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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학자 전경수의 세상 속으로] 양떼 기르고 치즈와 포도주 즐기며 사는 '100세 청년들'

남성 장수섬, 伊 사르데냐
여성이 남성보다 오래 살지만
이곳 백세인 남녀비율은 1대 2
아홉남매 합쳐 828세 가족도

사람 사는 곳은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배산임수를 기본으로 하는 한국의 마을이 풍수의 전형을 보여준다. 그런데 사람들이 건강장수하는 곳에도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자연상태에서 말이다. 그런 곳을 우리는 '블루존(Blue Zone)'이라고 부른다. 생물학자들은 장수요인에 관심을 갖지만, 인류학자는 그들의 살림살이에 관심이 있다. 백세인의 세계 평균을 남녀로 대별하면 1대 8이다. 할매 여덟에 할배 하나가 인류라는 종이 보여주는 백세인 수명 상태다. 여자가 오래 산다. 한국은 1대 13 정도 된다. 이 숫자는 한국의 남자들이 오래 살지 못한다는 증거이고, 그만큼 한국 남자들이 잘살지 못하고 있다는 단서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연구 결과도 나왔고, 간단히 요약하면 '꼴통'이 일찍 죽는 살림살이가 궁금해진다.

[인류학자 전경수의 세상 속으로] 양떼 기르고 치즈와 포도주 즐기며 사는 '100세 청년들'
누리(Nurri) 마을에 사는 피라스 에피시오(1907년 3월 3일생·오른쪽)와 피라스 실비아(1909년 10월 24일생) 부부. 사진=전경수 교수

그런데 이탈리아의 사르데냐(인구 150만명의 섬)는 1대 2이고, 그중에서도 올리아스트라와 누오로의 산간마을은 1대 1의 비율을 보여준다. 2008년에 내가 찾아갔던 피라스 댁 부부 합의 나이가 200세였다. 이웃집도 그렇다. '검은 머리 파뿌리 되도록 함께 잘살아라' 하던 주례사가 실천되고 있었다.

같은 마을에 사는 피라스씨의 동생 안드레아(96)는 날마다 아침이면 부인이 준비해 준 물과 도시락을 짊어지고 산을 오른다. 그의 뒤를 따르는 60마리의 양이 하얗게 무리를 이루면서 고요한 산자락에 목가적 풍경을 연출한다. 하루 종일 양들과 시간을 보내고 해거름에 돌아오는 목동 할배가 무엇을 하는지 궁금했다. 목동 생활의 핵심을 알고 싶어서 하루는 안드레아를 따라나섰다. 출발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는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그때마다 양들이 한 마리씩 그의 앞으로 "메에에~" 하면서 달려나갔다. 한 마리 한 마리 이름이 붙어 있고, 점호를 하는 것이다.

그렇게 점호가 끝나면 동네가 발아래로 보이는 널따란 바위가 있는 곳에 도달하여 점심을 먹으면서 양들에게 이야기를 한다. 양들은 부지런히 풀을 뜯는다. 무리 중에 덩치가 크고 누런색 갈기가 길며 뿔이 위로 솟구친 수놈이 두 마리 있다. 안드레아는 양들의 족보를 꿰고 60마리 양의 혈통관계를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그런데 한 마리는 잘 모른다고 했다. 잠시 한눈 판 사이에 어느 놈이 흘레의 주인공이었는지를 놓쳤다고. 농담도 잘하는 사르데냐 남성들이었다. 정기적으로 출하되는 양의 숫자와 산으로 다니는 양의 숫자가 항상 일정하다. 안드레아는 많은 돈을 벌기 위해서 양의 숫자를 늘리지 않는다. 조합으로 출하 후 판매가 완료된 통보가 오면, 그는 자전거를 타고 우체국으로 가서 통장의 입금액을 확인하고 미소를 짓는다.

사르데냐 산간의 올리아스트라에 사는 멜리스 집안의 106세로부터 79세까지 여덟 남매의 연령 합이 742세라는 뉴스는 사진과 함께 세상의 전파를 탔다. 그 옆 동네인 페르다스데포구 마을에는 아홉 남매의 연령 합이 828세라고. 중요한 것은 남매들의 성장 과정에서 아무도 사망한 사람이 없다는 것. 그들의 직계 자손들은 모두 180여명. 마음 편히 사는 모습의 구극 풍경 아닌가. 인간 오복 중 장수가 으뜸이라고 하지만, 오래 산다는 것보다는 편안히 사는 모습이 한 수 위가 아닌가. 이것이 살림살이의 문제다. 행복지수를 왈가왈부하지만, 풍성한 가족 숫자에 비극 장면 없는 사르데냐 사람들의 삶을 보는 것만으로도 족하다.

장수 연구자들이 이들의 식단으로부터 만들어낸 이름이 소위 '지중해 식단'이란 것이다. 올리브, 포도주, 치즈, 발효빵 그리고 프로슈토(돼지고기를 숙성시킨 이탈리아 햄) 등이다. 나의 친구 루치아노는 치즈 중에서도 으뜸인 카수마르주를 자랑한다. 글자 그대로 '썩은 치즈'인데, 염소 젖으로 만든 페코리노 치즈 통에 파리(모스카 세사리아)를 넣으면 파리가 치즈 속에 알을 낳고, 구더기가 성장한다. 커다란 붉은 눈에 등이 까만 색으로 반질거리는 파리다. 구더기가 치즈를 먹고 배설하면서 변형된 냄새 고약한 치즈다. 루치아노는 카수마르주에 사르도의 장수 비결이 있다고 주장한다.

그것이 좋은 음식임에는 틀림없지만 '장수음식'이라고 선전하는 데는 상업 냄새도 진동한다. 음식은 몸에 들어가면 영양으로 전환된다. 영양은 균형이 기본이자 으뜸인 게 상식이다. 된장과 막걸리가 그렇듯이 발효음식이 좋다는 점에는 이견이 있을 수 없다. 백살이 넘은 아르지올라스씨가 자신이 만든 포도주를 한 병 건넨다. 상표가 아르지올라스(Argiolas)다. 그와 동갑내기인 음악대학의 이혜구 선생께 전달하는 심부름을 했다. 선생님께서는 늘상 반주로 포도주를 즐기셨다. 두 분께서 극락이나 천당에서 함께 포도주로 환담하시면서 소생을 말씀하시리라는 기대도 해본다.

[인류학자 전경수의 세상 속으로] 양떼 기르고 치즈와 포도주 즐기며 사는 '100세 청년들'
오롤리(Orroli)에 있는 고대 건축물 누라게 아루비우. 사진=전경수 교수

그렇게 고요하고 평화스러워 보이는 사르데냐도 먼 옛날에는 대단한 전쟁을 치렀던 모양이다. 3000년 전 청동기 시대의 유적으로 알려진 누라게(Nuraghe)는 돌로 지은 철통 같은 요새형의 마을로 섬 전체에 빼곡하게 남아 있다. 누라게의 비밀은 아직도 해독되기를 기다리고 있지만, 한눈에 보아도 전투시의 방어용 촌락이다. 사르데냐의 깃발에 검은색 얼굴이 찍힌 것을 증거로 하여 사르도의 기원을 지중해 건너 아프리카 북쪽의 페니키아에 두고 있다는 주장은 바다를 격해서 엄청난 전쟁이 있었음을 시사한다.

전쟁으로 점철된 인류 역사는 동아시아와 한반도에서만 있었던 일이 아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간사가 그렇게 진행되어 왔음에 대해서 참으로 심각한 토론이 필요하다. 한반도에 고통을 주었던 섬나라 일본 땅에 고질적으로 뿌리 박힌 군국주의의 유산도 그러한 맥락에서 읽어야 한다. 식민지 경험의 피해를 당했으면, 최소한도 당한 만큼 깊이 있는 연구를 해야 할 책임이 있다. 누구를 위한 책임이 아니라 경험에 대한 책임이다.
일본 군국주의에 대한 연구의 심화가 우리를 이해하는 첩경이 될 수 있다. 이것도 살림살이와 함께 천착되어야 할 문제다. 사르데냐 사람들의 편안히 사는 모습이 내 주변의 모습과 엇갈리는 점에 대해서 생각을 하게 된다.

전경수 서울대 인류학과 명예교수


jsm64@fnnews.com 정순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