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국 해당기업과 비교
책임소재는 명확히 하고
3년에 한번 존치평가를
안종범 정책평가연구원장
공기업 하면 '신이 내린 직장'으로 선망의 대상이기도 하지만, 방만함과 비효율의 대명사로 인식되면서 공격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오랫동안 공기업이 평가와 감사의 대상이 되어 온 것도 이 때문이다. 공기업은 매년 경영평가 결과를 기초로 직원의 연봉이 정해지고, 국정감사 때마다 각종 비리 캐기에 혈안이 된 국회의원과 언론의 표적이 된다. 문제는 이렇게 엄정한 공기업 평가와 국정감사로도 공기업이 나아지지 못했다는 데 있다. 1984년 공기업 평가가 시작된 이래 2007년 제정된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공운법)을 통해 경영평가를 체계적으로 수행할 법적 근거까지 갖게 되었지만, 여전히 공기업은 문제투성이로 비친다.
공기업은 넓은 의미에서 공공기관이다. 공공기관(327개)은 정부의 투자·출자 또는 정부의 재정지원 등으로 설립·운영되는 기관으로 공기업(32개), 준정부기관(55개), 기타 공공기관(240개)으로 분류된다. 영국 셰필드대학 플라인더스 교수는 공공기관은 스스로 몸집을 불리는 속성을 갖고 있어서 정부 규모를 작게 보이게 하고 나아가 정부에 요구되는 여러 절차를 피할 수 있다고 했다. 공공기관의 범위, 규모, 인력 그리고 예산이 큰 우리의 경우 반드시 새겨들어야 하는 주장이다. 특히 공공기관의 방만함은 궁극적으로 재정부담으로 돌아오기에 제대로 평가하고 바로잡아야 하는 것이 시급한 과제이다.
지난 40년 동안 해온 경영평가가 이런 방만함을 제대로 바로잡을 수 없다면 이제 다시 시작해야 한다. 첫째, 공기업 평가방법을 근본적으로 바꾸어야 한다. 기업 목표와 구조가 서로 다른 공기업들을 아무리 객관적인 잣대로 평가해도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유사한 유형끼리 묶어서 사회간접자본(SOC), 에너지, 산업진흥·서비스 등 그룹으로 나누어 평가한다 해도 그룹 내 기관들 역시 서로 비교하기에는 적절하지 않다. SOC 그룹에 속해 있는 도로공사와 토지주택공사 경우만 봐도 비교 평가하기에 업무가 너무 다르다. 비교 대상은 이처럼 성격이 서로 다른 자국 공기업이 아니라 주요 국가들의 해당 기업이어야 한다. 외국의 해당 기업이 공기업이든 민간기업이든 경영 효율이나 임금 대비 생산성 면에서 우리와 얼마나 차이가 나는가를 비교할 때 비로소 우리 공기업의 현주소를 정확히 파악하게 되는 것이다. 나아가 공공기관 평가 체제를 단순화해야 한다. 그동안 경영평가, 해당 부처 감사, 감사원 감사, 국정감사 등 1년 내내 지속되는 평가로 시달리고 또 내성이 생겨 실효성이 더 떨어져 버린 지금의 상황을 바로잡아야 한다. 평가와 감사의 중복성을 줄여 선택과 집중이 이뤄지고 그 결과에 대해서는 철저한 개선이 이루어지도록 하자는 것이다.
둘째, 공기업의 책임소재를 명확히 해야 한다. 정부정책을 따르다 생긴 적자와 스스로 만든 부실을 구분해서, 공기업이 핑계대지 못하게 하고 나아가 억울하게도 만들지 말아야 한다. 공운법 제50조에 근거한 공공기관 구분회계 운영지침에는 고유사업, 정책사업, 대행 및 위탁사업으로 사업을 구분하여 재무정보를 산출·관리하도록 하고 있다. 이 구분회계를 철저히 경영평가에 반영해야 한다. 정부가 억제한 전기와 가스 요금으로 생긴 적자를 정부 책임으로 명시해서 해당 공기업은 경영평가에 불리하지 않게 하고, 정부는 정책책임을 전가하지 못하게 해야 하는 것이다.
셋째, 기금 존치평가와 같이 공기업에 대해서도 3년에 한 번씩 존치평가를 해야 한다. 현재 공기업들이 과연 공적으로 운영되는 것이 타당한지 그리고 중복은 없는지를 원점에서 재점검해 통폐합 혹은 민영화 등을 통해 바로잡자는 것이다.
이러한 존치평가를 통한 구조조정으로 상당 규모 자금을 확보할 수 있다. 통폐합을 통한 운영비 절감이나 민영화를 통한 자산매각 등으로 확보되는 자금은 복지재원으로 활용하거나 국가채무 상환에 투입할 수도 있을 것이다. 40년 묵은 평가를 확 바꾸어 공기업이 '신이 외면한 직장'이 되면서 민간기업과 같은 경쟁력을 갖추도록 해야 할 때이다.
안종범 정책평가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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