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을 준다 나에게' 주제로 23일 공연
"2년마다 숙제처럼 한 일이 어느덧 30년째
70대에 30주년 공연, 멋쩍긴 해도 기뻐
돌아보니 산다는 것 자체만으로 대단한 일
살고자 애쓴 이에게 선물 같은 시간 됐으면"
소리꾼 장사익 사진=김녕만 작가
"30년이라는 세월이 정말 꿈 같이 흘렀어요. 수많은 굴곡이 있었지만 지금까지 살아온 것 자체만으로 대단하다고 스스로 위안합니다. 어쩌면 이제야 꽃을 피운 것도 같아요. 그동안 수고한 자신에게 꽃을 선물하듯, 우리 모두가 힘을 얻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시를 노래하는 소리꾼 장사익(75)은 오는 23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열릴 30주년 기념 공연을 앞둔 소감을 이같이 말했다. 서울 종로구 자택에서 공연팀과 연습이 한창이던 지난 2일 장사익은 "이번 공연의 주제는 '꽃을 준다 나에게'로 정했다"면서 "알고 지낸 시인이 오랜만에 편지를 보내왔는데, 같이 적어 보낸 시 중 하나가 꼭 나에게 하는 이야기 같았다. 시는 원래 노래였다"고 운을 뗐다.
국악 연주자 출신으로 지난 1994년 소리판 '하늘 가는 길'로 데뷔한 그는 '가장 한국적인 느낌으로 노래를 부르는 가수'라는 평가를 받았다. 이후 소리로 수행하듯 정진해왔다. 눈부실 만큼 희고 정갈한 한복은 그의 트레이드마크다.
장사익은 최근 방송인 KBS 1TV '가요무대'를 비롯해 2TV '불후의 명곡' 등 공중파 무대, 나아가 전국 공연과 해외 순회 공연까지 나서며 활발히 활동했다. 지난 2015년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원로가수 이미자와 특별쇼 무대에 올랐고,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폐막식에서는 어린이 합창단과 애국가를 울려 전 세계인에게 큰 감동을 선사했다.
40대 중반에 가수로 데뷔한 그는 30주년을 맞은 올해 공연이 더욱 특별하다고 했다.
장사익은 "2년마다 숙제를 하듯 꼭 공연을 여는데 마침 30주년이 됐다"며 "가수 생활을 시작할 때만 해도 이런 날이 오리라고 상상하진 못했다"고 말했다. 이어 "남들은 50~60대에 하는 30주년 공연을 70대에 한다는 점이 멋쩍지만 숫자 3을 좋아한다"며 천진하게 웃었다.
'꽃을 준다 나에게'라는 타이틀에 대해서는 "홀연히 세상에 나왔다가 사람들과 만나 살면서 많은 이들에게 축하한다, 사랑한다, 미안하다 말하면서 늘 꽃다발을 줬다"며 "그런데 정작 돌아보니 내가 눈물 나게 기쁠 때 나에게는 꽃을 준 적이 없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이건 모든 사람들에게 해당하는 얘기라는 생각이 들어 주제로 정하고 노래를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이번 공연은 타이틀곡을 비롯해 그가 30년간 애정을 갖고 불러왔던 대표곡들로 꾸려진다. 1부와 2부로 나눠 자작곡과 시대별로 인기를 누린 대중음악들을 차례로 선보인다. 그가 건넨 공연 초대장에는 다음과 같은 글귀가 적혀 있다.
'사랑한다, 축하한다. 남들에겐 스스럼없이 건넨 꽃. 돌아보니 나에겐 꽃 준 적 없네. 이제 노래 인생 30년을 다독이며 꽃을 준다, 나에게! 간절함으로 피어난 감사의 꽃을!'
장사익의 노래는 국악과 가요를 절묘하게 아우른 크로스오버 장르에 속한다. 대표곡으로는 그의 인생을 투영한 '찔레꽃'이 있다. 오케스트라 또는 밴드의 반주를 따라가는 노랫말은 정형화된 장단을 뛰어넘어 이야기하듯 흘러간다. 이는 호흡과 서사를 중요시하는 창법과 관련이 있다. 관중과 시선을 교류하며 호소하고, 때론 혼잣말을 하듯 속삭이며 한 편의 모노드라마를 완성시킨다. 눈물짓는 관람객들이 유독 많은 이유도 공연이 주는 카타르시스 때문이다.
장사익은 "국악에는 매듭을 맺고 푸는 개념이 있다. 메시지 전달이 맺는 것이라면 관객들이 감정을 표현하고 해방시키는 것이 매듭을 푸는 과정"이라며 "공연장을 나갈 때는 마음이 하얀 도화지처럼 깨끗해져 삶의 그림을 다시 그릴 수 있는 에너지를 얻는다"고 말했다.
이러한 감동은 미국과 러시아 등 해외 공연에서 만난 외국인들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졌다. 그는 "외국인들에게는 내 노래가 한국의 아리아처럼 들리는 것 같다"고 말했다.
장사익은 10여년 전 20명에 달하는 오케스트라 팀을 꾸려 한 달 가까이 미국 전역을 돌며 순회공연을 했다. 한국인 출신 관객이 70%가량이었던 미국과 달리 러시아 공연은 90%가 현지인들로 객석이 채워졌다. 그럼에도 음악의 힘은 인종과 언어를 초월하게 한다는 점을 분명하게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고 한다.
그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나 부모에 대한 추억을 표현한 노래들을 부를 때, 그 애잔한 정서가 서로에게 통했다"고 회상했다.
늦깎이 데뷔를 했던 그는 어느덧 초로가 됐다.
또다시 10년이 흘러 40주년 공연에 대해서도 기대할 수 있을까.
장사익은 "임종 직전에도 작은 춤사위를 잊지 않던 어느 명인의 마음을 조금은 알 것도 같다. 지금까지 노래해온 것도 기적이지만 40주년에 대한 꿈은 갖고 있다"며 "이번 공연이 나나 여러분이 살아왔던 모든 과정이 헛된 것이 아닌 위대한 과정이었음을 깨닫게 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했다.
'꽃을 준다 나에게' 공연은 서울에 이어 11월 9일 대구 경북대대강당, 12월 8일 대전예술의전당, 12월 25일 천안예술의전당, 2025년 1월 4일 부산시민회관에서 열릴 예정이다.
en1302@fnnews.com 장인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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