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호 서울시립대 도시공학과 명예교수
한강과 산이 시가지 둘러싼 모습
600년간 쌓인 지역 정체성 살려
역사경관 반영 도시계획 세워야
김기호 서울시립대 도시공학과 명예교수 사진=김동규 기자
압구정동 70층, 성수동 70층, 잠원동 49층 등 최근 한강변 재건축 단지에서는 마천루를 세우기 위한 경쟁이 치열하다. 김기호 서울시립대 도시공학과 명예교수(72·사진)는 "한남대교와 반포대교 사이 경관 등 강과 산, 그리고 시가지가 조화롭게 한눈에 들어오는 한강변 경관은 도시 서울의 경쟁력이다"라며 마천루 경쟁을 경계했다.
그는 한강변에 밀도 높은 초고층 아파트가 마구 들어서 서울시민들이 한강 둔치에서 아파트만 보게 될 것을 우려했다. 김 교수는 "도시계획학계가 1990년대부터 다수의 용역보고서와 연구논문을 통해 강과 산, 시가지가 조화를 이룬 한강변 경관을 보존하자고 강조해 온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덧붙였다.
김 교수는 도시 서울의 매력을 한강변 경관에서 찾았다. 도시 서울의 600년 역사를 한강변 경관으로 꿰뚫어 설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아름다운 산이란 경관 요소가 1394년 도시 서울을 탄생시켰고, '경교명승첩' '엄마의 말뚝' 등에서 알 수 있듯 서울시민들은 산과 강이 어우러진 경관을 벗 삼아 삶을 꾸려 왔다"고 설명했다.
도쿄와 런던, 파리 등 세계적인 도시들은 그들마다 누적된 역사경관으로 도시의 정체성을 드러낸다. 그리고 이 정체성을 다른 도시들과 차별화된 자신들의 경쟁력으로 내세운다. 대표적으로 도시 도쿄의 정체성을 근세로까지 소급하는 '에도도쿄(江戶東京)' 담론이 있다.
김 교수는 "세계 도시들의 경제수준이 상향 평준화된 지금 시대에 각 도시가 내세울 수 있는 것은 자신들이 살아온 생활양식, 즉 역사"라며 "600년 이상 한 나라의 수도로 발전해 온 도시 서울의 역사를 시민들이 일상에서 체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가 역사경관을 주목하는 배경에는 1980년대 초반 독일 유학의 경험에 있다. 아헨공과대 박사과정생이었던 그는 강의를 통해 '역사경관'이란 개념을 배우며 관련 연구자들과 답사를 다녔다. 옛 건물을 활용하는 방식으로 도시의 스카이라인을 관리하고 옛 건물이 세워진 사회경제적 맥락을 지역의 정체성으로 설명하는 독일의 도시계획을 체험했다. 옛 건물들을 그저 철거해야 할 것으로 치부하던 한국의 도시계획과 다른 조류였다.
그는 "유럽인들에게 역사경관은 당연히 보존하고 관리해야 할 도시의 가용자원"이라며 "시간이 쌓이며 자연스럽게 형성되지만 그렇다고 현대인이 일부러 만들 수 없는 역사경관의 속성을 40년 전부터 이들은 이해하고 있었던 셈"이라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자타가 공인하는 도시계획 분야의 원로다. 학부생 시절 건축가 김수근의 '공간건축연구소'에서 실무 경험을 쌓은 그는 2015년 '역사도심기본계획'의 제작을 책임졌다. 2014년엔 '서울플랜 2030' 수립을 진두지휘했다. 지난 4월까지는 국토교통부가 위촉하는 행복도시(세종시) 총괄기획가로 활동한 경력도 있다.
수많은 약력 중 으뜸은 1990년대 중·후반 인사동길 계획의 변화를 이끌어내 한국 도시계획의 패러다임을 바꾼 것이다. 도로와 필지를 무조건 인위적으로 크게 만들던 도시계획이 아닌, 기존 도시조직을 활용해 가로변을 활성화하는 도시계획이다. 그는 "독일 유학 시절부터 가져왔던 역사경관의 활용이란 문제의식을 실제 정책에 구현해 개인적으로 뿌듯하다"고 회상했다.
kyu0705@fnnews.com 김동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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