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규 한국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
지난 4월 초 국제통화기금(IMF) 대변인은 언론 브리핑에서 아르헨티나의 최근 경제개혁 성과를 긍정적으로 논평했다. IMF는 아직 아르헨티나 경제가 안정화 단계라고 말하기는 어려우나 10여년 만에 월 기준으로 지난 1, 2월 재정흑자를 기록했고 월간 인플레이션도 예상보다 많이 낮아진 것(2월 13.2%)은 매우 인상적이라고 평가했다. 작년 대선 기간 전기톱 퍼포먼스까지 벌이며 강력한 개혁을 단언했던 하비에르 밀레이 대통령은 취임 후 18개 중앙정부 부처를 9개로 통폐합했고, 올해 4월 계약이 만료된 공무원 1만5000명을 해고했다. 가격상한제 등 반시장적 정책을 폐기하고 대중교통, 휘발유 등에 대한 각종 보조금도 삭감했다. 이 같은 허리띠 졸라매기의 효과가 단기적이지만 수치로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만성적 재정적자와 이를 보충하기 위한 통화팽창이 고질적인 인플레이션의 원인이었기에 정부 지출 축소는 경제학적으로는 당연한 문제 해결의 출발점이다. 하지만 이 명확해 보이는 해법이 지속될 수 있는지는 또 다른 문제이다. 정부 지출 축소에는 고통이 따르기 때문이다. 우선 정부 지출에 혜택을 입던 계층, 산업, 직군 등의 거센 반대를 피할 수 없다. 며칠 전에도 아르헨티나 전국노동자총연맹(CGT)은 현 정부 출범 후 두번째 총파업을 해 주요 대중교통 운행 중단, 학교 휴교, 병원 및 은행 등의 휴업을 초래했다. 이 같은 반대에 더하여 단기적으로는 경기위축이 뒤따른다. 이미 밀레이 대통령도 올해 마이너스 성장을 예고했고, IMF도 2024년 아르헨티나 성장률을 -2.8%로 전망하고 있다. 작년에 이어 2년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하는 셈인 것이다. 하지만 개혁조치로 경제가 안정화되는 2025년에 아르헨티나는 5% 성장을 할 것으로 IMF는 예측하고 있다.
많은 경우 경제개혁 조치가 가시적인 성과로 이어지기까지는 시간이 걸린다. 그 시간은 1년이 될 수도 있고 2, 3년 이상 걸릴 수 있다. 그사이의 고통을 견뎌내지 못하면 개혁정책은 후퇴하게 된다. 긴축의 고통에 대한 반대가 선거에서 표로 극명하게 표출된다면 정권이 바뀔 수도 있다. 우파 정부의 긴축적 경제운용이 경기침체를 야기하고, 이에 대한 반발로 좌파 정부로 정권교체가 이뤄지고 새 정부는 다시 확장적 경제운용으로 전환 그리고 그 결과로 다시 재정적자와 높은 인플레이션이 초래되는 악순환은 남미에서 낯설지 않다.
밀레이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과감한 개혁조치를 예고했을 때 언론에서는 이를 '아르헨티나의 실험'이라고 칭했다. 여기서 실험은 암묵적으로 경제적 실험이라는 의미였을 것이다. 하지만 필자는 '경제적' 실험이라기보다는 '사회적' 실험이라고 해석하고 싶다. 밀레이 대통령의 개혁조치는 경제학 교과서에 없는 새로운 무엇이 아니다. 아르헨티나 경제위기 탈출의 첫걸음은 긴축에서 시작해야 한다는 것은 경제학 지식이 있는 사람은 대부분 동의할 것이다. 문제는 그 긴축이 야기하는 단기적 고통을 그 사회가 수용하고 견뎌낼 수 있느냐이며, 그에 따라 개혁의 성공 여부가 결정된다. 그런 의미에서 '사회적' 실험인 것이다.
이제 우리나라로 눈을 돌려보자. 지금 국민연금 개혁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현 제도의 본질적 문제는 지속가능성이고, 이에 대한 기본적 해결 방향은 '더 내고 (최소한) 더 받지 않는' 방식이 될 수밖에 없다.
더 내고 더 받지 않는 고통을 우리 사회가 수용하지 못한다면 지속가능성을 보장하는 국민연금 개혁을 이루기 어렵다. 역사적으로 어느 시대든 경제적 성과는 고통을 감내하면서 열심히 일한 사람들의 몫이었다. 지금의 한국 사회는 이 간단하고 명료한 진실을 수용하고 실천할 수 있는 사회인가, 의문을 던져본다.
이태규 한국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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