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텔 비전 2024에서 팻 겔싱어 인텔 CEO가 인텔 가우디 3 가속기를 소개하고 있다. 인텔 제공
[파이낸셜뉴스] 고대역폭메모리(HBM) 수요 확대에 반도체 업계가 앞다퉈 생산능력(캐파) 확충에 나서며 공급 과잉 우려가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고 있다. 현재 HBM이 대거 탑재되는 AI 가속기 투자 확대, 높은 HBM 양산 난이도에 따른 생산 한계 등을 고려할 때 최소 내년까지는 수요 부족이 지속될 것이라는 게 업계의 대체적 시각이다. 다만, AI 부문 투자 규모에 비해 매출 상승세가 더딘 상황에서 빅테크 업체들이 투자 속도 조절에 나설 경우 HBM 경쟁 심화에 따른 공급 과잉이 현실화될 수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2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올 하반기부터 현재 시장 주력인 HBM3(HBM 4세대) 다음 세대인 HBM3E(HBM 5세대) 제품 생산능력 확대에 주력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올해 고객사와 협의가 완료된 HBM 물량을 전년 대비 4배 가량 키운다. 또 업계 선도 캐파를 목표로 내년 생산능력은 올해보다 2배 늘린다. HBM 시장 '큰 손'인 세계 최대 그래픽처리장치(GPU) 엔비디아에 HBM3 공급에 성공한 가운데 올 3·4분기 HBM3E의 8단 양산에 이어 4·4분기 HBM3E 12단 공급을 선제적으로 대비하고 있다.
SK하이닉스도 내년 HBM 출하량을 올해 대비 2배 이상 늘릴 계획이다. 올해 SK하이닉스는 지난해보다 2배 이상 늘어난 실리콘관통전극(TSV) 생산능력과 D램 10나노 5세대(1b) 전환 등을 기반으로 HBM 출하량을 확대하고 있다. 충북 청주 'M15X'팹(공장),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첫 번째 팹 등을 지어 HBM 생산거점으로 육성한다는 구상이다.
메모리 업계의 HBM 생산능력 확대 경쟁은 빅테크 기업들의 AI 투자 확대에 기반한다. 당분간 AI 시장 투자 열기가 꺾이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HBM 출하 확대를 통한 시장 영향력을 키우겠다는 게 메모리 업계의 포석이다. 업계는 공급 과잉 우려에는 선을 긋고 있다. 시장 수요 상황 뿐 아니라 일반 D램보다 다이사이즈가 2배 크고, 수율(양품 비율)이 낮아 생산에 제약이 큰 HBM 특성, 고객사 주문에 맞춰 생산하는 선주문 방식 등을 종합적으로 감안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만, 시장 기대보다 AI 투자 속도가 더딜 경우 현 공급자 우위 시장 판도가 뒤바뀔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미국 벤처캐피탈 기업 세쿼이아가 추산한 AI 부문 총 투자 금액은 6000억달러(약 819조4200억원)인 반면 관련 매출은 40억달러(약 5조4600억원)에 그치고 있다.
올해 HBM 생산 계획이 시장 수요를 넘어섰다는 분석도 나온다. 하이투자증권에 따르면 올해 HBM 최대 수요량은 8억8000만기가바이트(GB)인데, 삼성전자·SK하이닉스·마이크론 등 HBM 3사의 생산 계획은 총 13억8000만GB로, 이를 넘어선다.
하이투자증권 송명섭 연구원은 "현재 초기 AI 투자기에 경쟁적으로 가속기 반도체를 확보 중인 미국, 중국 빅테크 업체들이 비용 증가, AI 매출 저조, 재고 증가, 경기 둔화 등의 이유로 내년부터 투자 강도를 완화한다면 HBM 수요도 현재 시장의 높은 기대치를 하회할 수 있다"고 했다.
mkchang@fnnews.com 장민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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