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칼럼 >

[차관 칼럼] 폭염, 서로 돌보는 미덕으로 이겨내야

[차관 칼럼] 폭염, 서로 돌보는 미덕으로 이겨내야
이한경 행정안전부 재난안전관리본부장
남유럽과 미국 서부지역은 아름다운 해안과 산악지형에 활동하기 좋은 지중해성 기후까지 더해 여행객이 먼저 찾는다. 하지만 2017년 여름 상황은 달랐다. 7월 스페인 마드리드는 41도를 기록했고, 8월엔 남유럽 전역이 끓어올랐다. 미국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LA)는 131년 만에 최고 기온을 기록했고, 남서부 곳곳이 46도에 이르는 폭염에 시달렸다. 2014년부터 2016년까지의 엘니뇨가 끝나자 발생한 이상기후였다. 우리나라도 사정은 다르지 않았다. 엘니뇨가 끝나가던 2016년부터 심화된 폭염은 2018년 절정을 이뤘다.

행정안전부 재난안전관리본부의 하루 업무는 상황보고로 시작된다. 밤사이 긴박했던 대응 상황을 포함해 매일의 재난발생 위험을 복기하고 실제 작동하는 업무를 추진하는 방식이다. 최근 수개월 사이 상황보고 때마다 우리나라를 포함한 전 세계 해수 온도를 살펴보고 있다. 수상한 기후변화 때문이다. 지난해 7월 세계기상기구(WMO)는 적도 주변 동태평양 해수면 온도가 높아진 가운데 엘니뇨 발생을 공식 선언했다. 6월인 지금은 엘니뇨가 끝나고 중립상태로 접어들었다. 거꾸로 서태평양 온도가 상승하고 있다. 한반도 주변 해수온도 역시 마찬가지다. 수개월째 평년보다 1~3도 높다.

독일의 구텐베르크대학 연구팀은 북위 30~90도 지역에서 오래전 여름의 기온을 재구성했다. 그 결과 작년 여름은 지난 2000년의 어떤 날보다도 무더웠다. 과학자들은 이를 엘니뇨와 전 지구적 기후변화가 맞물린 결과라고 풀이했다. 특히 우리나라 주변과 세계의 바다 온도가 상승한 채 맞이하는 올해 여름은 매우 무더울 확률이 높다.

모든 안전관리가 그러하듯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고 주도면밀히 대비해야 한다. 정부는 지난 5월, 2024년 폭염 종합대책을 수립해 폭염으로 인한 인적·물적 피해 최소화를 위해 대비하고 있다.

첫째, 고령층 보호를 강화한다. 전국의 공무원, 이·통장, 지역자율방재단 등이 총력을 다해 어르신들을 보호한다. 농업인 행복콜센터나 마을방송, TV를 활용해 정보를 제공하는 기존 방식에서 더 나아가 손목에 착용하거나 집안에 설치된 스마트기기로 위험상황을 알리는 사업도 추진한다.

둘째, 폭염경보가 발효되면 현장 근로자의 건강상태를 살피고 매 시간 15분 쉬도록 한다. 무더위 시간대의 옥외작업도 중단한다. 현장의 온열질환 예방수칙 이행 여부를 집중적으로 점검하고, 폭염을 피할 수 있는 쉼터는 다양한 형태로 확충한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적용되는 현장에서의 폭염 대응 효과도 기대해본다.

셋째, 여름철 경로당 전기요금과 함께 취약계층을 위한 냉방비 지원도 확대한다. 전국 수만명의 생활지원사들이 전화를 걸거나 직접 방문하는 방식으로 홀로 지내는 취약계층의 안전을 일일이 확인한다.

넷째, 각 분야별 폭염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대책을 가동한다. 축산·농업·어업 분야 피해를 줄이고 수급불안 시 가격안정과 공급확대를 추진한다. 녹조, 적조, 전력, 교통, 축제 등 다양한 분야의 대비책도 마련했다. 국민들에게는 폭염상황과 행동요령을 적시 홍보하고 그늘막, 물안개 분사장치 같은 폭염 저감시설도 확충한다. 전국에 6만여개의 무더위쉼터를 운영하고 물과 폭염예방 용품도 보급한다.

이렇듯 폭염을 앞두고 충분히 물을 마시고 잠시 쉴 수 있도록 재난취약계층을 돌보는 대책을 꼼꼼하게 준비하고 있지만 정부의 힘만으로는 부족하다. 주변에 더위를 피하기 어려운 사람은 없는지, 더위를 무시하는 사람이 없는지 살펴야 한다.
여건이 된다면 물과 폭염예방 용품을 기부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매년 신기록을 써내려가는 기후변화 속에 폭염재난은 확실한 위험이 됐다. 나와 이웃의 바로 옆에서 펼쳐지는 무서운 재난일지라도 서로 돌보는 미덕으로 이겨내는 대한민국이길 소원한다.

이한경 행정안전부 재난안전관리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