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알리바바 그룹의 이커머스 사업인 '알리 익스프레스'의 한국 진출에 가속도가 붙었다. 이르면 3년 안에 한국 온라인 쇼핑 사용자의 절반 가량인 1700만명 이상 확보하는 수준으로 직구와 사업을 확대하고, 한국 셀러들을 대거 유치해 역직구(해외 판매) 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겠다고 선언하면서다. 토종 이커머스 업체들이 적자 늪에 빠진 상황에 중국 직구 성장속도가 가팔라지면서 유통 업계의 긴장감이 커지고 있다.
알리, 한국 사용자 1700만명 목표...내년 물류센터 건립
11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중국 알리바바그룹은 최근 항저우 본사에서 한국 시장에 대한 투자계획과 청사진을 밝혔다. 레이 장 알리익스프레스 대표는 향후 3~5년 안에 국내 온라인 소비자 50% 이상(1700만명)을 사용자로 유치하겠다고 했다. 내년 상반기엔 물류센터를 본격적으로 건립할 방침이다.
와이즈앱에 따르면 지난달 알리 익스프레스의 월간 사용자 수는 쿠팡(3183만명)에 이은 2위(904만명)로 전달 대비 7.2% 증가했다. 알리의 지난해 7월 사용자 수는 476만명으로 1년여 만에 430만명 늘어난 셈이다. 알리는 중국 직구뿐 아니라 국내 제조사 상품을 파는 K-에비뉴를 운영 중이다. 최근 9개월간 입점 국내 판매자는 월 평균 148%씩 늘었다.
알리를 사용하는 소비자가 늘어나면 직구액이 커지고, 중국 의존도도 덩달아 커질 수밖에 없다. 중국 직구액은 지난 2·4분기 1조2383억원으로, 1년 전(7506억원)보다 65% 폭증했다. 중국은 해외 전체 직구액의 61.4%를 차지했다.
알리가 밝힌 새로운 한국 시장 공략 전략인 '역직구'도 업계 주목을 끌고 있다. 이미 라자다(동남아)와 타오바오(중국)를 통해 한국 제조기업들의 상품을 해외에 판매하고 있는데, 이 사업에 앞으로 본격적으로 시동을 걸겠다는 것이다. 현재 알리바바가 진출한 국가는 180여개국에 달한다. 알리가 신규 물류센터를 건립하면 국내 직구와 오픈마켓 사업 뿐 아니라, 해외 역직구 사업 활성화를 위해 기지로 사용할 것으로 전망된다.
韓 유통기업 연매출, 알리 분기매출보다 적어
알리의 이 같은 계획 발표에 대해 유통 업계에서는 한국 유통시장 주도권이 알리에 넘어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300조원에 이르는 시가총액으로 아마존에 이어 글로벌 2위에 포진한 알리바바 그룹의 지난 2·4분기 매출은 334억7000만달러(44조7995억원), 영업이익은 49억5200만달러(6조6200억원)다. 타오바오와 티몰, 클라우드, 해외 커머스 등 주요 사업 가운데 해외 사업 매출은 가장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적자 늪에 빠져 있는 국내 유통 이커머스 업계에선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쿠팡(31조원)을 비롯한 이마트(29조원) 등 국내 유통업계에선 연간 매출로 알리바바그룹의 분기 매출 수준을 달성한 곳이 아직 없다. 지난해 10년만에 첫 연간 흑자를 달성한 쿠팡은 올 들어 1·4분기 당기순이익 적자, 2·4분기엔 영업적자(342억원)을 냈다. 11번가는 지난해 8655억원의 매출을 냈지만 영업손실(257억원)을 기록했다.
이밖에 지마켓·옥션, 쓱닷컴,롯데온,컬리 등 주요 이커머스도 연간 적자 상황이다.
이커머스 업계 관계자는 "그룹 차원으로 현금 및 투자 여력이 높은 알리바바의 공습에 이미 사용자 수로 토종 이커머스들이 역전당했다"며 "앞으론 단순 국내 고객을 넘어 국내 제조 판매 네트워크까지 장악할 공산이 있다"고 말했다.
이에 업계에서는 알리가 투자를 확대하는 향후 2~3년간 토종 유통업체들이 중국에 대응하는 출혈경쟁에 돌입할 가능성을 보고 있다.
지난 10년간 국내 이커머스 업계에서 시장점유율이 50%가 넘는 절대 강자가 나오지 않은데다 국내 토종 이커머스 업체들이 판매 여건상 중국 셀러의 초저가를 매칭하기 어렵다. 쿠팡은 알리에 대응해 전국 물류망에 3조원을 투자하고 한국 중소 제조사 상품 매입을 22조원대로 확대할 계획이다.
업계 관계자는 "티메프 사태 등으로 이커머스 업계가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알리 사용자가 빠르게 늘고 있다"며 "토종 업체 입장에서 국내 고객은 물론 거래 파트너인 제조 생태계를 지켜야 하는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wonder@fnnews.com 정상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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