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전문변호사 : 법무법인 법승 양원준 파트너 변호사
양원준 법승 파트너 변호사
[파이낸셜뉴스] 1961년 예일대학교 심리학과 조교수였던 스탠리 밀그램은 ‘권위’가 사람들에게 어느 정도의 영향을 주는지 알아보기 위해 실험을 하였다. 밀그램은 실험 참가자로 20대에서 50대의 남성들을 모집하였고, 선생 역할의 참가자가 학생 역할의 참가자에게 문제를 내고 틀리면 전기 충격을 가하도록 하였다. 다만, 학생 역할의 참가자는 사실은 스탠리가 섭외한 배우였고, 전기 충격 장치는 가짜였다. 밀그램은 선생 역할의 참가자들이 전압을 높여가는 과정에서 어떤 태도를 취하는지 관찰하고자 하였는데, 실험설계 당시 밀그램은 0.1% 정도의 사람만이 최대 전력인 450V까지 전압을 올릴 것이라 예상하였다.
그러나 충격적이게도 65%의 피실험자들이 450V까지 전압을 올렸다. 즉, 65%의 사람들이 상대를 죽일수도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압을 최대까지 올린 것이다. 실험과정에서 선생 역할의 참가자들은 연기자의 비명소리에 '이제 그만해야될 것 같다‘고 하기도 했지만, 감독관은 '괜찮다, 내가 책임진다, 진행하라'며 전기 충격을 가할 것을 요구하였다. 이 실험은 이성적인 사람이라도 권위에 의하여 언제든지 복종할 수 있으며, 도덕적 판단이 사회적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고, 인간의 본성은 권위에 순응하는 성질을 지녔음을 시사한다.
필자는 형사 변호사로 보이스피싱 사건의 피고인 변호를 여러 차례 맡아왔다. 특히, 피해자들로부터 현금을 전달받아 보이스피싱 조직에게 건네주는 이른바 ‘현금 수거책’역할을 하는 사람들의 변호를 많이 맡았으며, 피고인들의 무죄 주장을 여러 차례 해왔었다.
피고인 신분으로 수사 및 재판을 받게 된 의뢰인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위 스탠리 밀그램의 ‘권위에 의한 복종 실험’이 계속 생각났다. 많은 의뢰인들이 현금 수거책 일을 하는 과정에서 막연히 정상적인 일이 아님을 의심하는 순간이 있었으며 이를 ‘팀장’ 등 이라고 불리는 ‘상급자’에게 ‘불법’적인 일은 아닌지 물어왔다는 것이다. 그럴 때마다 위 팀장들은 ‘괜찮다’, ‘정상적인 일이 아니면 내가 계속 하고 있겠느냐’, ‘불법적인 일이 아니니 걱정할 것 없으며 문제가 생기면 내가 책임진다’는 취지의 대답을 하였다고 한다.
대부분의 의뢰인들은 알바몬, 알바천국, 당근 마켓 같은 공인된 구직사이트에서 아르바이트를 구하였다. 그리고, 보이스피싱 조직은 실제처럼 공고문을 올리고, 실존하는 회사의 이름을 쓴다. 의뢰인들 입장에서는 직급이 있고 업무를 지시하는 사람이 있는 ‘정상’적인 ‘회사’의 ‘상급자’가 괜찮다고 까지 하였기 때문에 위와 같은 말을 들으면 더 이상 의심하지 않는다. 안심하기 때문이다.
수원지방법원 안양지원 2024, 6, 13,선고 2023고단1327 판결은 의심하지 않은 대가가 어떤지 여실히 보여준다. 법원은 『피고인은 불법적인 일이라고 인정할 리가 없음이 명백한 일명 김시원 과장에게 메신저로 불법인지 여부만 한 번 물었을 뿐, 경찰서 등 관련기관이나 심지 고려휴먼스‘라는 회사 자체에도 확인된 바가 전혀 없다. 현금 수거시 업무지침이나 현금입금 시 주의사항 등의 내용에 비추어보면 오히려 이는 채권추심이나 마약관련 돈의 전달이 아니라 이른바 보이스피싱 범죄로 의심할 여지가 더욱 크다고 할 것이다』며 피고인의 유죄를 선고하였다.
판결문에는 명확히 나오지 않았지만, 위 사례의 피고인 역시 일을 하는 과정에서 상급자에게 불법인지 물어보았고, 상급자의 ‘괜찮다, 불법이면 내가 계속 하였겠느냐’라는 말에 ‘한번 믿고 가보자’며 의심을 거두었다고 한다. 권위가 주는 힘은 이렇게 단순하지만 무섭다. 인간은 권위자의 ‘괜찮다’는 말에 안심하고 순응하는 본성을 지녔기 때문이다.
현금수거책으로 연루되어 처벌을 받는 많은 피고인들이 위의 사례처럼 상급자의 괜찮다는 말에 의심을 거두거나, 정상적인 일이라고 믿었다고 한다. 그들은 ‘업무를 지시하는 사람이 ‘괜찮다, 정상적인 일이다’라고 하는데, 일개 아르바이트생이고 경험도 얼마 없는 자신이 불법이라고 어떻게 확신을 가질 수 있었느냐’라고 반문한다. 개중에는 분명 불법임을 인식하였음에도 권위자(상급자)의 ‘괜찮다, 내가 책임지겠다.’는 말에 도덕적 흔들림에도 불구하고 일을 계속한 경우도 있어보였던 건 사실이다.
막연히 불법임을 의심할 수 있는 상황에 있었고, 의심하였지만 권위자가 괜찮다고 하였고 이를 믿고 싶어 했던 사람을 ‘보이스피싱 범죄의 공범’으로 처벌하는 것이 최선일까? 우리 법원은 아니라고 말한다. 서울중앙지방법원 2022. 7. 21. 선고 2022고단944 판결은 『사기죄의 공동정범에 있어서 고의는 적어도 미필적으로나마 사기범행에 가담하는 인식과 의욕이 있어야 하는 것이지, 막연히 불법에 대한 인식이나 의심만으로는 부족하다』고 판시하고 있다. 이렇듯 유죄의 인정은 법관으로 하여금 합리적인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여야 하고, 자신이 ‘보이스피싱 사기’범행에 가담하고 있다는 인식과 의욕이 있어야 한다.
위와 같은 판례의 법리에도 불구하고 막연히 ‘불법인건 아닐까?’ 라고 의심한 사람에게도 보이스피싱 범죄의 고의가 있다고 보아 유죄를 인정하고 있는 작금의 판결들은 아쉬운 점이 많은게 사실이다. 서울중앙지방법원 2022. 7. 12.선고 2021고단4657 판결은 그런 의미에서 주목할만 하다. 법원은 『불법에 대한 인식이나 의심을 할 만한 상황이었다는 이유만으로 편취의 고의를 (쉽게)인정하게 되면 과실은 있지만 사기범죄에 대한 고의가 없는 사람이 고의범으로 중한 처벌을 받게 할 위험성이 존재한다』며 막연히 불법임을 의심할만한 상황이었다는 이유만으로 보이스피싱 범죄의 고의를 인정하는 실무관행을 비판하고 있다.
범죄임을 인식하고도 이를 용인한채 범행에 가담한 사람은 당연히 엄하게 처벌받아야 한다.
다만, 보이스피싱 사기범행을 엄단해야 할 현실적인 필요성에도 불구하고, 모르고 가담하거나 막연히 불법성만을 인식한 사람에 대한 판결과 처벌을 함에 있어서는 인간의 본성에 대한 이해와 공감이 조금 더 고려되었으면 좋겠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이성적인 인간이라도 상황과 권위에 의해 옳지 못한 결정을 내리기도 하며, 상황에 쉽게 순응하기도 하고, 비판적인 사고를 유지하는 게 어렵기 때문이다. 보이스피싱 현금 수거책에 연루된 사람에 대하여 엄격한 처벌만이 능사는 아니지 않을까? 유무죄 여부와 관계없이 민사적인 책임을 강화하거나, 보이스피싱 피해자들에 대한 피해회복을 해주는 방안도 제도적으로 논의가 되길 희망한다.
jjw@fnnews.com 정지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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