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시장연구원 보고서
민간부문에 대한 구축효과 만들어...회사채 위축
“시장 저해하지 않는 수준에서 발행되도록 해야”
서울 중구 한국전력공사 서울본부 / 사진=뉴스1
[파이낸셜뉴스] 2022년부터 2년여 간은 국내 회사채에 있어 암흑기였다. 이 시기를 이끈 선두주자 중 하나가 한국전력채를 비롯한 특수채였다. 일반 크레딧물과 달리 발행사 재무 여건에 크게 영향 받지 않으면서 신용등급은 높게 찍어낼 수 있어 시장 수요를 대거 잡아먹기 때문이다.
이에 공공기관들이 간편히 자금을 조달하는 수단으로 쓰이지만, 민간부문에 미치는 부정적 효과가 있는 만큼 발행과정을 일부 통제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27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정화영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지난 24일 낸 보고서에서 “특수채 발행 확대가 민간부문 채권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고려할 때 실효적이고 체계적인 관리가 필요하다”며 “시장 상황을 저해하지 않는 수준에서 발행되도록 관리하는 가운데 관련 제도 개선을 검토할 필요도 있다”고 주장했다.
특수채는 자본시장법상 법률에 의해 직접 설립된 법인이 발행한 채권을 뜻한다. 이 정의대로라면 통화안정증권(통안채)이나 특수은행채도 이 범주에 들어가지만, 시장에선 일반적으로 이들은 제외한 채 공공기관 이름을 달고 나온 채권들로 인식된다.
자본연에 따르면 지난 2022년 말 기준 특수채 발행잔액은 409조1000억원으로 집계됐다. 이 수치는 2023년 455조7000억원으로 대폭 늘었다가 올해 4월 기준으로 458조9000억원을 가리키고 있다.
이 기간 공사·공단채 잔액도 240조원→ 267조7000억원→ 269조7000억원으로 늘었고, 영업적자를 메꾸기 위해 발행된 한전채 잔액은 61조2000억원→ 67조7000억원→ 64조7000억원으로 변화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2021년 103조9703억원이었던 회사채 발행액은 그 이듬해인 2022년 76조7492억원으로 26.2% 깎였다.
이처럼 대거 발행된 수 있는 배경엔 특수채의 ‘특수성’이 있다. 발행사 재무 여건에 유의한 영향을 받지 않으며 매우 높은 신용등급으로 발행되기 때문이다. 실제 지난 4월 기준 특수채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공사·공단채(무보증·선순위) 잔액 258조4000억원어치는 전부 최고 등급인 ‘AAA’를 받은 상태다. 여신전문금융채(여전채)나 일반회사채는 그 비율이 각각 0.1%, 25.6%에 불과하다.
정 연구위원은 “민간기업이 무보증사채를 공모 발행할 땐 대표주관사 선정, 증권신고서 제출, 수요예측 실시 등 절차를 거쳐야 한다”며 “하지만 특수채는 자본시장법 시행령에서 증권신고서 제출 의무를 면제하고 있어 수요예측을 실시하거나 일괄신고서를 낼 필요가 없다”고 짚었다.
하지만 이 같은 고신용채가 시장에 제한 없이 풀리면 여타 중·저신용 채권 수요를 흡수해 위축시키는 ‘구축효과’가 발휘될 우려가 있다.
또 한전채 등 발행 물량이 확대돼 수급 여건이 악화됨으로써 고금리가 찍혀 나온다면 그 같은 경향은 더욱 심화된다.
정 연구위원은 “정부의 암묵적 지급보증 효과가 존재하는 한전채 수익률이 빠르게 상승하면 신용등급이 열위에 있는 민간 채권에 대한 수요를 위축시키는 요인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2022년 당시 민간 채권 발행여건 악화는 기준금리 인상, 신용위헌 확대 등 갖은 요인이 복합 작용한 결과이긴 하지만 기관들의 한전채 순매수 규모가 매우 컸던 만큼 그 발행이 커지지 않았으면 해당 수요가 민간 채권 매수로 이어졌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taeil0808@fnnews.com 김태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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