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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낸셜뉴스] “10.26이나 12.12 그 사건 자체를 다루기보다 그 시대가 얼마나 야만적이었는지 보여주고 싶었죠.” 천만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의 추창민 감독이 다시 한 번 실존 사건·인물에 영화적 상상을 더한 팩션 시대극을 내놓았다. 영화 ‘파일럿’으로 극장가를 강타 중인 조정석과 고(故) 이선균 그리고 유재명의 새로운 얼굴을 볼 수 있는 영화 ‘행복의 나라’다.
■ 10.26사건과 12.12 군사반란 사이
‘행복의 나라’는 1979년 10월 26일 대통령 암살 사건과 영화 ‘서울의 봄’이 극적으로 다룬 12·12사태, 그 사이에 진행됐던 군사 재판을 소재로 한다. 영화에는 실존 인물을 모델로 한 두 주역이 등장한다. 대통령을 암살한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의 수행비서관 박흥주 육군 대령을 모델로 한 박태주(이선균 분)와 전두환을 모델로 한 전상두(유재명 분) 10·26사건 합동수사본부장 겸 국군보안사령관이다.
행복의 나라'는 승소를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안 가리는 젊은 변호사 정인후(조정석 분)가 10·26 사건에 연루돼 재판에 넘겨진 중앙정보부장 수행비서관 박태주의 변호를 맡으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상명하복’ 군인정신을 고수하는 원칙주의자 박태주와 불의에 분노하는 뜨거운 심장을 가졌지만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선 무릎도 꿇을 줄 아는 변호사 정인후 그리고 권력의 야욕을 가진 전상두를 통해 그 시대 풍경과 각기 다른 삶의 태도로 격동의 시기를 관통한 사람들을 포착한다. 조정석이 연기한 가상의 인물 정인후는 박태주와 전상두 사이에서 관객을 시대의 풍경 속으로 이끄는 주역이다.
애초 박흥주가 중심인 시나리오를 세 인물의 삼각구도로 달리 각색한 추창민 감독은 “당시 권력층의 야만성을 대변하는 인물이 전상두라면 박태주는 어느 시대에나 존재하는 희생자다. 정인후는 시민정신을 상징하는 인물”이라고 비교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의 전신이 인권 변호사다. 민주화운동을 한 아버지를 돕고 싶으면서도 출세욕도 있는 정인후는 완성된 캐릭터보다는 성장하는 인물로 세상의 흐름에 맞춰 살면서도 사건을 겪으면서 자각하고 때로는 항거하면서 한 걸음씩 전진한다”고 부연했다.
12.12 군사반란을 전면에 다룬 ‘서울의 봄’에선 전두광이 영화의 전면에 나서 뜨거운 에너지를 뿜는다면 ‘행복의 나라’에서 전상두는 서늘한 얼굴로 뒤에서 음모를 꾸민다. 추창민 감독은 “권력자의 뒷모습은 뱀처럼 사악하고 간교하길 바랐다”고 말했다. “유재명 배우로선 출연분량이 많지 않은데 다른 작품도 못하게 전상두 캐릭터를 위해 이마를 미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 ‘나를 맘껏 쓰라’고 해줬다”며 “이마의 머리를 조금씩 밀며 적정선을 찾았는데, 너무 희화화가 돼 인물의 사악함이 희석되길 원치 않았다”고 말했다.
반면 대중에게 낯선 박태주 캐릭터는 실존 인물과 닮게 접근했다. 청빈하고 강직한 군인으로 평가받는 박흥주 대령은 김재규 등과 함께 내란목적살인 등의 혐의로 사형 선고를 받고 이듬해 봄 처형됐다. 추창민 감독은 “자료상으론 매우 멋진 분이셨다”며 “권력의 요직에 있으면서도 전세 400만원에 슬라브 집에 살다가 겨우 40살에 돌아가셨는데 이 사람에 대한 평가를 떠나 그가 어떻게 살았는지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선균 배우가 실존 인물 사진을 보고 좋아했다. 유사하게 분장을 하면서 연기 톤을 잡았고, 슬픔도 기쁨도 덤덤하게 표현했다. 그동안 대중이 못 본 이선균의 새로운 모습을 멋지게 해냈다”며 만족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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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뉴시스/NEWSIS) /사진=뉴시스
■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된다..‘잘 있게’ 마지막 인사”
‘행복의 나라’는 ‘서울의 봄’보다는 굳이 따지면 ‘변호인’과 닮았다. 추창민 감독 역시 ‘서울의 봄’과의 유사성을 부인하며 "‘서울의 봄’ 개봉 전 편집이 모두 끝난 상황이라 영향을 받거나 편집이 달라지지 않았다"며 “역사의 또 다른 줄기에 초점을 맞춰보면 새로운 재미를 느낄 것”이라고 말했다.
가장 공들인 장면은 군사 재판 장면이다. 그는 “극장 개봉이 아니라면 법정 장면을 그 넓은 공간에서 찍을 필요가 없었을 것”이라며 이 영화를 대형 스크린에서 봐야 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그 시대 군사 법정을 본 적이 없다. 후일 교재 자료로 쓰이길 바라는 마음으로 최대한 고증에 맞게, 역사의 기록과 같이 구현했다”고 말했다.
전상두와 정인후가 부딪히는 후반부 골프 장면에 대해선 “감독의 판타지가 투영된 장면”이라고 답했다.
“혹자는 다큐멘터리처럼 가다가 왜 판타지가 되냐고 했는데 저는 그 판타지가 좋았다”며 “일개 변호사가 독재자를 찾아가 일갈한다는 게 말이 안 되지만,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댄다는 것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왜 골프장이냐고 묻던데 전두환이 권력을 가진 뒤로 미군 골프장서 많이 쳤다고 하더라. 출입이 금지된 그곳에서 자신의 욕망을 거침없이 드러내고, (우리와 같은 평범한) 시민은 그런 그에게 저항하고 한발씩 나아가길 바랐다”고 말했다.
이선균의 유작인데 편집과정에서 신경 쓴 부분이 있을까? 추창민 감독은 “영화의 엔딩에 ‘잘 있게’라는 대사가 있는데, 이 대사를 넣는 게 맞나 고민했다”고 돌이켰다. “의도적으로 보일까봐 고민하다가 결국 소리를 줄어달라고 부탁했죠. 그런데 시사회를 보면서 그냥 원래대로 크게 할 걸 싶더라고요. (이선균은) 개구쟁이 같은 사람이죠. 촬영 끝나면 윷놀이를 하자고 해서 함께 했는데, 제겐 과정이 특히나 좋았던 영화입니다.”
jashin@fnnews.com 신진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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