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농이 보유한 농지를
'청년 농기업’이 쓸수있게
농지제도 개혁 서둘러야
정현출 한국농수산대학교 총장
30년 후에도 한국 농업이 생존할 것인지 심각하게 질문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농업의 기초체력이 바닥나고 있기 때문이다. 생산의 3대 변수인 토지(농지), 노동(농업인), 자본(농기계 등)을 살펴보면 취약점이 선명하게 보인다. 농지는 좁고, 농민은 늙고, 투자는 정부에 의존하고 있다. 농업이 살려면 이 구조를 정반대로 바꾸어야 한다. 혁신적 청년 기업농이 대규모 영농을 주도하고, 민간이 농업 투자에 나서야 한다. 생산과 유통에 규모의 경제가 실현되어야 소득이 늘고 미래를 기약할 수 있다.
농업 구조개선은 쉽지 않다. 혁신을 위한 거시정책은 관련 제도의 역사적 맥락을 고려한 담대한 기획에서 출발해야 한다. 그리고 그 실마리는 정부 수립 직후처럼 농지제도 개혁부터 풀어가는 것이 좋다고 본다. 농지는 농민에게 가장 중요한 자산이자 생산성을 제일 크게 좌우하는 생산요소이기 때문이다. 농지개혁은 소작농을 자영 농민으로 거듭나게 함으로써 오늘날 중산층 탄생의 기반을 제공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농지를 잘게 나누다 보니 오늘날 소농 구조를 고착시키는 환경을 제공하기도 했다. 청년 입장에서는 좁은 농지에서 거두는 낮은 소득에서 매력을 느낄 수 없다.
이런 답답한 현실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이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다. 경북 문경시 영순면에 있는 늘봄영농조합법인 사례는 큰 시사점을 준다. 홍의식 대표는 2023년 1월 그동안 벼농사만 짓던 80개 고령 농가의 논 110㏊를 위탁받아 기계화된 공동영농을 시작했다. 여름에는 콩 105㏊, 벼 5㏊를 심고 겨울에는 양파 56㏊, 감자 31㏊를 재배하는 이모작 체제로 바꾼 것이다. 1년차 소득은 괄목할 수준이다. 쌀만 재배할 때는 7억8000만원을 벌었는데 콩, 양파, 감자로 바꾸니 약 25억원으로 3.2배 증가했다.
논을 영농법인에 위탁한 농가는 주식을 가진 것과 같은 대우를 받는다. 평당 3000원의 배당을 받는데 첫해 80농가에 지급한 배당금이 약 10억원에 달한다. 이것만으로도 종전 쌀 소득을 능가한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농가가 공동영농에 참여하면 일당 9만원의 임금을 받는다. 기계를 운전하는 경우는 30만원이다. 자기 논 빌려주고 배당을 받고 마을 주민이 같이 일하면서 근로소득도 올리니 일이 즐겁다고 웃음이 핀다. 결산을 마치면 법인에서 추가 배당까지 할 것이라니 요새 중앙 정치무대에서 요란한 양곡관리법 논쟁은 적어도 이 마을에서는 관심거리가 되지 못한다.
핵심은 영농 규모를 기계화가 가능하도록 키우고 작목 선택과 파종, 수확 등 영농 의사결정을 법인에 일임해 노동력을 절감하고 생산성을 높인 데 있다. 홍 대표와 같이 비전과 뚝심 있는 리더가 있고, 기계를 다루는 청년농 3명이 합류한 것이 참여 주민들에게는 큰 행운이 되었다. 여기에 경북지사와 문경시장이 직접 나서서 행정력을 집중 지원한 것이 시너지를 냈다. 경북도는 이런 성공 사례를 전국으로 확산시킬 꿈을 꾸고 있다.
이런 비전을 앞당기려면 농지제도를 개혁해야 한다는 데 현장 목소리가 일치한다. 제도 기반이 노력보다 힘이 세기 때문이다. 75년 전 소작제도의 모순을 해결하기 위한 법규를 가지고 미래를 향한 혁신을 할 수는 없다. 이제 '비농업인'이 상속받거나 고령농이 보유한 농지를 '혁신적 청년 농기업'이 활용하기 쉽도록 농지법을 개정해야 한다.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소유자가 다른 소규모 필지를 묶어서 관리하는 제도적 방안도 강구해야 한다. 이와 더불어 생산성이 낮은 농지는 전용하거나 이용제한을 해제하는 등 규제도 완화해야 한다.
문제는 실행력이다. 농지 소유 질서를 건드리는 일은 기술적으로 어렵고 정치적으로 위험한 일이다.
그러나 혁신하기 위한 기회의 창이 닫히는 날이 곧 다가온다. 정부와 지자체, 농민과 정치인 모두 지혜를 모아 미래 농업을 위한 기초를 정비해야 한다. 지금이야말로 제2의 농지개혁을 시작으로 생산성과 유통효율을 비약시키는 파괴적 혁신을 시작해야 할 때다.
정현출 한국농수산대학교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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