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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나는 죽어도 'AI 까치'는 계속… 필멸자의 복수 같아 통쾌"

[인터뷰] '만화계 입문 50주년' 이현세 세종대 석좌교수
"AI로 불멸성 얻은 이현세 세계관
미래세대와 소통·공명하는 셈"
국제지식재산보호 컨퍼런스서
'AI의 도전, 나의 도전' 특별강연

[인터뷰] "나는 죽어도 'AI 까치'는 계속… 필멸자의 복수 같아 통쾌"
만화가 이현세 세종대 석좌교수가 서울 강남구 작업실에서 자신의 대표작인 '공포의 외인구단' 주인공 까치를 배경으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박범준 기자
"나는 언젠가 죽지만, 인공지능(AI)으로 재탄생한 '까치'와 '마동탁'은 불멸의 존재로, 내가 꿈꿨던 세계관 속에서 미래 세대와 소통하고 공명하며 살아갈 것입니다."

올해 만화계 입문 50주년을 맞이한 거장, 이현세 세종대 석좌교수. 이 교수는 현재 AI 스타트업인 재담미디어와 함께 5000권이 넘는 자신의 만화 속 캐릭터를 AI로 구현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일명 '이현세 AI 프로젝트'다. 올 연말이면 이 교수의 대표작 '공포의 외인구단' 속 까치와 마동탁, 엄지 등이 AI로 재탄생한다. AI가 그리는 2024년 또는 2025년 버전의 '공포의 외인구단'도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이다. 칠순을 앞둔 만화거장의 새로운 도전에 웹툰·만화계는 물론이고 국내외 지식재산(IP) 업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AI, 거대 산업자본 대응할 무기"

이 교수는 오는 18일 서울 중구 웨스틴조선호텔에서 파이낸셜뉴스와 특허청이 공동으로 개최하는 제14회 국제지식재산보호 컨퍼런스의 특별연사로 무대에 오른다. 그는 'AI의 도전, 나의 도전'을 주제로 AI 활용과 창작자의 관점에서 본 저작권 문제 등을 심도 있게 강연할 예정이다.


'AI 프로젝트에 도전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과연 어디까지 AI를 창작에 활용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물음을 안고 10일 서울 강남구 소재 이 교수의 작업실에서 인터뷰를 했다.

이 교수는 AI 프로젝트를 한마디로 "가슴 떨리는 도전"이라고 말했다. 자신의 사후에도 이현세 세계관을 가지고 누군가의 감독 아래 작업이 이뤄질 수 있다면 "그것은 마치 유한한 생명에 대한 통쾌한 복수 같기도 하다"고 했다.

특히 그는 AI가 미국, 일본 등 글로벌 애니메이션 산업계의 막대한 자본력에 대응할 수 있는 '무기'가 될 수 있다고 봤다. 월트디즈니 사후 약 60년이 지났음에도 디즈니가 창조한 캐릭터들이 오늘날 전 세계를 활보할 수 있는 것은 거대자본과 체계적 시스템이 뒷받침됐기 때문이라고 평가했다. 이 교수는 "한국이 전 세계 만화 변방에서 웹툰 종주국으로 부상했던 것에는 IT기술, 웹기술의 발달이 있었던 것처럼 향후 AI 활용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AI 작업은 더 이상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라며 "더 이상 거스를 수도, 막을 수도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AI처럼 365일, 24시간 안 자고 일할 수 있다면 그런 가성비와 경제성을 어느 누가 마다하겠느냐"면서 "이미 전 세계 수많은 엔지니어와 작업자들이 AI 시대로 진격하는 만큼 거기서 살아남을 준비를 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역설했다.

[인터뷰] "나는 죽어도 'AI 까치'는 계속… 필멸자의 복수 같아 통쾌"
지난달 22일 서울 서초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진행 중인 '이현세의 길: K-웹툰 전설의 시작 특별전'에서 한 관람객이 그린 그림을 AI가 캐릭터로 바꿨다. 뉴시스

■"AI 저작권, 작가의 신념 문제"

현재 이 교수와 AI스타트업 재담미디어는 50년간의 이현세 만화 5000권을 AI에 학습시키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가령 "1990년대 이현세 화풍으로, ○○ 스토리로, ○○ 캐릭터를 그리라"는 지시를 AI가 그대로 구현해내는 방식이다. 이 교수는 "무서울 정도로 (AI의) 학습 속도가 빠르다"며 혀를 내둘렀다.

이 교수는 작업 초반 100% 수작업을 고수하고 있다. 그러나 'AI를 어디까지 사용할 수 있는가'에 대해선 비교적 폭넓게 허용해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는 "작가의 철학, 장인의 기운, 감성과 철학, 이런 것들은 아직은 인간의 몫으로 남아있다"면서도 "어디까지 AI에 작업을 맡길 것이냐는 결국엔 작가의 신념 문제"라고 말했다. "작가에 따라서는 AI에 전부 다 맡겨도 내 작품이라고 할 수 있고, 어느 부분은 절대로 AI에 넘기지 않겠다고 할 수 있는 것 아니겠느냐"고 부연했다. "영화에서 어떤 장면을 컴퓨터그래픽(CG)으로 만들어냈다고 해도 배우의 연기를 인정하지 않거나 감독의 연출력을 인정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는 것이다. 이 교수는 "AI를 어디까지 활용하느냐의 문제에 대해선 폭넓게 보고 있다"고 말했다.

사후 이현세 만화 캐릭터들이 그의 의도와 달리 AI를 통해 제멋대로 창작될 가능성에 대해 묻자 뜻밖의 답이 돌아왔다.
이 교수는 "그러면 또 어떠냐. 내가 그렇게까지 고귀한 사람은 아니다"라며 웃음을 지었다. 이미 그의 만화 '황금의 꽃'(1995년작)에선 사이버 세계에서 인격체가 만들어진 캐릭터가 등장한다고 했다. 이 교수는 "이미 판도라 상자의 뚜껑이 열렸다고 봐야 한다"면서 "그걸 덮는 것은 이제 불가능하다"고 단언했다.

ehcho@fnnews.com 조은효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