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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기의 외교포커스] 아시아판 나토, 아직은 시기상조

이시바 개인 주장 아니라
日 전략적 사고의 연장선
아시아 집단 안보는 난망

[최원기의 외교포커스] 아시아판 나토, 아직은 시기상조
최원기 국립외교원 교수
최근 취임한 이시바 시게루 신임 일본 총리가 중국의 아시아 패권을 저지하고 북한, 러시아의 핵 위협을 억제하기 위해서는 미국과 일본의 핵공유 및 '아시아판 나토(NATO),' 즉 아시아 역내 국가들이 상호방위 의무를 지는 집단안보기구 창설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제기해 파장이 일고 있다.

아시아판 나토 구상은 사실 이시바 개인의 돌출적 생각이 아니라 미국의 패권 쇠퇴 이후 중국의 아시아 지배를 막기 위한 새로운 대안이 필요하다는 일본의 오래된 전략적 사고의 연장선에 있다. 아베 신조 전 총리가 2012년에 제기한 이른바 "아시아 민주주의 안보 다이아몬드" 구상이 대표적이다. 중국의 부상과 미국의 상대적 약화로 인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형성된 자유주의 국제질서가 불안정해지는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기존 질서를 떠받쳐왔던 미국의 역할을 대신하여 복수의 자유주의 국가들이 연대함으로써 중국에 맞서는 집단안보 체제를 구축해야 한다는 것이다.

2017년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출범시킨 미·일·인·호 4국 협의체, 즉 '쿼드(QUAD)'는 이런 아베의 구상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쿼드는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구축한 다양한 소다자 협의체 중에서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자신의 외교적 업적으로 내세울 정도로 지난 4년간 가장 성공적으로 추진됐다. 이러한 점에서 쿼드는 일본이 열망해 온 아시아판 나토에 가장 근접해 있다. 하지만 지난달 말 바이든 대통령이 퇴임 전 마지막으로 주최한 쿼드 정상회의 결과에서도 잘 나타나듯이 쿼드가 아시아판 나토로 진화할 가능성은 현재로선 거의 없다.

이번 쿼드 정상회의는 중국을 유례없이 강력히 비판하는 내용을 담은 '윌밍턴 선언'을 발표하고, 남중국해 등 중국의 해양진출에 대응해 기존 해양 정보공유 협력에 더해 새롭게 해양경찰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공급망, 인프라, 재난구조(HADR), 신흥기술 등 주로 비군사적 성격의 의제가 중심이다. 개별 쿼드 국가 간 중국을 염두에 둔 양자 차원의 군사안보 협력은 과거와 비교해 유례없이 강화되고 있지만, 쿼드 그 자체는 군사안보 의제를 다루지 않고 주로 중국을 견제하는 외교적 메시지를 발신하는 데 치중해 왔다. 이런 점에서 중국에 대한 높은 수준의 위협인식이라는 공통분모에도 불구하고 쿼드는 그 자체로 군사안보 협의체라고 하기 어렵다.

이는 당초 미국이나 일본이 의도한 바는 아니다. 아시아판 나토 구축에 대한 일본의 열망에도 불구하고 쿼드가 집단안보 체제로 전환하지 못한 결정적 이유는 핵심 주축인 인도의 반대 그리고 동남아를 비롯해 역내 국가들의 부정적 반응 때문이었다. 물론 중국의 반발도 매우 큰 요인이다. 당장 수브라마냠 자이샨카르 인도 외교장관은 인도는 이시바의 구상에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며 공개적인 반대를 표명하기도 했다. 쿼드는 오히려 미래 중국과의 군사적 충돌에 대비하여 결속을 다지는 보험으로서의 성격이 강하다. 물론 쿼드는 미국 대선 결과에 상관없이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 확실하다. 바이든 대통령의 외교기조를 그대로 계승할 가능성이 큰 카멀라 해리스 후보뿐만 아니라 2017년 재임 시에 쿼드를 출범시킨 주인공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도 쿼드를 지속하지 않을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한국으로서도 가치와 전략적 이익을 공유하는 쿼드 국가들과 협력과 연대를 강화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중국을 겨냥한 집단안보 체제의 구축은 현재 한국의 전략적 위치에서 보면 당장 최선의 대안은 아니다.

결국 아시아판 나토 구상은 아시아에 대한 관여 의지와 능력이 약화하는 미국을 계속해서 붙잡아 두면서 동시에 인도를 반중연대에 끌어들여 역사적·지정학적 라이벌인 중국을 견제하고자 하는 일본의 오래된 전략적 열망을 반영하고 있다. 중국의 공세적 위협이 향후 임계점을 넘는다면 반중 안보협력체 출현도 배제할 수 없겠지만, 아직은 당장 실현할 수 있는 대안이라 하기는 어렵다.

최원기 국립외교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