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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학자 전경수의 세상 속으로] 갓 잡은 소 위에서 꺼낸 풀줄기…中 소수민족의 필수 식재료

인간이 찾은 최상의 양념
소가 되새김질한 풀에 물 섞으면
녹색의 걸쭉한 '만능소스' 변신
고기 요리 찍어먹으면 최고의 맛

[인류학자 전경수의 세상 속으로] 갓 잡은 소 위에서 꺼낸 풀줄기…中 소수민족의 필수 식재료
잘 버무려진 베에를 들고 입맛을 다시는 중국 구이저우 황강촌 사람들.
[인류학자 전경수의 세상 속으로] 갓 잡은 소 위에서 꺼낸 풀줄기…中 소수민족의 필수 식재료
황강촌 사람들이 소를 도축한 뒤 부위별로 고기를 발라내고 마지막 단계로 소가죽을 정리하는 모습. 사진=전경수 교수

사람이 먹어야 하는 필수 영양소가 단백질이다. 특히 나이가 들면서 단백질은 요긴하다. '맹자'의 ‘양혜왕편’에 노부모를 잘 봉양하는 장면이 나온다. “계돈구체지축(鷄豚狗彘之畜)”이란 구절인데, 풀어쓰면 “닭, 돼지, 개, 돼지”로 단백질을 공급한다는 얘기다. 산동성 근처에서 기원전 4세기경 즉 춘추전국시대라는 시대적 배경을 생각하면, 당시 농사를 위한 축력의 원천이었던 소는 고기로 먹지 않았다. 양(羊)이 포함되지 않은 것은 서역과의 문물교류가 아직 없었던 결과다. 닭이 등장한 것은 달걀을 목적으로 하였고, 고기는 주로 돼지(豚)와 개(狗)로부터 공급되었던 모양이다.

재생산율이 가장 뛰어난 가축이 돼지와 개라는 점을 알 수 있다. 맛은 물론이다. 이 짧은 문구에 돼지가 두 번 등장하는 것은 생태학적으로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뒤에 등장하는 돼지를 일컫는 '체(彘)'자는 ‘늙은 암퇘지’를 의미한다. 암퇘지가 있어야 기본적으로 집안이 돌아간다는 뜻으로 집 가(家)가 있고, 돼지가 농사의 근본이라는 뜻이 담겨 있다.

마지막에 나오는 “축(畜)”자, 즉 ‘밭을 검게 만든다’는 말은 거름이라는 영농자원이 돼지로부터 공급되는 순환원리가 숨겨져 있다. 과거에 변소(통시)에 있었던 돼지를 말함이고, 약 2000여년 전 양한(兩漢)의 대표적인 고고학적 기표유물이 저권(猪圈)이다. 양한으로부터 두 번의 밀레니엄이 지난 지금의 농사법은 차원이 달라졌다.

서양 사람들이 고기를 먹을 때 소스가 중요하다. 소스를 무엇으로 어떻게 만드느냐가, 특히 프랑스 셰프들의 영업 비밀이다. 내가 경험한 지상 최고의 고기 소스를 소개한다. 정년퇴임을 하면서 곧바로 만 3년간 이어진 직장이 중국 귀주대학의 특빙교수라는 직함이었다. 야연(野硏)이 직업인 인류학자에게 중국은 매력적이다. 소위 소수민족 지대로 자료 수집을 나간다는 것은 쉬운 과정이 아니었다. 가까스로 명절이 포함된 일주일간 동족(侗族) 산촌(이핑현 황강촌)을 방문하는 것이 가능했고, 도시로부터 귀향한 젊은이들이 넘쳐나는 축제 분위기를 만났다. 긴밀한 이웃 관계로 이어진 소추렴이 있었다.

새벽 4시. 장년 남자 둘 옆에선 나는 어둠 속의 골목으로부터 한 마리의 소를 끌고 오는 남자, 그 장면을 기다리는 도끼 든 남자, 밧줄을 하나씩 들고 있는 남자 넷을 지켜보았다. 도끼자루를 휘두르는 남자의 도끼등이 소의 이마를 내리쳤고, 커다란 소는 순식간에 쓰러졌다. 기절한 소의 네 발이 사방의 밧줄로 탱탱하게 당기어 묶이는 동안, 장년 두 명이 소의 배에 올라타서 손칼로 가슴으로부터 날렵하게 가죽을 벗기면서 정맥을 찔렀다.

이 모든 행동은 거의 동시에 이루어졌다. 다른 골목에서도 동일한 소리가 들렸다. 발버둥치는 소의 염통이 드러나면서 소는 느러지기 시작했다. 마지막 숨을 거두기 전의 발작 때문에, 밧줄의 팽팽함은 긴장감을 유지했고, 간헐적인 경련을 보여주는 소는 숨도 몰아 쉬었다. 갈라진 배에서 위가 드러났다. 속을 드러낸 커다란 1번 위(혹위) 속에는 초록빛 풀잎만 반짝이며 가지런히 쌓여있고, 옆에 섰던 부인네가 넓은 그릇에 그것들을 받아냈다.

2번 위(벌집위)가 갈렸다. 초록빛이 가신 누런색 풀줄기들을 조심스레 들어서, 동일한 그릇에 담겼다. 되새김된 풀이다. 3번(겹주름위)과 4번 위(주름위)는 그냥 잘라서 옆에 뒀다. 강산성을 띤 유미(乳糜 chyme)라는 물질이 들었기 때문에, 버려야 한다고. 두 군데의 위로부터 나온 되새김된 풀은 넓은 그릇 속에서 잘 버무려졌다. 아침 동이 이미 튼 8시가 되었다. 네 시간만에 소 한 마리가 완전 해체되었다. 도살이 진행됐던 땅바닥에는 흠집 없는 소가죽 한 장만 깨끗하게 누었다. 소머리는 ‘도끼로 이마 깐’ 전문가의 몫이다. 이웃하는 8집이 공평하게 갹출하여 이루어낸 소추렴이었고, 여름철 기우제인 함천절(喊天節)이란 명절의 행사였다. 도시로 나갔던 젊은이들은 이 맛 때문에 고향을 찾는다고 했다. 이튿날 만난 소가죽 수집상은 누런색과 검정색으로 양질의 46장을 구입했다고 싱글벙글이었고, 나는 도살 과정과 함께 반추미생물학의 완판을 기록할 수 있었다.

도살된 소는 부위별로 분류되어서 모두 8몫으로 나뉘었다. 물론 뼈도 포함되었다. 되새김된 풀도 똑같이 분배됐고, 그것의 이름은 동족 언어로 '베에'(중국어는 없기 때문에 음차하여 별㿜-비에라고 발음)였다. 혼자 들기 편한 정도 크기의 광주리 두 개가 따로 마련되었는데, 그 속에는 부위별로 조금씩 담겨 있었다. 작은 종재기에 베에도 담겼다. 이웃에 있는 독거노인 두 분의 몫이라고 했다. “남는 것으로 나누는 것이 아니라 미리 나누는 것”이 노인복지라는 얘기다!

페르디난트 퇴니스가 말했던 게마인샤프트(Gemeinschaft)의 원조가 생생하게 작동하는 현장임이 직감되었다. 한몫을 받은 집으로 따라갔다. 식수가 담긴 그릇에 베에를 한움큼 풀어 넣어서 주무르니, 이어서 초록빛으로 걸쭉한 액체가 되었다. 부뚜막에는 항상 베에를 담은 호리병이 있고, 고기 요리를 할 때에는 반드시 한 국자씩 넣는다. 말하자면 부엌살림의 상비품인 양념이다. 수육을 썰어서 베에에 적셔서 먹는다. 찹쌀밥이 차려진 식탁에 끼어서 시식할 기회를 얻었다. 여태까지 먹어본 어떠한 스테이크 소스보다도 월등한 형언불가의 맛이었다. 미네아폴리스에서도, 뉴욕에서도, 도쿄에서도 스테이크는 많이 먹었다. 브라질의 상파울루에서는 슈하스코를,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는 아사도를 먹었다. 그런데 귀주의 베에 적신 수육 맛을 따라갈 수 없다.

인간이 어떻게 이 구극의 양념을 찾아낼 수 있었을까? 살림살이의 지혜이고, 자연전유의 문화 문제인 것이다. 자연 속에 어우러진 삶의 모습이다. 소가 먹는 풀은 한 종류여야 하고, 인공사료를 먹은 소로부터는 베에를 얻을 수가 없다. 베에를 얻을 수 있는 생태학적 사이클은 지독히도 정밀할 뿐만 아니라 엔트로피 제로의 생활양식을 보여준다. 염소(양)로부터도 베에를 얻는다.
인근의 도시에서는 ‘뉴베에’와 ‘양베에’를 전문으로 하는 고깃집이 성업 중이다. 몽골의 낙타와 북유럽 사미족의 순록에서도 얻을 수 있을까? 몇 년 뒤 곤명의 운남대학에 강연을 가서도 베에를 제공하는 식당을 찾았다. 중국 서남부에 공유된 양념 문화의 일면이다.

전경수 서울대 인류학과 명예교수


jsm64@fnnews.com 정순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