으로 보는 경향이 많다. 다만 암행어사의 백성과 민중을 위한 노력에 대한 사회적 요청이 반영된 것이 아닌가 한다.

시대가 지나면서 춘향전은 그 내용이 조금씩 변화되고 있음도 자세히 보면 살펴진다. 국토공간의 변화 과정도 반영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대체로 영조와 순조 사이에 초안이 나왔을 것으로 본다. 조선시대는 비교적 발전이 많았던 시기이다. 시대적인 출발 시점은 작품에 드러난 장소와 지역을 분석하면 어느 정도 가능할 수도 있을 것이다. 신경준의 저작도 영조시대에 이뤄진 것이다.

어사 이몽룡 따라 한양서 남원으로… 춘향전 속 조선의 지리 [이민부 교수의 지리로그]
자료=김덕진, 전라도의 탄생, 2018

여기서는 작품에 등장하는 모든 지리적인 요소들, 장소와 공간, 지역과 지역이동, 지역에 대한 작품 속 인물들의 판단과 감상 등을 살필 수 있다.

춘향전에 등장하는 주요 지역과 장소를 살펴보는 것도 작품을 향유하는 또 다른 방법이다. 어사 일행은 모두 4파로 나뉘어 이동하는데, 각 지역의 상황을 탐지하면서 남원에서 합류한다. 이도령은 전라도 전담 암행어사를 하면서 전라도 전역에 대한 백성과 관리들의 상황을 파악하고자 한 것이다.

주제 지역인 남원의 명승지를 먼저 언급하는데 알다시피 광한루와 오작교 그리고 남원의 배경인 교룡산과 시내를 흐르는 요천수를 든다. 지금도 남원 방문의 대표적 장소들이다. 평양의 대동루, 양양 낙성대, 진주 촉석루, 밀양 영남루를 언급하면서 광한루도 단연 전국적 명승지임을 밝힌다. 춘향과 비교하면서 당시 실제로 잘 알려진 기녀들도 소개한다. 춘향뿐 아니라 이 기녀들도 충효열녀(忠孝烈女) 못지않다고 하면서 해서 농선, 진주 논개, 청주 화월, 평양 월선, 안동 일지홍 등의 이름을 들며 사또에게 항거한다.

어사출두단 일행 이동로도 의미를 가진다. 이동하면서 밥전거리, 떡전거리, 새술막 등 식사와 숙박 장소도 보여주는데 당시 일반인의 이동로에서 만날 수 있는 쉼터들이다.

한양에서 경기도를 지나면서 남대문, 동작진, 남태령, 과천읍, 수원을 지난다. 그리고 충청도에서는 천안, 공주, 은진 등을 지나 전라도 입구 여산으로 들어간다. 여기서 4패로 나뉘어 좌도패는 진산, 금산, 무주, 진안, 장수, 운봉, 구례로 가고 우도패는 함열, 임파, 옥구, 김제, 만경, 고부, 부안, 고창, 장성, 영광, 무안, 함평을 통과한다. 연안과 남도 일행은 전라도 해안과 현재의 전남 지역에서 익산, 정읍, 순창, 옥과, 광주, 나주, 담양, 화순, 강진, 장흥, 보성, 흥양, 낙안, 순천, 곡성 등을 지난다.

특이하게 어사 이동로는 잘 알려지지 않은 곳들이다. 아마도 암행으로 다니는 어사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면 통새암, 삼례, 한내, 주엽쟁이, 가리내, 심금정, 숲정이, 공북루, 임실 구홧뜰 등인데 아마도 향과 부곡 등의 서민들의 모습을 살피고자 한 어사 고유의 업무수행일 것이다. 드디어 남원에서 어사출두하면서 이도령은 인근 지역 수령들을 집합시킨다. 운봉영장(雲峰營將), 구례, 곡성, 순창, 옥과, 진안, 장수 등의 원님들이 차례로 집합한다.

춘향전은 당시 한양에서 남원으로 이동하는 과정에 있는 장소와 공간들을 현실적·사실적으로 기술하고 있다. 조선의 도로망도 실제로 잘 보여준다. 이러한 지역과 장소에 대한 기술과 언급은 작품의 문학성 자체에 기여를 하고 있다고 본다.


사랑과 이별, 재회의 장소를 설명하면서 주인공 인물들의 심리도 더 잘 보여준다. 춘향전은 많은 우리말과 함께 한문으로 이루어진 시문학을 통하여 일종의 학습서 역할도 했을 것이다. 춘향전은 영·정조 시절 현실적이고 사실적인 조선의 역사와 지리도 은근히 살펴볼 수 있는 최고의 문학자료라 하겠다.

어사 이몽룡 따라 한양서 남원으로… 춘향전 속 조선의 지리 [이민부 교수의 지리로그]
이민부 한국교원대 지리교육과 명예교수
rsunjun@fnnews.com 유선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