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일준 대한상공회의소 상근부회장
21대 국회가 이번 주 막을 내린다. 코로나라는 전례 없는 위기 속에서 개원됐고, 다양한 사회 이슈가 대두되면서 발의 법안은 2만6000여건으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한 반면 법안통과율은 37%에 머물렀다. 지난 4년간 투자 확대를 위한 세금감면이 추진됐고 '킬러규제'라는 화학물질 관리법안, 첨단 산업단지의 입지규정도 완화됐다. 반면 중대재해처벌법이 소기업까지 확대되고, 공정거래법상 기업의 의무도 강화되는 등 기업이 넘어서야 하는 허들도 많아졌다.
내일이면 22대 국회가 열린다. 기업인과 국민이 바라는 것은 生·生·生(경제재생·민생·저출생)이었다. 대한상공회의소 소플이 6000여명에게 물은 결과 새 국회가 우선 추진해야 할 정책 분야는 경제재생(25%), 민생(34%), 저출생(23%) 등이었다. 실제 '노력하면 보상을 받을 수 있는 사다리를 마련하자' '지방에 화려한 인프라보다 민생을 해결해 달라' '아이 낳고 기를 환경을 마련하자' 등의 의견이 올라오기도 했다. 그러면 새로운 국회가 이러한 국민의 바람을 만족시키고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 나가기 위해서는 어떤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할까.
먼저 국회가 경제주체의 혁신을 유도하며 경쟁력 제고에 힘써야 한다. 소위 국가 간 반도체 전쟁으로 불릴 만큼 첨단산업 경쟁이 치열한 상황에서 하반기면 일몰이 되는 반도체, 2차전지 등에 부여하는 세액공제를 연장하는 것이 급선무다. 미국만 해도 삼성전자, TSMC 등의 공장을 유치하기 위해 527억달러(약 70조원)를 풀고, 일본도 TSMC의 두 공장을 유치하기 위해 10조원 보조금을 지원한다. 기술력보다는 자본력이 중요한 첨단설비시장에서 국회의 지원이 필요한 이유다. 혁신의 실험장도 넓혀야 한다. 정해진 것 이외는 할 수 없는 한국의 포지티브식 법제도에서 규제 없이 기업할 수 있는 '샌드박스'는 스타트업에 큰 힘이 되고 있다. 이제 대형 첨단산업으로 제도혁신의 장을 확대하는 것도 이번 국회가 할 일이다.
둘째, 한국에만 있는 과도한 부담이나 '갈라파고스' 규제도 바꿔야 한다. 총선 전 우리 사회 이슈 중 하나였던 상속세 최고세율은 명목 50%로(최대주주 할증과세 시 60%)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15%)을 크게 넘어선다. 한 경제지는 창립 160년의 하이네켄이 한국 상속세제하에서 살아남았을까 물음표를 던지기도 했다. 4대까지 가업승계한 하이네켄이 네덜란드에서 낸 상속세는 6400억원 정도였지만 이들이 한국에서 상속세를 냈다면 11조원(약 17배)에 이르렀을 것으로 분석됐다. 또 '비대면 진료 금지', 40여년간 시대 변화를 반영하지 않는 '동일인 지정' 제도 등 한국에만 있는 갈라파고스 규제도 손봐야 한다.
셋째, 중소기업·소상공인·소비자를 위한 민생혁신도 중요하다. 올해 초 중대재해처벌법이 50인 미만 사업장까지 확대되면서 83만7000곳이 조사대상에 편입됐다. 처벌 일변도의 중대재해법이 고금리와 경기침체로 어려운 소상공인들한테 공포감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해당 법안의 의무부과 범위를 명확히 하고 준수 노력을 고려한 감경대책도 필요하다. 대형마트의 공휴일 의무휴업, 새벽배송 금지 규제도 소비자 구매패턴에 맞게 바꿔야 한다. 이미 대형마트는 감소 중이고, 새벽배송은 일상이 됐다. 국회가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을 뒤로한 사이 기초지자체 76곳은 조례개정으로 규제를 우회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전 세계적으로 유례없이 낮은 출산율을 보이는 상황에서 각 정당이 내놓은 신혼부부를 위한 주택공급 확대, 결혼출산 지원금, 우리아이 키움카드 바우처 공약 등에 국민들은 큰 기대를 걸고 있다.
22대 국회는 시작부터 어느 때보다 어려운 시기를 맞닥뜨렸다. 잠재성장률 하락, 주력산업의 경쟁력 약화, 저출생, 고령화, 양극화, 사회적 안전망 확대 등 풀어야 할 숙제들이 산적해 있다. 새로운 소통과 해법으로 生·生·生 국회를 열어달라는 국민과 기업의 기대에 부응하길 바란다.
박일준 대한상공회의소 상근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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