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력·고학력 인증 기반 '하이엔드 소개팅 앱'
물질만능주의·쾌락성 논란에도 가입자 '수십만'
"연애하는 방식의 변화…이용자들 번아웃 느껴"
넘쳐나는 뉴스, 딱
'쓸만한 이슈'만 씁니다. 정치·경제·사회·문화 다양한 이슈를 새로운 시선에서 뾰족하게, 삐딱하게 탐구합니다. <편집자 주>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매력있는 '오늘의 남성'을 만나보세요! 서류를 통해 전문직·고소득(연봉 1억원 이상)·고액자산(20억원 이상)이 인증된 회원입니다"
매일 오후 12시, 그리고 저녁 7시쯤 남성 회원 프로필 카드가 도착합니다. 김주리 회원(기자 본인)의 나이에 꼭 맞게, 위아래로 4살차가 대부분이고요, 훤칠한 키에 수려한 외모까지 갖춘 남성 회원들을 보고 있자니 김주리 회원의 마음이 설레기 시작합니다.
“결혼 전제의 진지한 만남을 찾고 있다”는 애달픈 자기소개는 둘째치고,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사진 아래에 있는 '인증 배지'입니다. 명문대를 나왔는지, 2억원 이상의 '슈퍼카'를 소유했는지, 직계 가족 자산이 100억원 이상인 '상류층 집안'인지, 서류로 인증해야만 받을 수 있는 '인증 배지' 말입니다.
이제 만날 준비 되셨나요, 오늘의 '쓸만한 이슈'는
'고품격 하이엔드 소
개팅' 데이팅 앱입니다.
"김주리 회원님, 어제 매칭돼서 오늘 만났네요"
학력과 경제력 인증을 기반으로 한 데이팅 앱의 사용법은 대체로 유사합니다. 하루에 일정 횟수, 일정 인원의 이성 프로필 카드를 제공 받고 마음에 드는 이성이 있다면 아이템을 구매해 '호감 표시'를 보냅니다. 상대편도 마음에 든다면 마찬가지로 호감을 보내 '매칭' 하면 됩니다.
가입 전 본인 명의 휴대폰 인증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실제 만남에서 엉뚱한 사람이 등장할 일은 많지 않습니다. 대포폰 사용자 혹는 과도하게 보정된 사진을 올려 실물과 외모가 딴 판인 사람이 나올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지만요. 실제 앱들은 '허위 프로필', '사칭'이 적발된 회원을 영구탈퇴시키는 등 안전에 꽤 공을 들이고 있는 것도 확인됐습니다.
뒤에 나올 단점들을 제외하면, 이성을 만나는 데 확실히
편리합니다.
주선자을 통해 만날 때마다 '어떤 사람이냐', '무슨 일을 하느냐' 등 눈치 보며 질문하지 않아도 상대편에 대한 정보를 직접 확인할 수 있고
공식 서류를 통해 인증된 배지들로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추론까지 할 수 있으니까요.
실제 결혼까지 이어진 경우 앱을 통해 후기와 결혼식 사진이 공개되니, 수백만원에 달하는 결혼정보회사 가입비를 생각해보면 가성비도 나쁘지 않아 보이네요.
그런데 말입니다…
"김주리 회원님, 배지가 많이 없으시네요…"
/사진=게티이미지뱅크
하이엔드(High end) 소개팅을 표방하는 데이팅 앱들에는 사실 불편한 진실들이 곳곳에 숨어 있습니다.
'아무나 가입되지 않는 프리미엄 소개팅을 추구한다'는 이들 앱은 남성과 여성의 가입조건부터 상이한데요.
60만명에 육박하는 가입자를 보유하고 있는 A앱의
남성 가입조건은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전국 의치·한의대 등에 재학·졸업한 남성(하한선 '서성한') △대기업·국가기관·주요언론사 등에 재직 중인 남성 △전문직(의사, 변호사, 회계사, 변리사 등)으로 매우 까다롭습니다.
반면 여성의 가입조건은 △프로필을 입력한 직장인 또는 프리랜서, 취준생 등 △학교나 전공 입력 후 가입이 승인된 모든 대학생·대학원생입니다.
기본적인 설정이 이렇다 보니 앱을 통한 만남이 변질되고 있다는 목소리도 나옵니다. '있는 사람들끼리'의 품격 있는 데이트를 주선한다는 앱의 본질과 다르게 이른바 '스펙' 부족한 여성들이 돈 많고 능력 있는 남성들과의
'취집(취직 대신 시집)'을 노리고 앱을 사용한다는 지적과, 재력에 비해 외적 조건이 부족한 남성들이 나이 어린 여성들을
성적인 착취 대상으로 소모하기 위해 만남을 이용하는 현상이 나타난다는 것이지요.
결혼 관련 후기 게재를 통해 진정성 있는 만남을 자부하는 앱인 만큼, 논란은 해당 앱들이
물질만능주의를 넘어 매매혼까지 조장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습니다. 앱 커뮤니티에는 "남자들이 결혼할 여성과 '먹고 버릴(성관계만 취한 후 관계를 단절할)' 여성을 구분해서 만난다"는 만남 후기가 하루가 멀다 하게 올라오고 있었습니다.
틴더, 범블 등 기존 데이팅 앱에서 문제로 제기됐던
쾌락성 만남에 대한 지적에서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주선자도 없겠다 책임감을 느낄 명분도 딱히 없다 보니 잠자리 이후 '잠수'를 타버리는 경우도 흔했고요.
잠자리를 갖지 않는다고 해도 하루에 2명 이상, 한 주에 5명 이상의 이성을 만나는 사례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실제 기자가 만난 한 여성 이용자는 "이번 주 일요일 3명의 이성과 만남이 예정돼 있다"며 "각각 브런치와 커피, 저녁식사를 함께 할 생각이다, 물론 상대방은 모른다"라고 전했습니다.
이처럼 연속된 단발적 만남으로 여러 차례 '번아웃'을 경험했다는 이용자도 다수였습니다.
“김주리 회원님, 정말 탈퇴하시겠습니까?”
데이팅 앱에 대한 이야기를 그린 영화 '연애 빠진 로맨스' 속 한 장면/사진=네이버 영화
물론 이런 형태의 인간관계가 그릇됐다며 꼰대같은 주장을 펼칠 생각은 없습니다. 스마트폰의 일상 보급,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며 도래한 비대면시대 등에 따라
연애하고 사랑하는 방식 또한 변화한 것 뿐이니까요.
하지만, 넘쳐나는 가벼운 만남과 보험성 관계들,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애매한 관계에 대한 소감을 듣다 보니 생각이 많아지기는 합니다.
이들 모두는 가벼웠을까요? 아니면 진지했을까요?
꿈에 그리던 이성을 만나길 희망하며, 만남도 헤어짐도 쉽고, 간편하고, 신속한 관계를 만들어주는 '고품격 하이엔드 소개팅'. 특별할 것 없는 게 인생이고 사랑이라고는 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씁쓸해지는 건 어쩔 수가 없네요.
rainbow@fnnews.com 김주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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