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자 누가 더 모으느냐
기술과 혁신보다 자본력
돈놓고 돈먹는 머니게임
임채운 서강대 경영학과 명예교수·前 중소기업진흥공단 이사장
티몬과 위메프의 정산금 미지급 사태는 혁신성장이라는 미명 아래 가려져 있던 플랫폼의 실체를 적나라하게 드러내 보여주었다. 이커머스 중개플랫폼은 판매자와 소비자를 연결시켜 주고 중간에서 소비자로부터 대금을 받아 판매자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그런데 이번에 티몬과 위메프가 소비자로부터 받은 결제대금을 판매자에게 정산해 주지 못하면서 사건이 터진 것이다.
두 회사의 미정산 대금은 지난 1일 기준 2700억원으로 집계되었다. 통상적 정산주기가 두 달이니 이 금액은 5월 판매분에 해당한다. 곧이어 다가올 6~7월 판매분을 합하면 미정산 대금은 총 1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사건의 발단은 이 돈이 없다는 것에서 시작됐다. 판매대금을 정산 기간 보관하는 책임을 가진 플랫폼이 그 돈을 어디에 유용했을까는 따져볼 일이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티몬과 위메프는 오랫동안 이익을 내지 못해 적자로 운영되었고, 정산대금은 그 적자를 메우는 데 사용되었다는 것이다.
기업이 이익을 내지 못하면 남의 돈을 써야 한다. 대출을 받거나 투자를 받아야 한다. 외부자금 유입이 없으면 고객 돈이라도 돌려야 한다. 이익을 내지 못하면서 사업을 무리하게 확장하다 부실화된 사례는 부지기수로 많다.
적자기업이 성장을 추구하며 몸집을 부풀릴 때 부실이 확대되어 시스템을 위협하는 사태는 고전적 문제이다. 과거 외환위기(IMF체제)는 은행의 대출금을 이용해 사업을 확장한 대기업들이 부채를 감당하지 못하며 은행들도 연쇄 부실화되었기 때문에 발생했다.
돈 못 벌면 망한다는 단순하고 명쾌한 논리가 흥미롭게도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등장한 플랫폼에는 통용되지 않았다. 온라인 가상공간에서 무형자산을 이용해 다면적 네트워크의 중심 고리 역할을 담당하는 플랫폼의 가치는 현재의 수익보다 미래의 성장성을 중심으로 평가되었다. 가상공간에서는 빠른 속도로 규모를 확장하는 것이 가능하며 ,'한계수확체증의 법칙'이 적용돼 규모가 커질수록 더 높은 수익성을 올릴 수 있다고 알려졌다.
규모의 절대적 우위는 네트워크 효과와 빅데이터의 가치에서 나온다. 많은 사람이 사용할수록 보편적 효용이 커지고 거기서 얻어지는 빅데이터의 가치는 기하급수적으로 상승한다. 회원이 100만명인 플랫폼과 200만명인 플랫폼의 가치는 2배 이상 차이가 난다.
이에 따라 플랫폼의 가치를 평가하는 잣대로 월간활성이용자수(MAU)가 사용된다. 국내 3대 모바일 앱의 MAU는 6월 기준으로 유튜브 4625만명, 카카오톡 4543만명, 네이버 4337만명에 이른다. 이커머스 1위인 쿠팡의 MAU는 3092만명이며, 미정산 사태를 유발한 티몬과 위메프의 MAU도 각각 830만명, 770만명 수준이다.
누가 더 많은 이용자를 모으느냐의 게임은 기술과 혁신보다 자본과 마케팅에 달려 있다. 초기에 막대한 투자를 받아 대대적 광고와 판촉으로 고객을 모으고 저가격과 할인쿠폰을 이용해 고객 수를 확대하며, 이렇게 확보한 고객기반을 바탕으로 높은 기업가치를 평가받아 더 많은 투자금을 끌어들여 다시 고객을 모으는 데 투입하는 것이다.
끊임없이 투자를 받아 자본을 수혈해 적자를 보더라도 이용자 수를 늘리는 데 전력투구한다. 현금을 불사르듯이 한없이 돈을 부으니 오죽하면 캐시버닝(cash burning)이라고 부르겠는가. 궁극적인 목표는 상장하여 자본시장에 진입, 투자를 회수하고 새로운 자금을 공급받는 것이다. 쿠팡도 오랜 기간 적자를 감내했지만 2021년 뉴욕증시에 상장하여 자본조달에 성공했다.
그러니 플랫폼 성장 원동력의 원천이 명분상으로는 기술혁신이라 하지만 실제로는 자본의 힘이다.
결국 플랫폼의 본질은 '돈 놓고 돈 먹는' 머니게임에 있다. 계속 돈이 들어오다 한번 막히면 그대로 판이 엎어진다. 이게 딱 티몬과 위메프가 처한 꼴이다.
임채운 서강대 경영학과 명예교수·前 중소기업진흥공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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