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코 제피렐리 감독(IMDB 스크린샷)
[파이낸셜뉴스] “나는 사람들이 꿈을 꾸게 만들기 위해, 나의 꿈과 이야기를 표현하기 위해 다양한 도구를 사용한다. 아름다움, 아무런 노력 없이도 마음과 정신을 꿰뚫는 단순하고 엄격한 아름다움을 나는 항상 좋아했다.” (프랑코, 제피렐리)
2016년 4월 영국 BBC는 연출가 프랑코 제피렐리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혈통을 이어받았다는 이탈리아 연구가들의 연구 결과를 보도했다. 영화감독이자 오페라 연출가로 워낙 독보적이고 탁월한 업적을 남긴 그였기에 BBC의 이러한 보도가 더욱 흥미롭다. 천재성의 대물림일까. 그는 아카데미상, 골든 글로브상, 토니상, 에미상, 도나텔로상 등 하나도 받기 힘든 세계적인 영화상과 드라마상을 14번이나 수상 또는 노미네이트 됐다.
특히 1968년에 그가 직접 각본을 쓰고 감독한 세익스피어 원작 영화 ‘로미오와 줄리엣’은 동시대를 살았던 우리들에게 너무나도 강한 인상을 남기며 그를 영화 감독으로 기억하게 한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영화 ‘말괄량이 길들이기’, ‘챔프’, ‘앤들리스 러브’, ‘무솔리니와 차 한 잔’, ‘제인 에어’ 등 수많은 명화들을 남겼다. 영화뿐만 아니라 TV드라마 시리즈인 ‘나사렛의 예수’는 오늘날에도 크리스마스와 부활 시즌에 방송되곤 한다.
하지만 사실 제피렐리의 진가는 그의 탁월한 디자인 솜씨와 결합된 오페라에서 나온다. 평생 120편이 넘는 오페라를 연출한 그의 오페라계 위상은 그야말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는 아직도 제피렐리 프로덕션의 ‘라 보엠’, ‘투란도트’를 무대에 올리고 있다. 그의 무대는 항상 “모든 디테일이 살아있는” 정교하고 철저하게 고증된 화려하고 엄청난 규모의 세트로 채워져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그만의 독창성을 만들었다. 5년 전인 2019년 96세의 나이로 그가 타계하자 오페라 애호가들은 그의 죽음과 함께 ‘전통적인 오페라 연출’은 이제 끝났다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프랑코 제피렐리 감독(출처 IMDB)
이렇듯 그의 삶은 화려하나 인생이 그저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그는 1923년, 패션 디자이너인 어머니와 실크 딜러인 아버지의 불륜으로 피렌체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피렌체 인근 산골 마을인 빈치에서 사생아로 태어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출생과 크게 다르지 않다. 제피렐리는 불행한 가정사 덕에 부모의 성을 이어받을 수 없었다. 사생아들은 아버지의 성을 따를 수 없었던 당시 이탈리아에서는 대신 태어난 연도별로 알파벳 첫 글자를 따서 성을 짓도록 했다. 그가 태어난 1923년이 ‘Z’에 해당하는 해였다고 한다. 그래서 그의 어머니는 자신이 좋아했던 모차르트의 오페라 ‘이도메네오’에 등장하는 아리아 ‘상냥한 봄바람(Zeffiretti lusinghieri)’에 나오는 제피레티를 성으로 하려고 했으나 출생 등록을 하면서 철자 오타로 그만 제피렐리(Zeffirelli)가 되었다고 한다.
6세가 되던 해에 그는 어머니를 여의고 영국 외국인 공동체의 후원으로 자랐다. 그가 유독 셰익스피어 작품에 대한 애착 컸던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2014년 그는 영국 예술에 대한 공로를 인정받아 대영제국 기사 작위를 받았다). 아버지의 뜻대로 미술과 건축을 전공하던 그는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레지스탕스로 활동하기도 했고 영국 근위기갑사단의 통역사로 복무하기도 했다. 당시 파시스트에게 체포되어 총살 위기에 몰리기도 하였으나 다행히 그를 심문한 사람이 배다른 형이었던 덕에 풀려났다.
전쟁 후 그는 학업을 계속하려 하였으나 로렌스 올리비에의 ‘헨리 5세’를 보고는 연극으로 관심을 돌렸다고 한다. 배우로 활동하면서 피렌체의 한 극장에서 무대 세트 디자인을 하다 그의 평생 멘토가 된 (이탈리아 감독) 루키스 비스콘티를 만나면서 그의 인생은 전환점을 맞았다. 1950~60년대 초반까지는 주로 연극과 오페라에 전념하면서 무대와 의상디자인까지 직접 했지만, 점차 영화로까지 영역을 확대했다.
(영화 감독으로도 명성을 떨쳤지만) 그의 연출력은 오페라에서 특히 빛을 발했다. 모든 장면 프레임 구성의 아름다움은 관객들에게 놀라운 시각적 경험을 선사한다.
특히 전통에 현대적인 해석을 더해 웅장하게 규모를 확장시킨 무대는 그만의 독특한 개성으로 완전히 차별화된다. 그의 손길이 닿은 무대 세트와 의상은 오페라 계에선 최고의 작품으로 손꼽히며 아직도 세계 곳곳에서 무대에 올려지고 있다. 오는 10월 12~19일 한국에서 최초로 ‘아레나 디 베로나’ 오리지널 프로덕션이자 프랑코 제피렐리 연출 버전 ‘투란도트’가 공연될 예정이다.
이소영 솔오페라단 단장(산마리노공화국 명예영사)
2024 아레나 디 베로나 '투란도트' 보도스틸(솔오페라단 제공)
jashin@fnnews.com 신진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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