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뭄 경보가 발령된 티티카카 호수 지역에 사는 원주민인 아이마라족 남성이 말라버린 티티카카 호수를 걷고 있다. AP뉴시스
라틴아메리카를 구성하는 인류문화의 두 생태축은 안데스산맥과 아마존강이다. 두 축으로 엮어진 인간사가 라틴아메리카 이해의 근간이다. 종축으로 남행하는 안데스산맥은 볼리비아의 고원으로 연장되면서, ‘알티플라노’(고원이란 뜻)라고 불리는 해발 4000m 내외의 독특한 산악문화를 형성한다. 사용되는 주류 언어는 두 가지다. 종축에서 사용되는 꿰추아(Quechua)와 볼리비아로 연장된 횡축에서 사용되는 아이마라(Aymara), 두 언어의 접촉 지대가 위치한 곳이 티티카카 호수다. ‘티티카카’는 아이마라어로 ‘퓨마의 바위’란 뜻이다. 이 호수는 잉카의 신 비라코차(Viracocha)가 탄생한 곳이자 태양이 탄생한 곳이란다. 그래서 잉카의 태양숭배 종교를 지탱한다. 해발 3800m의 이 호수의 바닥에서 최근에는 신전 유구들이 발견됐다. 1998년에는 람사조약으로 지정된 곳이 티티카카 호수다.
박사과정에서 라틴아메리카를 전공하면서 수강한 과목의 내용에 '우로스=물에 뜬 섬마을'(Uros= a floating island village)이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아서 담당교수에게 질문을 했더니, 자신도 모르니 날더러 가보라고 했다. 나도 모르는 채로 학생들에게 우로스의 이야기를 했고, 10년 동안의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서 1986년 12월에 찾아갔다. 가장 가까운 공항은 페루의 훌리아카이며, 두 줄 철조망으로 둘러친 운동장뿐이었으며, 곳곳에 검정색 군복을 입은 사람들이 지키고 있는 상황이 안중에 들어왔다. 화물도 모두 내손으로 꺼내고 들고 나와야 하는 그야말로 시골 공항이었다. 나는 훌리아카로부터 뿌노(Puno)까지 완행 버스를 탔다. 훌리아카의 시장을 보고 골짝의 집으로 돌아가는 주민들이 염소와 닭과 함께 타고 가는 버스다. 훌리아카부터 뿌노까지는 양 옆으로 야마(라마가 아님)들이 풀을 뜯는 내리막길이고, 서서히 짙푸른 티타카카 호수가 눈에 들어온다.
뿌노항에서 작은 보트를 타고 들어가는 곳이며, 여러 개의 작은 섬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섬은 모두 물에 뜬 상태다. 무수한 세월 동안에 얽히고 설킨 채로 자라는 풀들이 하나의 덩어리를 이룬 섬! ‘도또라'(dotora)라고 불리는 갈대 비슷한 풀의 원뿌리는 호수의 바닥으로부터 올라온 것이고, 매년 여름(12월부터 2월 사이)이면 불어나는 물에 떠 내려온 흙들이 조금씩 조금씩 쌓여서 풀뿌리들과 조합된 섬이다. 여름에 호수의 수위가 상승하면 섬이 같이 뜬다. 섬 위에는 집도 있고, 손바닥만한 채전에 뀌노아콩과 감자꽃도 피었고, 오리집도 있고, 개집도 있다. 밭의 흙은 새까맣다. 집은 바닥과 벽 그리고 지붕이 모두 도또라로 엮은 거적대기를 이용했다고나 할까. 가장 큰 섬에는 학교도 있다. 우로스 공동체인 것이다. 모든 것이 풀로 되어 있다. 우거진 도토라 사이에 조금씩 지붕이 보이는 정도의 낮은 집들이다. 이곳의 가장 강력한 금기는 당연히 불을 다루는 것이며, 가장 이외에는 아무도 불을 건드리지 않는 것이 철칙이다.
지난 1986년 티티카카호수를 찾았을 당시에 묵었던 호수변 도또라 덤불. 전경수 교수 제공
꿰추아 말이 전혀 통하지 않은 채 손짓발짓으로 섬을 둘러보는데, 나를 따라다니던 까란사 영감님은 한사코 날더러 나가라는 시늉을 한다. 영감님의 손은 잠시도 쉴 틈이 없다. 야마의 털실로 항상 뜨개질을 한다. 귀밑까지 가릴 수 있는 모자를 짠다. 하룻밤이라도 지낼 욕심으로 못 알아들은 것처럼 버텼다. 해가 지면서 배들이 모여든다. 배도 도또라로 만들었다. 도또라가 취사를 위한 연료이기도 하고, 하얀 색의 어린 줄기는 샐러드로 일품이다. 집 옆에는 도또라를 잘라서 말리는 건조장이 있다. 건물이라고 말하기에는 부족하나, 도또라로 용마루를 이은 정도이고, 그 아래에 도또라를 차곡차곡 쌓아 두고 있다. 고기 잡으러 나갔던 아들 내외도 돌아오고, 뿌노에 나갔던 딸들과 부인도 돌아오고, 방안에는 금새 삼대가 이룬 가족원으로 가득 찼다. 방안의 한쪽 구석에서 잠을 잘 수 있을 것이라는 나의 기대는 결코 수용될 수 없었다. 그제서야 까란사 영감님이 한사코 나가라는 시늉을 했던 의도를 알았다. 더 이상 다니는 배도 없다. 방안에 별 다른 가구는 없다. 화덕을 가운데로 두고 여성들(할머니부터 아이들까지)은 모두 모자를 쓴 채로 앉아서 잔다. 주변으로 남자들이 누었는데, 손바닥만한 빈틈도 없다. 해가 지면서 어두어진 호수 위로 후두둑 후두둑 찬비가 흩뿌린다.
까란사 영감님이 저녁을 먹으라고 접시를 내민다. 작은 동물 다리 한 개와 감자 세 알이 올려졌는데, 다리도 감자도 왜소하다. 손가락으로 집어서 먹고 밖으로 나가서 호수의 물에 손을 씻으면 된다. 감자는 작은 덩어리들이 약간 쫄깃한 듯한 맛이 있다. 수확한 감자를 그대로 보관하면 모두 썩어버리기 때문에, 그것들을 밭 위에 널어둔다. 가끔 주둥이에 멍에를 씌운 야마를 그 위로 걷게 한다. 야마의 발굽이 감자의 껍질을 벗기는 효과를 내면서 낮에는 마르고 밤에는 어는 과정을 반복한다. 그렇게 마련된 감자는 장기간 보관되며, 이것이 ‘츄뇨’라고 불리는 주식이다. 우로스에는 야마가 없다. 가능한 한 무게가 덜 나가는 삶을 사는 곳이기 때문에, 가축들이 들어올 수 있는 여력이 없다. 좀 떨어진 타켈레 섬에는 야마를 많이 기른다. 나그네는 도또라 건조장을 하룻밤 숙소로 택했다. 도또라는 묶음으로 재여 있었다. 한 묶음을 빼니 공간이 생겼다. 영하까지 내려갈 수 있다는 티티카카 호수의 여름 밤을 앞 뒤가 트인 도또라 덤불 속에서 보내게 되었다. 까란사 영감님이 야마 털실로 짠 폰쵸를 갖다 준다. 잠이 올리는 없고, 호수 쪽을 보는데, 물 속에서 무엇인가가 상하로 왕복 운동을 한다. 달빛에 어렴풋하게 비치는 실루엣은 두 마리의 쥐가 장난치는 모습이었다. 저녁으로 얻어먹었던 것! 아침에 일어나니 학교에서 종치는 소리가 들린다. 아이들이 작은 배를 저어서 등교한다.
수년 전에 그곳을 다녀온 아내의 말을 들으니, 이제 그곳에도 호텔이 생겼다고 했다.
푸노국립대학에 근무하는 이영미의 건안을 빌어본다. 푸노의 광산에서 독점하는 물 때문에 티티카카의 일부는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인간이란 종은 ‘제 눈에 못박기’를 하는 줄도 모르고 ‘나만 잘살기’에 몰입하고 있다.
전경수 서울대 인류학과 명예교수
jsm64@fnnews.com 정순민 기자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