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자체 사용승인 절차탓 늦었는데
대주단이 830억원 채무인수 요구
"20일 전에 준공…계약 위반 아냐"
시공사 가처분신청 처음으로 인용
책임준공 기한을 단 하루 지연했다는 이유로 대주단이 시공사에 채무인수를 요구한 것에 대해 법원이 제동을 걸었다. 책임준공과 관련한 채무인수가 부당하다며 건설사가 제기한 소송에서 시공사의 손을 들어준 첫 사례다. 이런 가운데 책임준공 제도 개선은 금융당국에서 난색을 보이면서 표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1일 업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최근 A건설사가 경기 안산시 물류센터 대주단을 상대로 제기한 '책임준공확약 채무인수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였다. 이에 따라 본안 소송 판결 전까지 시공사의 채무인수는 중단되게 됐다.
책임준공확약은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대출을 해주는 대주단이 시공사와 준공기한을 약정하는 것. 천재지변·전쟁 등 불가항력적인 경우만을 제외하고 시공사가 기한을 지키지 못하면 시행사의 채무를 인수하는 계약이다. 시공사도 무너지면 신탁사가 책임을 지는 구조다.
A사에 따르면 해당 프로젝트 책준기한은 2022년 4월 4일부터 올해 3월 4일까지다.
사용승인은 지자체 업무지연으로 단 하루가 지난 3월 5일 이뤄졌다. 대주단들은 책준기한이 단 하루 늦춰져 책임준공 계약을 위반했다면 시행사 채무(830억원) 인수를 요구했다. 시행사는 자본잠식 상태로 빚을 갚을 여력이 없는 상태다.
A사는 이후 대주단과 협의를 진행했지만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지난 9월초 법원에 '책임준공확약 채무인수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제기했다.
A사에 따르면 화물연대 파업 등에도 손실을 감수하며 책임준공기한 20일 전에 공사를 완료했다. 2월 14일에 사용승인을 신청했지만 아무런 이유없이 지자체의 업무지연으로 3월 5일에 사용승인을 받은 것일 뿐 책임준공 위반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법원이 이 같은 시공사의 입장을 수용한 것이다.
소송을 맡은 김문성 법무법인 이제 변호사는 "법원 판단 골자는 공사나 행정절차 모두 시공사가 충분한 시간을 두고 진행했고, 행정지연 등 여러 사정을 감안해 볼 때 단 하루가 지연됐다는 이유로 830억원의 채무인수 효력을 발생시키는 것은 신의성실 원칙에 위반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채무인수 효력을 잠정 정지해도 대주단은 본안 소송이 진행되는 동안 대출금 변제를 요구할 수 없는 것에 불과하다"며 "반면 시공사는 도산 위기에 처하는 등 받는 불이익이 크다는 점도 반영됐다"고 덧붙였다.
앞서 지난 7월 W건설이 대구 '수성레이크 우방아이유쉘' 대주단을 상대로 제기한 '책임준공확약 채무인수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은 기각됐다. 김 변호사는 "W건설 케이스와 다소 다르지만 시공사 채무인수 효력정지 가처분이 인용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고 말했다.
개발업계 관계자는 "책임준공 약정이 아무리 대주단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한 구조지만 단 하루 지연했다고 채무인수를 요구한 것은 금융권의 횡포나 다름없다"고 지적했다.
이종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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