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성북구의 한 식자재마트 앞에 과일이 진열돼 있다. 사진=이정화 기자
[파이낸셜뉴스] "오늘만 바나나 1송이 1500원".
지난 9일 오후 6시께 서울 성북구의 한 식자재 마트. 그리 넓지 않은 매장에 저녁 장을 보러 온 사람들로 북적였다. 1인 가구인 최모씨(34)도 가끔 이곳에서 채소와 과일을 산다. 집 앞 기업형슈퍼마켓(SSM)보다 거리가 멀지만, 채소와 과일을 훨씬 더 저렴하게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집 근처 대형마트와 이커머스, SSM과 동네마트까지 번갈아 가며 4~5곳에서 장을 본다는 최씨는 "식자재마트에서 파는 채소와 과일이 이렇게 싼지 몰랐다"며 "할인쿠폰이 나올 때는 온라인이나 집 근처 슈퍼마켓에서 구매하고, 할인행사를 할 땐 집에서 제일 가까운 대형마트를 찾아갔는데, 신선식품은 훨씬 더 저렴한 식자재마트에서 사고 있다"고 말했다.
더 큰 혜택을 찾아 이곳저곳에서 장을 보는 '장보기 노마드족'이 늘고 있다. 고물가 속 필수먹거리 가격 오름세가 좀처럼 꺾일 줄 모르면서, 소비자들의 발길을 붙들기 위한 유통업계의 경쟁 격화로 소비자 혜택도 그만큼 커진 덕이다. 특히 필수 장바구니 품목인 신선식품을 중심으로 온오프라인을 막론하고 혜택을 찾아 쇼핑하는 경향도 뚜렷해지고 있다.
이날 찾은 식자재마트에서는 오이 5개 한 묶음이 4000원, 한 봉지 가득 든 로메인 상추가 2000원, 천도복숭아 12개가 5000원에 판매되고 있었다. 마트에서 제공하는 플라스틱 바구니에 가득 제철과일인 복숭아와 자두, 참외 등 과일만 담은 고객들도 눈에 띄었다. 과일을 구매하기 위해 자주 이곳을 찾는다는 서모씨(42)는 "보통 주말에 시간을 내 대형마트에 많이 가는데, 최근에 과일값이 저렴해지면서 과일은 이곳에서 따로 많이 산다"고 말했다.
약간의 번거로움을 감수하더라도 혜택을 좇기 위해 여러 군데서 장을 보는 건 계속되는 고물가 상황 속 먹거리 지출 부담이 갈수록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통계청 가계동향조사 마이크로데이터에 따르면 지난 1·4분기 3인 이상 가구 지출은 573만8177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568만8610원)과 비교해 0.87% 늘었다. 이 중에서도 특히 먹거리 관련 지출 증가 폭이 컸다. 가계지출 가운데 식료품·비주류 음료 구입비와 외식 식대는 같은 기간 월평균 112만7834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06만8510원 대비) 대비 5.5% 증가했다.
신선식품 선점을 위한 경쟁이 치열해지며 소비자 선택권이 넓어진 것도 '장보기 노마드족'을 만드는 데 한몫했다. 이마트와 롯데마트, 홈플러스 등 대형마트들은 이커머스와 차별화할 수 있는 경쟁력으로 신선식품 강화를 꼽고 이 비중을 확 늘린 그로서리 중심 매장을 선보이고 있다.
편의점업계도 1~2인 가구를 위한 소포장 채소 등 신선식품 강화에 나서며 경쟁에 뛰어들었다. 각종 쿠폰 등 할인혜택을 끌어모아 작은 양의 신선식품은 편의점에서 사는 2030세대가 늘면서, 최근 3년간 GS25·CU·세븐일레븐·이마트24의 신선식품 매출 신장률은 두 자릿수를 이어가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업태로 보면 여전히 대형마트, 슈퍼마켓이 신선식품 강자지만 편의점과 온라인몰도 1~2인 가구 비중이 늘며 성장 중"이라며 "장을 볼 때 가격 뿐만 아니라 이동 시간, 이동에 필요한 노력, 비용 등도 중요한 고려사항이 되는 등 트렌드가 변화하면서 신선식품 시장 선점을 위한 업계 경쟁도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clean@fnnews.com 이정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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