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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십 대 중반에 찾은 적성, 늦깎이 신입 양조사 이야기[성공적인 삶을 위한 똑똑한 습관, 루틴]

[파이낸셜뉴스] 남아메리카라는 생소한 대륙의 무역회사에서도 일했고 어렵다는 국내 대기업 공채도 가뿐하게 통과했다. 뷰티 스타트업에 몸담을 때도 삼십 대 후반에 사무실을 벗어나 ‘완전히’ 다른 직업을 갖게 될 줄은 몰랐다. 서른일곱, 맥주에 마음을 빼앗겨 양조사가 되기로 했을 때는 많은 일을 새롭게 배워야 했다. 양조사가 된 후에도 오랫동안 주말이 되면 한 주에 배운 것들을 복기하며 사회 초년생의 마음으로 정진했다. 이제 조금씩 욕심이 생기기 시작한다. 기회가 된다면 직접 디자인한 맥주를 선보이고 맥주 대회에도 참가하고 싶다. 구스아일랜드의 장현준 양조사 이야기다.

<편집자 주> 파이낸셜뉴스에서 새롭게 선보이는 영상 시리즈 [루틴]은 다양한 직군에서 근무하는 N년차 신입 사원&경력 사원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현직 종사자만이 경험할 수 있는 생생한 모먼트는 물론이고 지금에 이르기까지 열정으로 만들어 온 스펙과 사소한 팁까지 가감 없이 담았습니다. 인터뷰는 유튜브 채널 [루틴]에서 영상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하 인터뷰어는 ‘김’ 인터뷰이는 ‘장’으로 표시합니다.



[Interview Chapter 1: 구스아일랜드 양조사 장현준]

김: 현준님 안녕하세요. ‘구스아일랜드’에서 양조사로 일하고 계신다고요.

장: 안녕하세요. 네. 크래프트 맥주를 선보이는 제트엑스벤쳐스(ZX Ventures)의 ‘구스아일랜드 브루하우스'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브루하우스(Brewhouse)는 양조장과 펍을 함께 운영하는 곳입니다. 펍 유리창 너머에 있는 양조 시설에서 맥주를 만들고 있고요. 방문하시면 맥주를 즐기며 양조 과정을 실시간으로 보실 수 있습니다.

김: 양조사라는 직업은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죠. 양조 과정 역시 미지의 영역처럼 느껴지는데요. 양조사가 하는 일을 자세히 소개해 주시겠어요?

장: 양조사는 문자 그대로 술을 만드는 사람을 뜻합니다. 구스아일랜드 브루팀에서 일하는 양조사들도 마찬가지로 레시피를 개발하고, 재료를 준비해 맥주를 만듭니다. 맥주 제조 과정을 말하자면 맥즙(Wort)을 만드는 과정이 중요하고요. 이후에 발효하는 과정을 거칩니다. 발효한 맑은 맥주는 원심 분리 과정을 거친 후 숙성하고, 맥주가 완성이 되면 케그(Keg)나 병에 담습니다. 양조사는 이 모든 과정을 수작업으로 진행합니다.

삼십 대 중반에 찾은 적성, 늦깎이 신입 양조사 이야기[성공적인 삶을 위한 똑똑한 습관, 루틴]
구스아일랜드에서 수제맥주를 제조하는 과정. 양조사는 모든 과정을 수작업으로 진행한다. 맥즙을 제조하기 전 레시피를 개발하는 것 까지 양조사의 업무에 포함된다. ⓒ파이낸셜뉴스 유튜브 채널 [루틴] 영상 갈무리. 2024년 9월.

: 기획부터 패키징까지 모든 과정에 정성을 쏟고 계시네요. 궁금한 부분이 있는데요. 커피는 원두의 산지나 로스팅 방법에 따라 맛과 향이 달라지는데, 맥주의 맛과 향은 어떻게 결정되나요?

장: 맥주에서 중요한 재료가 세 가지 있습니다. 몰트(Malt)라고 하는 싹 틔운 보리, 홉(Hop)이라는 식물, 마지막으로 효모인데요. 세 가지 재료를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맥주 맛이 달라집니다. 그게 양조사의 실력이자 맛있는 맥주를 만드는 비결이기도 하고요. 먼저 몰트는 커피처럼 로스팅하는 몰팅(Malting)을 거치는데 몰팅 정도에 따라 맛이 다릅니다. 예를 들어 검게 볶아내면 흑맥주를 만들 수 있습니다. 홉은 산지에 따라 향이 다른데요. 예를 들면 미국산 홉을 사용했을 때는 트로피컬 한 향의 맥주를 만들 수 있습니다. 효모 역시 저마다 향이 다른데요. 독일식 밀맥주에 사용하는 발효효모들은 바나나나 풍선껌 같은 향을 내기도 합니다.

김: 완성된 맥주를 맛보고 품평하는 시간도 필요할 텐데, 맥주에 대한 반응은 어떻게 알 수 있나요?

장: 양조사들끼리 테이스팅을 하면서 평가하기도 하지만 펍의 운영을 총괄하시는 제너럴 매니저님과 홀 서버분들이랑 유기적으로 소통합니다. 소비자들과 접점에 있는 분들이니까요.

김: 고객의 반응이 가장 큰 피드백인 셈이네요.

장: 네 그렇다고 볼 수 있습니다.

김: 처음으로 양조하던 날은 어땠나요. 에피소드가 있을 것 같은데.

장: 출근한 첫날 예의 있게 보이고 싶어서 머리도 단정하게 포마드를 바르고 옷도 최대한 정갈하게 입었는데요. 하필이면 제가 출근한 주간이 가장 바쁜 시기였습니다. 그래서 출근하자마자 바로 안전모를 주시고 케그(Keg) 세척을 시작하라고 하시더라고요. 홈 브루잉만 하다가 상업 양조 설비를 처음 접해보니까 크기도, 소리도 압도적이었습니다. 조금 두렵기도 했던 기억이 남아있네요.

김: 앞으로의 계획을 알 수 있을까요? 양조사로서요.

장: 저희 브루마스터님처럼 직접 개발한 레시피로 저의 맥주를 만들어 보는 게 꿈입니다. 권위 있는 대회에서 수상까지 한다면 더할 나위 없겠고요.

[Interview Chapter 2: 시작하기에 늦은 때는 없다]


김: 처음부터 양조사를 하고 싶으셨던 건 아니라고 들었어요.

: 네. 맥주를 좋아했지만 다른 일을 했습니다. 첫 회사는 콜롬비아 보고타에 있는 무역회사였어요. 이후 한국에서 손꼽히는 홈쇼핑 기업에 대졸 공채 신입으로 입사해 MD로 일했습니다. 그런데 팀 이동이 잦았어요. 회사에서는 제너럴리스트를 만들고자 했겠지만, 저는 한 분야의 스페셜리스트가 되고 싶었기 때문에 퇴사했습니다. 퇴사한 후에는 뷰티 스타트업에서 마케팅과 영업을 하기도 했고요.

김: 양조사는 꿈은 언제 시작되었나요?

장: 우연히 '올드 라스푸틴(Old Rasputin)' 이라는 맥주를 마셨는데 ‘이렇게 맛있는 맥주도 있구나’라고 생각이 될 만큼 좋았고, 양조사로 일해보고 싶다고까지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홈브루잉을 시작했고, 브루펍 창업을 준비하기도 했고요. 을지로의 수제맥주 펍에서 서버로도 일했습니다. 계속 꿈을 향해 다가간 거죠.

김: 양조사가 되기 위해서는 어떤 과정을 거쳐야 하나요? 양조를 배울 수 있는 기관이 있나요?

장: 양조 과정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만 있다면 누구든 양조사로 지원할 수 있어요. 저는 홈 브루잉 기술을 알려주는 '수수보리아카데미'라는 양조 교육기관에서 수업을 들었습니다. 자가 양조, 자가 양조 심화, 상업 양조까지 세 과정이었고 5개월 이상 소요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집에서 실습할 때 재료는 ‘서울홈브루'라는 인터넷 쇼핑몰에서 구매했고요.

삼십 대 중반에 찾은 적성, 늦깎이 신입 양조사 이야기[성공적인 삶을 위한 똑똑한 습관, 루틴]
장현준 씨가 수강한 자가 양조 수업. 총 세 과정을 이수한 후 양조사에 지원했다. 양조사는 학위 과정이나 필수로 여겨지는 이력이 없어 양조 과정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파이낸셜뉴스 유튜브 채널 [루틴] 영상 갈무리. 2024년 9월.


김: 양조사가 되기로 한 후, 가장 먼저 자기소개서를 쓰셨다고요. 자기소개서에 특별히 쓰고 싶은 내용이 있었나요?

장: 제가 양조사로 지원해야겠다고 마음먹었을 때는 벌써 삼십 대 중후반이었습니다. 그동안 사회생활 하며 쌓아온 경험을 토대로 무엇이든 잘할 수 있다는 의지를 보여주고 싶었어요. 예를 들면 일에 책임을 다한다는 점, 여러 차례 실패를 겪어봤으니 쉽게 지치거나 포기하지 않는다는 점이요. 또 문서 작업도 많이 했으니 양조 재료를 관리하는 봄(BOM; Bill of Materials) 같은 시트들을 잘 만들 수 있다던가. 구체적으로 어필했습니다.

김: 양조사가 된 후에는요? 기존에 하던 일과 워낙 달라 적응하기에 어렵진 않았나요?

장: 물론 따라가기에 버거웠습니다. 그래서 나머지 공부를 꾸준히 하고 있죠. 지금까지도 주말 중 하루는 꼭 시간을 내서 카페에 갑니다. 한 주간 배웠던 것들을 복습하며 제 나름의 방식으로 체화하기 위해서요.

[Interview Chapter 3: What’s Your Routine?]

김: 워낙 다양한 직군의 면접을 보셨으니까요. 면접 전 루틴도 궁금하네요.

장: 첫인상이 중요하니 단정하게 2:8 가르마 하고 최대한 깔끔한 옷을 입습니다. 그리고 수염을 단정하고 예쁘게 다듬으려고 노력해요. 음… 오늘 요청하셔서 수염 다듬는 도구를 가져왔는데요. 평소에는 들고 다니지 않습니다. 하하하. 어떤 도구로 트림(Trim)을 하냐고 하셔서 그냥 이런 일반적인 가위를 사용합니다.
조금씩 다듬습니다. 눈썹 칼로 라인을 정리하기도 하고요.

삼십 대 중반에 찾은 적성, 늦깎이 신입 양조사 이야기[성공적인 삶을 위한 똑똑한 습관, 루틴]
면접 전 수염을 다듬는다는 장현준 씨. 기자의 다소 불편한 요구에도 수염을 다듬는 도구를 들어 보이고 있다. ⓒ파이낸셜뉴스 유튜브 채널 [루틴] 영상 갈무리. 2024년 9월.

kind@fnnews.com 김현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