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

갈길 바쁜 첨단산업 발목… "‘톱다운’으로 해소"[도약의 마지막 기회를 잡아라]

신사업을 찾아라 (下) 규제 풀어야 미래 있다
기업여건 국가 경쟁력 평가 하위권
행정절차 규제에 시간 싸움 뒤쳐져
‘先허용’ 네거티브 규제로 개편해야

갈길 바쁜 첨단산업 발목… "‘톱다운’으로 해소"[도약의 마지막 기회를 잡아라]


차세대 먹거리를 두고 글로벌 패권 경쟁이 치열한 가운데 혁신을 가로막는 기업규제 부담은 오히려 더 커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저성장 시대 경제활력을 회복하기 위해 과감한 규제개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기업여건' 64개국 중 53위 '하위권'

23일 업계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기업여건이 5년 전 대비 악화된 가운데, 기업들이 속도감 있는 기업규제 완화를 요구하고 있다.

지난해 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에서 발표한 국가 경쟁력 평가에서 정부 효율성 중 '기업여건'은 64개국 중 53위를 차지해 하위권에 머물렀다. 지난 2018년 47위보다 하락한 성적표다. 기업여건은 노동관련 규제의 사업 저해 정도, 경쟁법의 효율성, 보조금의 경쟁저해 정도 등을 여러 항목을 평가해 종합적으로 순위를 매긴다.

규제완화가 가장 시급한 분야로는 첨단산업이 꼽힌다. 각국이 미래 먹거리를 두고 쟁패를 벌이는 가운데 첨단산업은 고위험을 감수하며 장기간 연구개발 및 투자로 기술력을 확보해야 하기에 더욱 신속하고 적극적인 규제완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대기업 관계자는 "첨단산업은 시간싸움"이라며 "행정규제 등으로 사업 진행에 시간을 끌게 되면 기업들은 경쟁에서 뒤처지고 그 비용을 감당하게 돼 치명적"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한국경영자총협회에 따르면 정부가 꼽은 6대 첨단 핵심산업(반도체, 디스플레이, 2차전지, 미래차, 바이오, 로봇)의 수출시장 점유율은 2018년부터 4년간 25%가량 하락했다.

■경쟁국은 미래 먹거리 총력 지원

전문가와 업계 관계자들은 일찌감치 첨단산업 대규모 지원에 나선 미국, 중국, 일본 등 주요국과 달리 한국의 기업규제가 산업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미국은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을 통해 전기차에 2032년까지 105억달러, 반도체지원법을 통해 2027년까지 총 527억달러를 보조금으로 지원한다. 중국도 2022년까지 14년간 신에너지차 보조금 약 30조원을 투입했다. 반도체 산업엔 1·2차 국가집적회로산업투자펀드를 통해 약 63조7000억원의 투자금을 조성한 바 있다. 또 일본은 지난해 발표한 '반도체 등 첨단산업 육성을 위한 규제 개혁 계획'에 공장을 짓기 위한 토지규제를 완화하고, 행정절차를 단축하는 내용을 담았다. 적극적인 정책 지원 덕분에 일본이 구마모토에 유치한 대만 TSMC 1공장은 원래대로라면 5년이 소요될 예정이었지만 단 20개월 만에 준공됐다.

반면 우리나라의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는 인허가 등 절차가 지연되면서 SK하이닉스 첫 공장 착공이 당초 계획인 2022년보다 3년 늦춰졌다. 삼성전자 공장의 경우 더 늦어져 2026년 부지 조성에 들어갈 전망이다. 대기업 관계자는 "우리 정부는 파격 지원은커녕 절차가 까다로워 첨단산업의 발목을 잡고 있다"며 "삼성전자가 지난 2021년 미국 테일러 공장을 투자 발표한 후 불과 3년 만인 올해 연말 양산을 앞둔 모습과 대조적"이라고 지적했다.

■'톱다운' 방식, 전향적 규제개선 필요

전문가들은 '톱다운' 방식 규제개선을 통해 기업이 체감하는 실질적 규제완화를 이룰 수 있다고 제언한다.


조재한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지금처럼 상향식으로 기업들의 애로사항을 하나하나 듣고 건별로 개정을 검토하는 방식은 법령의 누더기화 위험을 높이고 효율성이 낮다"며 "기업들의 개선 건의가 많은 법령의 경우 규제에 대한 산업경쟁력 영향평가를 실시한 후 하향식 개선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신사업 '포지티브' 규제를 금지된 행위가 아니면 모두 허용하는 '네거티브' 규제로 개편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유정주 한국경제인협회 팀장은 "신산업은 급속한 기술 발전과 업종 간 융합 성격을 띠고 있어 규제체계가 그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는 상황이 생긴다"며 "네거티브 시스템으로 전면 개편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yon@fnnews.com 홍요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