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의 대학' 검열관役 송승환
미타니 코키 작가 대본에 매료돼
시각 장애 핸디캡에도 무대 욕심
냉철한 검열관 인간성 회복 스토리
웃음·감동 모두 잡은 블랙코미디
일본 희곡작가 미타니 코키 원작의 연극 '웃음의 대학'이 내달 9일까지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에서 공연된다. 연극열전 제공
연극 '웃음의 대학' 검열관 역의 배우 송승환이 지난 17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 연습실에서 진행된 라운드 인터뷰 뒤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제2차 세계 대전 와중에도 연극을 올렸다는 한 노배우와 드레서의 이야기를 그린 정동극장 연극시리즈 '더 드레서'이후 배우 송승환(67·사진)이 비슷한 시기 일본을 무대로 희곡 작가와 검열관의 이야기를 그린 '웃음의 대학'으로 돌아왔다. 송승환은 지난 17일 세종문화회관에서 만나 "정동극장 배우 시리즈를 계기로 여러 작품을 검토했는데 그중 하나가 '웃음의 대학'이었다"며 "세종문화회관에서 함께 하자는 제의를 받고 '드레서'의 연장선상에서 이 작품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미타니 코키 작가의 대본에 감탄"
일본을 대표하는 '웃음의 연금술사' 미타니 코키(63)가 쓴 '웃음의 대학'은 희곡의 정수로 꼽힌다. 전시 상황이란 이유로 희극 작품을 없애려는 냉정한 검열관과 웃음에 사활을 건 극단 작가가 7일간 대립하는 내용의 2인극이다. 1996년 일본 초연 이후 중국·러시아·캐나다·영국 등지에서 공연됐고, 한국에서는 2008년 초연한 연극열전의 대표작 중 하나다.
송승환은 "대본이 워낙 좋아서 더 늙기 전에 해보고 싶었는데, 검열관 역할을 하게 돼 감사하다"며 남다른 소감을 밝혔다. 그는 "이번 작품을 하면서 미타니 코키라는 작가가 정말 대단하다는 것을 여러 번 느꼈다"며 "민감하고 심각한 주제를 이렇게 코믹하게 잘 풀어낼 수 있구나, 그래서 롱런하는구나. 공교롭게도 '더 드레서'에서는 배우, 이번에는 연극하는 사람의 이야기라 더 쉽게 몰입됐다"고 말했다.
지난 11일 개막한 '웃음의 대학'은 디지털 세상 속 점점 퇴색되어 가는 연극과 희극, 예술의 가치를 증명하며 웃음과 감동을 안겼다. 특히 실명 위기를 겪어 근접 거리에서도 사람의 형체만 대충 보인다는 송승환은 모르고 보면 전혀 눈치 챌 수 없게 열연을 펼쳤고, 관객들의 박수 역시 뜨거웠다.
송승환은 "아무래도 잘 안보이니까 눈보다는 귀로 더 민감하게 반응하며 연기한다"며 "무대 위 동선을 수차례 체크하고, 상대방의 얼굴 표정이 궁금하면 가까이 가 표정을 확인하고 그 모습을 기억해둔다"고 말했다.
또 "첫 공연에서는 중간 박수가 두 번이나 나와 굉장히 좋았다. 근데 어제는 중간 박수가 안 나오더라. 원래 공연이란 이렇게 움직이는 생물처럼 매일매일 반응이 다르다. 웃음은, 제가 처음 대본 보면서 웃었던 그 장면에서 관객들도 웃더라"며 관객 반응을 짚었다. 예상치 못한 어려움은 공연이 시작하는 평일 오후 8시에 있다. 그는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 밤 9시 뉴스를 끝까지 다 못보고 자는데 공연이 평소 졸린 시간에 하니까 그게 힘들다"며 웃었다.
■"웃으며 생각거리 주는 연극"
'웃음의 대학'은 공연 허가를 받으려 검열관의 요구에 따라 대본을 수정하는 과정이 예상치 못한 웃음을 준다. 수정할수록 더 재밌어진다는 점에서 마치 작품을 발전시키는 과정과 닮았다. 검열이라는 외부의 압력에 대처하는 작가의 열정과 내적 투쟁은 이 세상 모든 작가의 고민과 겹쳐진다. 동시에 연극 문외한이던 검열관이 점점 연극의 매력에 빠져 아이처럼 변하는 모습은 예술의 역할을 상기시키며 비극적 상황일수록 우리 삶에 얼마나 웃음이 필요한지를 역설한다는 점에서 비극과 다른 희극의 매력을 발견하게 해준다.
송승환은 "20~30대 젊은 관객은 작가의 입장에서 제도권에 대항하면서 권력과 싸우고 창작의 어려움을 겪는 점에 주목해 본다면 60~70대 관객은 다르더라"며 "검열관 역을 한 저로선 연극을 통한 인간성 회복과 웃음을 찾는 주제가 좋았다. 웃고 끝나는 게 아니고 웃고 생각해볼 가치가 있는 작품"이라고 말했다.
"후반부 검열관과 작가가 본심을 드러내는 장면에서도 이 작품이 단순한 코미디가 아니라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이렇게 재미있는 세상이 있는지 모르고 살았다'는 검열관의 대사가 인상적인데, 작가 역시 자신의 소신을 말하는 대사가 있으니 주목해 달라"고 당부했다.
1940년 태평양전쟁을 시간적 무대로 한 이 작품은 마지막엔 반전 메시지도 엿보인다. 송승환은 "극중 작가의 직접적인 모티브가 된 실존 인물이 있다"며 "미타니 코키가 존경하던 작가를 소재로 해 썼다"고 말했다. 일본의 희극왕이라 불린 에노모토 켄이치가 만든 극단 '에노켄' 소속의 재능 있던 작가로, 전쟁에 징집돼 35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매사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하는데, 웃음은 곧 긍정이고, 그 긍정의 에너지를 갖고 살 때 세상을 제대로 잘 살 수 있는것 같아요." 공연은 6월 9일까지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
jashin@fnnews.com 신진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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